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실언'과 '실심'

유권자의 '묻지마 지지'가 정치인을 오만케 한다

등록 2007.05.21 14:27수정 2007.05.2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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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5일 오후 대전 연정국악문화회관에서 한나라충청포럼 초청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말'은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

'생각한다'는 것과 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만물의 영장으로 꼽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동물들도 지능이 있고 분노와 공포 그리고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사고체계는 처한 환경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작용하지만 인간의 사고는 '언어'라는 고도로 섬세한 체계에 의해서 진행되고 표현된다.

'말 한마디도 천냥 빚을 갚는다'거나 '촌철살인' 같은 고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 말해주며, 언어가 인간의 본성을 표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동시에 내뱉는 말을 통해 그 사람의 본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준거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말실수하는 것을 흔히 '실언'이라고 말한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얼떨결에 함, 말실수'는 실언(失言)의 사전적 해석이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의 실언을 통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 즉 "실언은 말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본심을 흘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엊그제 모 방송사의 여론조사에서도 가장 유력한 차기대선 주자인 이명박씨의 잇따른 말실수가 단순한 구설수가 아닌 후보 자체의 자질론으로 비화되는 것은 그가 흘린 말[失言]이 사실은 그의 단순한 말이 아닌 그의 마음을 흘린 것[失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실언은 빈도가 너무 잦고 설사 발언이 파문을 일으켜도 '말실수'라고 일축함으로써 유력한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에 큰 위협이 되지 못하지만 그의 발언을 통해 흘러나온 그의 의중은 민주화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흐름에 그가 역행하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여러 가지 정황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서울시장 시절 '서울을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기도는 그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정황증거가 되고 있다. 서울은 서울시장의 소유물이 아닌 천만 시민의 서울이며 대한민국 역사 중 600년이란 시간을 도읍으로 자리해온 우리 역사의 서울이다. 이런 서울을 자신이 단지 교회 장로란 이유로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한다면 타종교인들은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 시장을 바꾸어야 할 판이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하여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는 발언은 그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개발독재의 논리에 충실한 마인드'를 가진 인물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민주주의는 그다지 효율적인 정치제도가 아니다.

집권을 꿈꾸는 정치인이 아닌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효율적인 정부는 초인처럼 위대하고 사심없는 지도자가 독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역사에서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해왔고, 이런 역사의 경험이 비록 효율성은 떨어지더라도 권력의 타락을 가장 잘 견제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가장 좋은 정치제도로 꼽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씨의 '군대를 동원해서…'란 발언은 충격적이다. 국민이 원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다면 "군대를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본심에 민주주의의 본질을 부정하고 소수의 독재 용인하는 마인드가 내재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민주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에게 "70~80년대 빈둥빈둥 놀던 사람이…"라고 표현한 그의 저의는 자신이 "산업세력의 주역"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했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 표현 역시 그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에 오를 자격을 가진 사람인지를 판단하는데 시비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그가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다"는 발언은 개발논리에 함몰된 그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드러내고 있다. 사실 '장애인이 불행하다'는 생각은 비장애인의 일방적 편견이다.

장애인이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슬픔을 많이 겪고 고통을 많이 겪고, 불편함을 많이 겪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불행하다고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주변의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대부분 장애인들은 슬픔을 통해 삶의 진실에 접근해있고 진정한 행복이 비장애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을 장애인이란 이유로 낙태시키거나 도태시켰다면, 우리는 '스티븐 호킹'나 '헬렌 켈러' 같은 위대한 인생이 주는 진정한 삶의 감동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하반신 불구가 된 전 체조선수인 김소영씨가 얼마나 참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지 안다면 이명박씨와 그 지지자들은 그의 발언에 대해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백배사죄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의 지지단체 일각에서는 "나라도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면 낙태를 고민하지 않겠는가?"라며 그의 발언을 옹호하고 있고, 심지어는 가볍게 들어넘길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역정을 내기도 한다.

정치인의 버릇을 잘못 가르치는 유권자

누가 뭐라해도 이명박씨는 차기 대통령직에 가장 근접해 있는 유력후보이다. 그런 사람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 발언을 예사로 하고 진심으로 반성하기는 고사하고 자신의 뜻이 '왜곡 전달되었다'거나 언론에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파장을 축소하려는 데만 급급하고 있고, 다수의 이익(사실 그의 주장이 다수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근거도 별로 없다)을 위해 소수는 기꺼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진 인물이란 것이 그의 실언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에도 변함없이 그는 대권고지를 향해 순탄하게 진군하고 있다.

문제는 유권자다.

우리 유권자들은 현실정치인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독선을 비판하면서도 막상 그들의 잘못된 행태를 보고도 변함없는 '묻지마 지지 태도'를 고수함으로써 그들이 더 오만하고 방자해지는데 일조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힐러리' 후보는 부시의 이라크전쟁을 지지한 것 때문에 정치적 위기를 겪었고, 한때 오바마 후보에게 역전당하기까지 했다. 오바마 후보 역시 대학 재학 시절 주차료 미납으로 곤란한 지경에 빠지기도 했다. 정치를 한다면 사소한 말이나 행동거지도 조심에 조심을 또 해야만 살아남는 곳이 미국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너무 다르다.

그들이 차떼기를 해도, 성추행을 해도 겉으로만 분노할 뿐 표로 성난 민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정치인이 굳이 도덕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 순간 약간 미안해하는 척하는 제스처만 쓰면 그냥 넘어가 주는 게 우리 유권자의 심판이다.

흔히들 정치판을 "X판"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치판을 난장판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정치인이 아닌 유권자들이다. 정말이다. 지금도 우리는 차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유력 정치인의 버릇을 잘못 들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 다음, 더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 다음, 더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이명박전시장 #말실수 #실언 #대권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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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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