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학교 갈래? 학원 갈래?"

[나만의 자녀 교육법⑥] 나는 아직 공교육을 믿는다

등록 2007.06.04 23:02수정 2007.06.1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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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나 공부라는 말은 어른이 되어 들어도 먹은 밥이 체할 정도로 감당하기 어렵다. 교육의 주체는 선생님이 될 것이고, 공부의 주체는 학생이 될 것이다. 교육과 공부는 지식을 주고받아야 할 관계에 놓인 선생님과 학생 간의 약속이다.

자식을 둔 어버이의 기대는 어느 집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어버이 자신이 놓인 현실보다는 자식이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기 때문이다. 그 기대로 인해 간혹 부모 자식 간에 거센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용돈] "과자 사먹고 싶어? 동시 하나 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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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아비에게 '모범상' 상장을 펼쳐보였다. ⓒ 강기희

우리 아들. 아비보다 키가 큰 멋진 사내이며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다. 아비는 시골에서 생활하고 아들은 도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렇게 떨어져 살아도 미안하지 않은 것은 아들을 믿고 있는 탓이기도 하고 아비와 자식의 삶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들을 믿는 까닭은 아이의 심성만큼은 아비로서 옳게 만들어 놓았다는 판단에서다. 아이가 어린 시절이었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아비는 어린 아들에게 틈만 나면 '타인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마라'와 '책을 많이 읽어라'를 부탁했다. 아들은 아비의 그 부탁을 잘 들어주었다. 대신 아비는 아들에게 모범을 보이려 애썼고, 책만큼은 넉넉하게 공급해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두 가지의 일은 아비로서도 실천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책 읽기를 즐겨했다. 그러니 무슨 날이 되면 선물은 당연 책이었다. 아비는 아비 방에서 책을 읽고 아들은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었다. 아들은 동화책에 나오는 낱말 뜻을 간혹 물어왔다.

아비는 물음에 답하는 대신 국어사전을 줘버렸다. 아비의 답변보다 정확한 답이 사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 후부터 아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사전을 뒤적였다. 그렇다고 책만 읽는 아이는 아니었다. 시간만 나면 운동장으로 달려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놀다 집으로 오곤 했다.

아들에게 용돈은 그냥 주지 않았다. 어차피 주어야할 용돈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아들의 책꽂이에 동시집을 여러 권 꽂아 놓고 아들에게 동시를 쓰게 했다. 과자를 먹고 싶으면 아들은 동시를 썼다.

아비는 아들의 작품을 현금으로 구입했다. 잘 쓰면 1000원에 사고 그보다 못하면 500원에 샀다. 어떤 날은 돈이 급했던지 하루 몇 편의 동시를 쓰기도 했다. 아래 동시는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쓴 작품이며 아비는 1000원에 구입했다.

서쪽 하늘 첫 번째 별
동냥아치별

오늘도 저녁밥
얻으러 왔나

매일 매일
저녁밥 얻으러 오지만

온 사람들 예쁘다고
자꾸 보지요

- 강승범 작, '동냥아치별' 전문


아비가 아들에게 교육한 것이 있다면 시간관리 개념이었다.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책 볼 때는 책 보고, 놀 때는 열심히 놀라고 했다.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할 때는 반드시 최선을 다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최선을 다하면 그것을 꼭 이루지 못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따라 붙었다. 아비가 할 수 있는 교육은 그뿐이었다.

[학원] 학원 갈 시간에 헌책방에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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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비 책상 앞에 앉아 작가를 꿈꾼다. ⓒ 강기희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원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주위 학부모들은 아들을 왜 학원에 보내지 않느냐고 힐난조로 말했다. 못 들은 척 넘어갔다. 아들이 학원을 다닌 것은 초등학교 입학 전 영어 학원을 3개월 정도 다닌 것이 전부였다. 알파벳만 배우고 나서 그마저 그만 두었다. 경제 사정도 그러했지만 학원이라는 곳이 마뜩찮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견디지 못해 학원을 찾았다. 대체 학원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가보자며 아들과 함께 동네에 있는 보습학원으로 갔다.

"학원의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학교 수업 일정보다 일주일 먼저 교과서 진도를 나가요."

학원 교육이라는 게 고작 선행학습이었다. 아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아들아, 아빠는 아들이 그렇게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같은 내용을 두 번씩이나 배울 필요가 있겠니? 그러니 학원과 학교 둘 중에 한 곳을 선택하렴."

학원을 선택했다면 학교를 보내지 않을 작정이었으나 아들은 학교를 선택했다. 아들과 사교육의 인연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학교를 파하고 시간이 많이 남았다. 친구들이 학원으로 가는 시간 아들은 놀거나 책을 읽었다.

아비는 그런 시간 아들을 데리고 헌책방 기행을 했다. 아들은 좁은 책방 안을 오가며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랐다. 몇 만원만 들고 가면 아들이 읽을 한 달 치 책이 생겼다. 아들이 책을 고르면 아비는 헌책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일을 맡았다.

아비는 아들의 방이 도서관이 되길 원했다. 그러자면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아야만 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아이의 방은 책으로 가득 찼다. 어림잡아 2000여 권. 그렇다고 아들에게 헌책만 구해 준 것은 아니다. 출판사에 가는 날이면 아들이 볼만한 책을 한 꾸러미씩 들고 왔다. 어떨 땐 아들을 위해 일부러 출판사 순례를 하기도 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지만 아들의 성적은 늘 상위에 있었다. 아비가 도와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수업시간만 열중하고 나머지 시간엔 열심히 놀라고 한 것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면서 공부시간을 따로 정했다. 매일 두 시간씩. 그 시간에 하는 일은 숙제와 영어로 읽기·쓰기였다.

2학년 무렵부터는 영어로 된 동화책을 사주고 번역을 하게 했다. 성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어로 된 책을 많이 읽히게 할 작정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아비는 그때 가지고 있던 사전을 아들에게 다 물려주었다. 영어사전과 한영사전·영영사전까지 주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들의 영어실력은 향상되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보다 월등했다. 4학년 땐 영문소설 <동물농장>을 헌책방에서 구해 번역을 시켰다. 어려운 단어가 많은지 속도는 느렸다. 속도가 중요한 것은 애초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겨울. 아비에겐 돈이 생겼다. 아들이 어릴 적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해외구경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비는 아들을 호주로 어학연수를 보냈다. 딱히 영어를 배우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만 확인하고 오면 그뿐이었다.

아들은 3주 만에 돌아왔고 배낭 속에는 이러저러한 선물과 함께 아비를 위한 담배 한 보루와 영어책 한 권이 들어있었다. 무슨 책이냐 물으니 호주의 서점에 들러 자신이 읽을 책을 구입했다고 했다. 기특했다. 어디에 가든지 서점에 들르는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필요한 일. 그날 아비는 아들에게 삼겹살을 구워 먹이며 엄청난 칭찬을 해주었다.

[중·고등학교] "그러다 언제 노냐?" "고3 때만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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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 갔다. ⓒ 강기희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칠 때 주변에선 다시 선행학습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학원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논리였다.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중학과정을 미리 배우기 위해 학원에 간다고 했지만 아비는 학교 교육을 믿기로 했다. 모든 학부모가 학교 교육을 믿지 못한다 해도 아비는 아들과 학교를 믿고 싶었다.

아들은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두 시간만 공부했다. 초등학교 때의 습관이 그렇게 몸에 밴 것이었다. 그쯤 되니 혼자 공부하는 방법도 나름대로 터득한 듯싶었다. 아비가 달리 말하지 않아도 아들은 알아서 하는 공부를 했다.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모범상을 탔다. 세상에 모범상보다 의미 있는 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비는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상을 아들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스스로 만들어냈다. 또 기특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들, 친구들은 학원이다 과외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부단하게 움직였지만 1·2학년 때까지는 열심히 놀았다. 그럼에도 나름의 공부 시간은 꼭 지키는 아들이라 걱정하지 않았다.

3학년에 올라가자 아들은 이제 공부 좀 해야겠다며 스스로 머리띠를 둘렀다.

밤 10시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은 물론이고 주말과 휴일에도 학교에 갔다.

"그러다 언제 노냐?"

아들이 걱정되어 그렇게 물었다.

"올해만 그러면 되는 걸요."

아들은 스스로 선택한 길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아비는 그런 아들이 염려되어 가능한 시간을 내어 놀고, 밤 12시 전에는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새벽까지 공부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라는 걸 아비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믿음] 공교육을 붕괴시킨 것은 학부모

요즘 아이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원을 다닌다. 학원 중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성 싶다. 우리 아들, 가난한 아비 탓도 있지만 성적을 위해 학원 한 번 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늘 좋은 성적을 내는 아들이 고맙고 충실하게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고맙다.

학원 중독에 걸린 아이들은 혼자 공부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 가서도 과외나 학원을 다닌다. 망국병이 아닐 수 없다. 아비가 아들을 믿는 것은 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열어 나갈 줄 아는 법을 터득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서는 학원에 다닌 아이들보다 학문 성취도가 빠를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아들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비는 선생님이 된 아들이 '공교육 붕괴'라는 말이 쏙 들어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고도 믿는다. 공교육을 붕괴시킨 것은 사회도 언론도 아니다. 학부모 스스로 공교육을 버린 것뿐이다.

그래놓고도 틈만 나면 학교 교육 제대로 하라고 삿대질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거울이 반듯해야 자신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공교육 붕괴라는 우려 속에서도 아들은 건강하게 성장했다. 선생님을 믿고 따른 결과이다.

아들아 고맙다. 원하는 길, 바라는 삶 꼭 이루길 바란다. 고3이라 책 읽을 시간 없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정신을 살찌우는 일 게을리 하지 마라. 삶을 버틸 수 있는 힘은 학교 성적이 아니라 책에서 나온다는 거 명심하고.
#공교육 #사교육 #학원 #학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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