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다시 고향 찾은 성악가

등록 2007.05.16 10:04수정 2007.05.16 21:59
0
원고료로 응원
a

자신의 노래에 취한 듯한 표정으로 열창을 하고 있는 테너 심송학 교수 ⓒ 지요하

지난 12일(토) 오후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는 특별하면서도 조촐한 음악 행사가 있었다. '태안군민을 위한 테너 심송학 교수 초청 음악회'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재경태안군향우회(회장 류상배)'가 주최하고 태안군이 후원한 행사로서, 태안 출신 유일한 성악가인 테너 심송학(경북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씨가 5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아 고향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리였다.

심송학 교수의 최초 고향 방문 독창회는 2002년 10월 22일에 있었다. 나는 그때 고교 졸업 후 36년 만에 그를 처음 만날 수 있었고, 또 고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그의 육성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심송학 교수의 고향 방문 독창회를 축하하는 시를 낭송하여 그 행사를 더욱 의미 있게 했다.

성악가 심송학 교수는 태안읍 남문리 '정주내'라는 마을의 '뒷골'에서 태어났다. 천수만의 물줄기가 닿던 곳이었고, 어선들이 닻을 내리고 안전하게 머물던 곳이었다. 옛날에는 천수만의 갯물이 태안 읍내 코앞에까지 닿았음을 알게 하는 정주내(碇舟川)의 건너편(뒷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고향 이름을 떠올리면 절로 '평온'을 느낀다고 했다.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태안고등학교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서울대에 진학한 사람이다. 서울대 음대에서 한국 최초 소프라노 교수였던 정훈모 여사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성악을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 독일로 가서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음악대학원에 입학, 최고 점수로 졸업했다.

1982년 귀국 후 모교인 서울대 음대와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다가 1983년 3월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 교수로 발령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 경북대 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한 그는 지금까지 15회의 '학구적인' 독창회를 열고 있는데,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 프랑스와 일본 등지에서 가진 독창회 목록 안에는 '제13회 독창회(2002년 충남 태안 문화예술회관) : 고향방문 예술가곡 독창회'라는 항목도 있다.

활발한 해외 연주(미국·일본·독일·중국·인도 등)를 통한 문화외교 공로로 정부 표창을 받기도 한 그는 서정성이 넘치는 곱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노래하며, 감정 표현과 음악성이 뛰어난 성악가로 평가받는다. 세속적이지 않은 정갈한 품성, 늘 연구하는 교수, 연구 업적이 튼실한 음악학자라는 평가도 있다.

매년 일본에서 열리는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유명한 음악인들이다. 그 심사위원 중에 한국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심송학 교수가 참여하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a

무대 현수막을 찍기 위해 공연 진행 중에 살며시 몸을 일으켜야 했다. 내 눈에는 그 어떤 문화행사 현수막보다도 귀중하게 느껴지는 현수막이었다. ⓒ 지요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과 미국 경기가 열린 대구 구장에서 애국가를 불러 한국 '4강 신화'에 동참하기도 한 그는 KBS의 '열린 음악회'에도 여러 번 출연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고향 사람들에게도 성악가 심송학의 존재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태안고등학교 3회 출신으로 내가 1년 선배가 된다. 중학생 시절의 그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고등학생 시절의 그의 모습은 많이 기억한다. 서로 공평하게 공유하고 있는 기억들도 있다. 한 학년에 한 학급씩만 있었던 때라 우리는 전교생 모두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2002년의 첫 번째 고향 방문 독창회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내게 일찌감치 고향 음악회 소식을 알려 주었다. 4월 15일 내게 보낸 메일에서 "다시 또 고향에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제일 먼저 선배님께 알려드립니다"라는 말을 적어서 나를 잠시 감동에 젖게 했다.

"고향의 순수한 삶 속에서 늘 은은한 미소를 짓고 사시는 선배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옛날 학교 다닐 때 골키퍼 하던 모습, 또 여동생과 당시 미술 선생님과 함께 천주교회 앞마당에서 사진 찍었던 추억도 있구요!"라는 구절은 나를 잠시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했다.

그는 또 "2002년 첫 번째 고향 방문 독창회 때 '정주내의 산들바람'이라는 귀한 시를 지어서 낭독해주셨죠? '정주내의 호젓한 소나무 숲에 살던 학이/천년 예술의 혼을 안고 다시 고향 숲에 내려앉았다'라고요!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2002년의 나에 대한 고마움을 추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정성스럽게 쓴 메일에 이런 얘기를 적었다.

"제가 17곡의 노래를 부르고, 특별 출연으로 바이올린 연주 및 2명의 소프라노가 함께 할 것입니다. 광복 전에 작곡된 홍난파·현제명의 한국 가곡 7곡을 부르고, 잘 알려진 독일 노래 및 이태리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홍난파와 현제명이 친일파 음악가라고 하지만, 홍난파 선생의 가곡들은 조국의 광복을 바라는 마음이 가득 표현되어 있는 노래들이고, 현제명 선생의 곡들은 미국 유학 시절 고향을 그리며 작곡한 노래들이지요.

그 곡들은 제가 어릴 적 고향 집 마당에서 늘 부르던 노래들로, 저로 하여금 늘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조금은 가슴 아픈 노래들이기도 하답니다. 이제 저도 부르는 나이로 60이 되었습니다. 언제 또 고향에서 공식적으로 노래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는 더 큰 용기와 정열로, 정말 뜨겁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존경하는 선배님 뵙게 되길 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a

오른쪽부터 소프라노 이은영 교수, 테너 심송학 교수, 소프라노 장윤정 교수, 피아니스트 정혜경씨, 바이올리니스트 윤수영 교수 ⓒ 지요하

2002년과는 달리 심송학 교수의 두 번째 고향 방문 독창회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윤수영 교수와 심 교수의 제자들인 듯한 소프라노 이은영·장윤정 교수가 찬조 출연하여 무대를 더욱 알차게 했다. 그리고 피아노 반주는 대구 성악아카데미 반주자이며 월간 '음악저널' 편집위원인 정혜경씨가 맡았다.

나는 아내와 함께 심송학 교수의 노래들을 들으며 고교 시절로 되돌아가는 듯한 '추억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그의 맑으면서도 절절한 음색에서 그의 '고향 사랑'을 체감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가 그려진 그의 얼굴을 보면서 '40여 년 전의 고교 시절이 바로 어제인 것 같은데…'라는 공연한 생각을 떠올리며 괜히 한숨을 삼키기도 했다. 심 교수의 첫 번째 고향 방문 독창회에 대한 기억은 세월 무상을 더욱 절감케 했다. 조금 전 일 같은데, 그새 5년 세월이 가뭇없이 흘렀다니…!

그리고 심 교수가 내게 보낸 메일의 한 구절이 자꾸 생각났다. "이제 저도 부르는 나이로 60이 되었습니다. 언제 또 고향에서 공식적으로 노래할지 모르겠습니다만"라고 한 말이다. 정말 그가 언제 또 고향에서 노래를 부를지는 알 수 없지만, 대학교수직에서 정년 퇴임을 한 후 65세쯤에서, 그리고 70세쯤에 고희 기념으로 다시 고향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음악에 처음 뜻을 두었던 고교 시절이 바로 어제 같고, 첫 번째 고향 방문 독창회 이후 5년 세월이 금세 흐른 것처럼, 5년 후도 또 10년 후도 금세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그가 홍난파의 <옛 동산에 올라> 같은 노래를 그때 다시 부른다면, 좀 더 짙은 정감 속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무상의 이치도 감득케 해줄 것이다.

그렇더라도, 언제가 되었든 그가 다시 고향을 찾아 노래를 부를 때도 오늘처럼 온 정열을 다해 힘차고 뜨겁게, 감미롭고도 애절하게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다면 세월의 덧없음, 그 무상의 이치도 저 풍성한 저녁 놀빛 같은 아름다움으로 느껴질 거라는 생각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 나는 그의 노래에 취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게는 더욱 값진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흥겨움 속에서도 가슴 먹먹한, 이상한 슬픔도 즐긴 시간이었다.

고향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음악 행사를 열어준 '재경태안군향우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재경향우회의 기획에 적극 호응하여 5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아준 성악가 심송학 교수께도 감사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의 2002년 첫 번째 고향 방문 독창회 때 내가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 무대에서 낭송했던 '축시'를 오늘 여기에 다시 한번 올려본다.

a

2002년 10월, 고교 졸업 후 36년만에 처음 만난 데 이어 5년만인 2007년 5월 12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 지요하


정주내의 산들바람
―심송학 교수의 고향방문 예술가곡 독창회를 찬하며

고향에 머물러 사는 덕에
거의 매일 백화산을 올라
고장의 모습을 보고 또 보는 것이
아주 질감 좋은 낙이 되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고장의 모습들 속에는
변하는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정주내의 풍경이
여전히 정주내로 남아 있었다

이름이 왜 정주내일까?
천수만의 은밀한 물 끝이 마련해 준
정박의 안온함은
늘 내일의 꿈을 간직하는 휴식이었다

그 정주내의 호젓한 소나무 숲에는
언제부턴가 학이 하나 살고 있었다
이윽고 천년의 날개를 펴서
천수만의 하늘
태안반도의 하늘을 힘차게 날더니
그는 마침내 저 대양을 품에 안게 되었다

그리하여 갯마을의 전설을 간직한
정주내의 호젓한 소나무 숲에는
지금도 여전히 학이 살게 되었다
세상을 웅비하는 학이 있으므로
정주내는 새롭게
학마을의 전설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천년 예술의 혼을 안고 날아와서
정주내의 고향 숲에 내려앉은,
고향 숲을 떠났으되 떠나지 않은
정주내의 자랑스러운 학을 본다

천수만의 물 끝을 밟고 돌아와
정박의 닻을 내린 배인 듯
잠시 날개를 접고 앉은
학의 안온한 휴식을 본다

정박과 휴식은
내일의 항해와 비상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여정

고향 정주내의 정박 속에서도
여정을 계속하는 그를 보며
정주내의 소나무 숲
밤골의 밤나무 밭에서 불고 있는
산들바람의 이유를
나는 알게 되었다

그것이
천년 예술의 혼을 펼치고 있는
학의 날개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백화산에서 보는 정주내의 풍경이
예전과 똑같으면서도
사뭇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AD

AD

인기기사

  1. 1 아베의 몰락... 흥미로운 내부의 속사정
  2. 2 정경심 재판에 또 나온 조교 "징계 무서워 검찰이 불러주는 대로..."
  3. 3 '윤석열 저거 죽여야겠다' 방향 잃은 김경진의 해석
  4. 4 케이팝 팬들 왜 이러는 거지? 세계 언론이 바빠졌다
  5. 5 [단독입수] 뺨 때리고 경찰 부른 유치원장, 영상에 다 찍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