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의 문승현과 '만인보'의 류근일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휴먼레벨'과 '소셜레벨' 간의 치열한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등록 2007.06.12 18:19수정 2007.06.1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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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속에도 미(美)가 있고, 보수 속에도 미(美)가 있다"

신문은 역시 제목 장사인가 보다. 자꾸 눈에 밟히는 제목 때문에 결국 한 면짜리 인터뷰 기사를 다 읽게 됐다. 또 뻔한 내용인 줄 알면서도 한 언론인의 '기명칼럼'을 끝까지 읽었다.

"독재 정권 사라지면 세상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늘(12일) <경향신문> '경향과의 만남'이라는 인터뷰 기사(글 장은교·사진 강윤중 기자) 제목이다. 신선할 것은 없다. 한두 번 들은 이야기, 한두 번 뱉은 이야기가 아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되뇌었을 법 하다. 어떤 때는 체념과 서글픔으로, 또 어떤 때는 원망과 분노로.

<경향>과 만난 문승현씨는 그래서 "신문도 방송도 일절 보지 않는다." 3년 전부터다. "만날 똑같은 세상이 싫어서"다. 세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사람들은 여전히 핏대 올리며 싸우고 다투는 꼴을 보기가 "지겨워서"다.

<경향>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그는 77년에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가 78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재입학했다.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 84년 노래모임 '새벽', 87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날이 오면' '5월의 노래' '사계' 작곡가다.

'경향과의 만남'에 실린 그의 모습은 여전히 앳된 청년이다. 앞머리에 가린 이마에 파인 주름살이 얼핏 그동안의 세월을 말해주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싱싱해 보인다. 노래와 함께 살아온 인생이어서 그런가.

하지만, 인터뷰 곳곳에서는 짙은 피로감이 배어 있다.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돌아가고 있는 세상사에 대한 지겨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데에서, 또 "국가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데는 30년 이상은 더 성숙해야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들이 그렇다. 오죽하면 신문도, 방송도 아예 끊어버렸을까.

그렇다면 그는 '그날'에 대한 희망마저 접어버린 것일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절망은 할지언정 포기할 수는 없을 터이니까.

"80년대에는 도덕적 정당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가치 다원화 시대에는 심미적, 문화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문화적 진보론'은 곧 "진보는 선이고 보수는 악인 것처럼 말하는" 정치적 진보-보수 담론의 폐기를 선언한다. "진보 속에도 미(美)가 있고, 보수 속에도 미(美)가 있다"고 보기에 "진짜 개혁이란 진보가 진보를 평가하고, 보수는 보수를 스스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게 정치"여서 "무조건 편 나눠서 싸우는" 싸움판이다. 그래서 그는 신문도, 방송도 끊었나 보다. 그에게 "자꾸 고독감이 생기"는 것은 아마 어쩔 수 없는 운명 같기도 하다.

"'민주화 운동' 본류가 무엇인지 이론투쟁 나서야"

여기 '고독한' 언론인이 또 하나 있다. 언론인 류근일. 문승현과는 세대도 다르고, 유형도 딴판이다. 문승현 표현대로라면 전형적인 '정치과잉형'이라 할 만 하다. 오늘 <조선일보> 그의 기명 칼럼 제목은 '6·10 민주화 세대의 마지막 소임'이었다. 이 역시 신선하지 않다. 얼마나 익숙한 메타포인가. 그런데 그 필자가 '류근일'이라는 점 때문에 결국 낚였다.

그는 치열한 이론투쟁, 사상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3류 좌파 기득권 세력'에 맞서 "4·19에서 6·10까지의 '민주화 운동'의 참다운 본류가 무엇인지에 대한 치열한 이론투쟁과 사상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병들지 않는' 선배세대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절규했다.

역시 류근일답다. '마지막 소임'이라는 대목에선 퇴장을 앞둔 '나이든 세대'의 비장한 결기와 함께 진한 '외로움'도 읽힌다.

이제는 <조선일보>를 떠났지만, <조선일보>에 있을 때 류근일처럼 '불순한 사람'도 없었다. 학생시절에는 진보적인 학생운동으로, 그리고 5·16과 유신체제 하에서는 '반체제 인사'로 10년 이상 징역을 산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조선일보> 내에서도 내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일찍 깨어나 인기척이 있다/…/1960년대 후반/그는 제2공화국 시대의 정치적 청춘이었다/깡마른 정신의 청춘이었다/군사 쿠데타 이래/감옥으로 가서/늙은 혁명가 김성숙을 만났다/김산의 <아리랑>에 나오는 붉은 승려 김충창/…/민청학련 사건으로 다시 검거되었다/곧 세상에 나와/그는 변화를 갈망하는 시대/변화를 미워하는 시대에서/차츰 메아리가 생기는 논객이었다/…"

시인 고은이 만인보(萬人譜)에 기록한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이다. 세상이 너무 변하지 않은 탓일까? 그가 '변화를 갈망하는 쪽'에서 '변화를 미워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면 그놈의 메아리 때문이었을까?

문승현과 류근일, 비교할 대상은 아니다. 세대가 다르고 종이 다르다. 하지만 오늘 두 사람의 말과 글은 2007년 6월 대한민국 삶의 풍경의 단면들을 예리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문승현의 문법에 따르자면 지금 오늘도 여전히 '휴먼레벨'과 '소셜레벨' 사이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80년대 #류근일 #그날이 오면 #조선일보 #문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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