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엔 왜 용도(甬道)가 있을까?

생뚱맞은 용도, 그 존재의 이유

등록 2007.05.11 09:57수정 2007.05.11 09:57
0
원고료로 응원
a

수원화성의 성벽. 연무대와 공심돈의 모습이 보인다. 산능성이처럼 곡선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러한 모습은 수원의 성벽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다. 편안한 느낌을 준다. ⓒ 송영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우리나라의 성곽 중에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는 성곽 중 하나일 뿐 아니라 건축적인 미학의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방어적 효용성도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18세기 조선의 군사건축의 결정체라고 하더라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지난주에 시간이 나서 수원화성에 가서 그 실체를 실감하고 왔다. 과연 경관이 수려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특히 곡선과 직선의 오묘한 조화에 눈길이 갔는데, 치성에서는 둥그스름하게 올라가고, 적대에서는 각이 져서 올라간 형태를 취하며 나름대로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이러한 기법은 경주 안압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인위적인 미와 자연스러운 미가 결합되는 것을 보여준다.

수원화성에 가면 누구나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이 팔달문이나 장안문처럼 크고 웅장하면서도 옹성이라는 독특한 모습을 지닌 성문일 것이다. 사실 성곽에 관심이 없다면 이러한 옹성(甕城 성문의 앞을 둥글게 감고 있으며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어시설)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 이후로 이런 옹성을 이용한 방어시설이 널리 사용되었었다. 그리고 금나라나 요나라의 성곽에서도 보이는 등 널리 쓰인 방어시설이다.

그밖에 특이한 방어진지인 공심돈이나 멋들어지면서도, 작년에 화마로 인하여 피해를 보았던 서장대, 그리고 용연과 화홍문, 이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수원화성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는 방화수류정은 어느 누가 가더라도 빠짐없이 보고 오는 수원화성의 백미라 하겠다. 또한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봉수대가 성안에 설치되어 그 아름답고 단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봉돈 또한 수원화성을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건축이다.

용도(甬道)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a

수원화성의 용도. 여장과 여장 사이의 성벽이 꽤 두껍다. 두꺼운 이유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 주로 화포를 쓰며 싸우는 전술이 발전하였기에 성벽이 낮아지고, 대신 두꺼워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 송영대


그러나 수원화성을 찾는 이들은 용도(甬道)라는 걸알까? 용도? 꽤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사실 성곽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이 용도라는 이름은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는다. 용(甬)이란 양쪽에 담이 있는 길을 말하는 것으로서, 즉 양쪽에 성가퀴(女牆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가 있는 성벽을 말한다. 다만 성벽보다는 일반적인 길처럼 느껴진다.

사실 용도를 정확하게 알려면 수원화성의 전체적인 면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수원화성의 서남쪽은 팔달산이 있으며, 그 정상에 서장대라는 전시 군사 지휘소가 있다. 팔달문에서 팔달산으로 성벽이 계속 올라가는데, 이는 산의 능선에 따라서 성벽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운데 부분이면서도 높은 부분에 성벽을 쌓는데, 이런 식으로 팔달산에는 성벽이 이어져 있다.

그런데 이게 남치와 남포루 쪽을 지나서 서남암문 쪽에 다다르면 기존에는 없던 이상이 생긴다. 그쪽 부분의 지형은 남치나 남포루 쪽과 비교해서 넓은 부분이 비슷한 높이로서 성벽을 쌓아 서삼치 쪽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적에게 안정적인 공격 진지를 주게 된다.

즉 용도가 없는 경우를 상정해 볼 시, 수원화성에서 전투 시 적에게 약점으로 노출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서남암문 쪽이다. 산의 능선에 따라서 성벽을 쌓고 이곳에서 적을 방어하는 것은 적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적의 모습을 관망하면서 싸우면 전투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도가 없다면 그러한 목적에서 일부가 사라져, 도리어 적에게 전략적 요충지를 주게 된다. 이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군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이다.

고구려와 당의 안시성 싸움에서 양만춘과 대치하고 있었던 당 태종은 고구려의 뛰어난 방어에 의하여 공격이 계속 저지당한다. 이때, 당태종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토산(土山)이다. 흙으로 안시성 바깥에 산을 쌓아서 공격 진지를 만든다는 것인데, 이는 안시성보다 더 높은 곳에서 적의 모습을 관망하고, 그에 따라서 부대 배치를 하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공성병기 중 소차라고 하는 것도 있는데, 이는 적의 성벽보다 높게 만들어서 적의 모습을 관망할 수 있게 한 기계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지 점령은 전투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지를 탈환하면 적진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전투의 수행에서 좀 더 수월해진다. 즉 이 고지를 적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적에게 아군의 절반 이상을 갖다 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럼 이 상황에서 화성은 적에게 고지를 주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2가지 선택권이 있다. 하나는 지금의 화양루까지 성벽을 빙 두르는 방식이다. 이 경우는 방어적 효율성 면에서는 올바른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엔 본래의 화성의 모습과 대조해 보아서 공사의 범위가 꽤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에 소비되는 인력과 재력의 피해는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 섣부르게 성벽을 쌓기도, 그렇다고 쌓지 않기도 모호한 상황이 온다. 이 상황에서 화성은 매우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 그 선택의 산물이 바로 용도이다. 화양루까지 성벽을 쌓고, 이는 거대한 치 모양을 하게 한다. 이게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공사에서 재력과 인력을 절반이나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앞서 말한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용도는 본래의 성에 붙어서 이어진 성벽에서 방어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방비는 단연 허술해진다. 즉 방어진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생기는 것이다. 즉 용도는 방어의 취약점이 생기며 이곳이 점령될 경우 적에게 중요한 고지를 내주게 되므로, 방비에 신경을 쓰지 않을 래야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점령당한다면 아군에게 치명적이다.

군사건축의 정수를 보여준 수원화성

a

용도동치. 치란 화살의 사정거리를 고려하여 성벽마다 불쑥 튀어나온 방어시설을 말한다. 적에 대한 공격을 생각 할 때 그 효용성을 살린 방어시설이다. ⓒ 송영대


그러나 화성은 이미 그 수까지 넘겨짚고 있었다. 첫째로는 방어의 확충이다. 여기에서 치의 개념이 도입된다. 서남암문과 화양루의 가운데 부분에는 용도동치(甬道東雉)와 용도서치(甬道西雉)라는 게 있다. 치(雉)란 꿩이란 뜻이다. 왜 꿩이란 이름이 붙었나 하면, 꿩이 자신의 모습을 숨길 시 머리를 수풀에다가 넣고 꽁무니를 뒤에 뺀다고 하여 그 모습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치, 혹은 치성(雉城)이라고 부른 이 독특한 방어시설은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의 성곽역사에서 빼놓으래야 빼놓을 수 없는 시설이다.

중간쯤에 이 두 치가 있음으로서 방어의 보완이 된다. 그리고 용도의 끝부분에는 화양루(華陽樓), 즉 서남각루가 있다. 수원화성에는 총 4개의 각루가 있다. 각루란 높은 위치에 세워진 건물로서 주변을 감시하고 전투 시 군사를 지휘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화성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화양루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곳에서 용도의 군사들을 지휘하면서 적과 싸웠던 것이다.

그래도 문제가 하나 생긴다. 이런 시설을 갖춰놓았다고 하더라도 점령당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곧장 성내로 침입하면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화성의 구조물을 보면 마치 장기를 두는 것 같다. 적의 수를 읽고 미리 포진을 펼침으로서, 이미 고수의 수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침입을 막는 결정적인 것이 서남암문(西南暗門)이다. 서남암문은 서남포사(西南鋪舍)와 함께 구조물을 이루고 있다. 포사(鋪舍)란 성 밖의 위험을 성안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건물로서,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함을 알린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암문은 성 밖에 첩자를 보내거나 군량미를 운송하는 등, 적과의 싸움에서 섣불리 4대문으로 나가기 힘든 경우 사용하는 문인데, 이곳에서는 그러한 목적보다도 방비적 역할이 강하다. 그리고 포사가 있기 때문에 용도가 함락되었더라도 주위에 알려서 방어진을 더욱더 견고하게 할 수 있다.

이곳을 직접 밟으면서 마음속으로 내내 찬사를 금할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을 떠올리면서 이중, 삼중으로 이미 포진을 쳐 놓은 고수의 손길을 직접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옹성이나 치, 공심돈보다 더 화성의 방어능력이 뛰어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용도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용도의 역할에 대해서 화성 내에선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서남암문과 서남포사, 그리고 용도동치와 용도서치, 화양루, 이 용도와 관련된 설명은 이 5가지 시설물에 대한 내용뿐이지, 가장 중요한 용도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다.

수원화성은 18세기 조선의 군사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건축물이다. 그리고 곳곳에는 세밀하게 미학적 측면과 방어적 측면을 고려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없고 단순히 경관만 구경한다면 이를 무엇이라 하겠는가.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문화재를 두고 정작 그 정수에 대한 자랑을 하지 못한다면 껍데기만 가지고 자랑하지, 정작 알맹이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조선은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었으며 전쟁에 서투른 나라도 아니었다. 이러한 면모를 직접 느끼고 싶다면 수원화성으로 오라. 그리고 이곳에 생뚱맞게 있는 용도를 보고, 이 용도가 얼마나 높은 수준의 군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느껴보라고 말이다. 조상의 얼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게 아닐까?
#수원화성 #화양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판도라의 상자' 만지작거리는 교육부... 감당 가능한가
  3. 3 [단독]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엮으려는 시도 있었다"
  4. 4 쌍방울이 이재명 위해 돈 보냈다? 다른 정황 나왔다
  5. 5 카톡 안 보는 '요즘 10대 애들'의 소통법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