"민가를 보호하고 담수지를 확보하라"

[울진 산불현장] 산림청 헬기조종사의 산불진화 사투기

등록 2007.05.06 11:22수정 2007.05.0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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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과 함께 산불 현장에 도착하다. ⓒ 김창만


따르릉~ 따르릉~.

벨소리가 내 귀를 노크한다. 잠결에도 반사적으로 핸드폰에 손이 갔다. 그리고 비상이라는 것을 직감하며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새벽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보세요? 김 기장입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내 예측을 벗어나지 못했다. "산불출동입니다. 준비되는 대로 출근하십시오." 당직자의 숨 가쁜 목소리를 뒤로 하고 서둘러 출근했다.

사무실에서는 운항편성에 따라 간단한 브리핑을 마친 승무원들이 기상을 파악하며 커피로 공복을 달래고 있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격납고의 헬기들이 라이트를 켜고 하나둘씩 계류장에 모습을 보였고, 정비사들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목적지는 경북 울진군의 신흥리, 삼신리 일대. 산불진화를 위한 출동이다. 때를 같이하여 강원 평창군의 대화리 일대에도 산불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초대형 헬기는 울진으로, 대형헬기 2대는 일단 대화리로 출동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항공기를 점검하면서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일출 시간은 새벽 5시 31분. 최소한 여명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바닷가의 옅은 해무가 어둠의 깃을 잡고 놔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계가 확보된 새벽 5시에 시동을 걸고 목적지로 향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동녘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저 멀리 검은 연기가 검다 못해 하얗게 피어오르며 산불의 규모를 말해주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할 즈음 자욱한 연기 사이로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울진에 전진 배치되어 있던 대형헬기는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산불은 강풍을 타고 계속 번지고...

그 누가 말했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아마 청명과 한식, 식목일 등의 절기와 행사에서 비롯된 대형 산불이 연례행사처럼 발생해서가 아닐까.

산림청은 봄철 산불조심기간을 1월 20일부터 5월 15일까지로 설정하고, 특히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는 전국 3곳(강릉, 울진, 함양)에 특별산불관리센터를 설치하여 산불예방과 진화활동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특히 3월 30일부터 5월 15일까지는 '산불총력대응기간'이다. 산불발생 초기에 진화해, 예년에 비해 산불 발생 건수가 증가했음에도 진화 면에서는 그래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잔인한 4월은 침묵이 싫었나보다.

어쨌든 현장의 산불 규모는 예상보다 커 보였다. 간밤에 발화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계속 번졌고 그 과정에서 불씨들이 날려 인근지역으로 확산된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람이 잦아들어 확산 속도가 둔화되는 듯했다. 산림청 헬기들이 전국에서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강릉관리소 보유헬기 5대를 포함하여 안동과 원주, 양산과 영암 등지에서 18대와 경북에서 2대가 동원되는 등 총 20대가 화마와 전쟁을 벌였다. 그렇지만 생각처럼 쉽게 진화되지는 않았다. 담수지가 한 곳뿐이어서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인근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산불 진화는 담수지 여건과 항공기 대수와 진화 속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수지 거리가 멀수록 항공기가 많이 필요하다. 이곳처럼 담수지는 가까운데 한 곳뿐인 경우엔, 다수의 항공기를 운항하는 것이 그만큼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도의 기술과 항공기 통제, 공중경계, 무선침묵, 정보공유 등 소수의 항공기를 운항하는 경우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더 주의해야 한다.

산불과의 사투... 담수를 확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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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지역의 유일한 담수지인 기양저수지로, 항공기가 담수를 위해 접근하고 있다. ⓒ 김창만


임무수행 중 문제가 생겼다. 하나뿐인 담수지로 연기가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나뿐인 담수지에서 시계가 제한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담수지 시계 확보를 위해 그 인근에서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는 곳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편대를 구성하여 한 편대는 시계확보를 위해 근거리로 투입하고, 다른 편대는 화두를 잡기 위해 투입했다.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물을 투하하고, 투하하고, 또 투하했다. 연료 경고등이 켜질 때까지…. 다행히도 담수지로 번지던 불길도 서서히 진화돼갔다.

이처럼 백두대간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담수지 제약이다. 저수지도 없고 강이 흐르지 않는 산악지역은 인공적인 담수지를 갖추지 않는 한 산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헬기가 도착해도 물이 없다면 실탄 없는 총과 같을 수밖에 없다.

연료보급을 위해 공설운동장으로 이동했다. 항공기가 도착되는 대로, 새벽부터 달려온 유조차가 열심히 연료를 보급하고 있었다. 항공기만 배고프랴. 조금 있으려니까 군청에서 김밥을 준비해 왔다. 먹을 것을 보니 잊고 있던 시장기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공설운동장은 일부 공사 중이었다. 헬기 하강풍에 먼지가 많이 날려 공사에 다소 지장이 있음에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협조해줘 참으로 고마웠다. 승무원들은 간단히 요기하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연료가 다할 때까지 약 2~3시간 정도 공중에서 움직이면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민가로 번지는 불길들... 검게 그을린 헬기 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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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민가를 향하여 번지고 있다. ⓒ 김창만


"민가가 위험한데 민가 좀 보호해주세요!"

무전기에서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불발생 후 주민들을 대피시켰지만, 불길이 조금씩 조끔씩 마을 쪽으로 내려오면서 민가가 위협받고 있었다. 통제기에서는 일사분란하게 호기를 지정하고 편대를 재구성하여, 민가보호를 위한 방화벽을 설치하고 마을로 접근하는 불길을 잡기 시작했다.

민가 주변에선 지상 진화대원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불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바람이 강하지 않아서 불길 확산 속도가 더뎠고, 헬기가 기류를 잘 타면서 물살포의 효율성이 양호해 마을로 향하는 불길의 화두를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민가로 향하던 불길이 무력해지면서 마을은 다행히도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변에 깔려 있는 연기층 때문에 시계가 제약되고 두꺼운 낙엽층을 먹이 삼아 가파른 산세를 파고드는 불길의 기세는 좀처럼 꺾일 줄 몰랐다. 불길은 종일 우리를 괴롭혔다. 연료보급시간을 틈타 생리현상을 해소하고 도시락으로 시장기를 해결하면서 조금씩 줄어드는 불길과 사투를 벌이다보니 어느새 하루해가 서녘에 걸려 있었다.

일몰시간은 저녁 7시 13분이다. 연료가 다 떨어진 항공기부터 차례로 현장을 떠났다. 아쉬움에 한마디씩 한다. 한두 시간만 더 있다면 다 잡을 수 있는데….

어둠과 함께 연료보급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8시다. 검게 그을린 헬기의 동체를 쓰다듬어본다. 나와 생사를 같이 한 헬기에 감사함을 전하면서. 그리고 생각해 본다. 그 옛날 전쟁터에서 돌아온 장수가 자기 애마를 쓰다듬을 때 기분이 아마 이럴 거라고….

덧붙이는 글 | 김창만 기자는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소속 헬기조종사입니다. 

4월 30일 초대형 헬기조종사로 산불을 진화한 것을 기사로 정리했습니다. 임무 수행 후 기상관계로 5월 2일 복귀했는데, 기사 작성 중 3일 같은 곳에서 산불이 다시 나서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김창만 기자는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소속 헬기조종사입니다. 

4월 30일 초대형 헬기조종사로 산불을 진화한 것을 기사로 정리했습니다. 임무 수행 후 기상관계로 5월 2일 복귀했는데, 기사 작성 중 3일 같은 곳에서 산불이 다시 나서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울진 #산불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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