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시절 '오송회 사건' 재심 결정 내려져

진실화해위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있었다"

등록 2007.06.13 17:50수정 2007.06.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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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발단은 한 권의 책이었다. 충청북도 보은 출생의 월북작가 오장환(1918~?)의 시집 <병든 서울>. 1945년 해방을 맞은 감격과 새로운 시대 건설에의 열망, 그리고 이어 찾아온 절망감과 좌절을 격정적으로 노래한 이 시집이 1982년 7월 20일 전라북도 군산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발견된다.

책을 습득한 터미널 직원은 이를 군산경찰서에 신고했고, 공안 수사관들은 책의 주인을 찾는 수사를 시작했다. 오장환은 1946년 좌파 문인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했고, 월북 작가인 탓에 그의 책은 5공 시절 '읽어서는 안 될' 금서였다.

군산경찰서 정보과 정보3계의 내사 끝에 같은 해 11월 당시 군산제일고등학교 교사이던 이광웅(시인·타계)을 비롯한 교사와 방송국 직원 등 9명이 체포된다. 경찰은 국가보안법 7조1항 위반 등의 혐의를 조사했고, 이듬해 전주지검이 이들을 기소했다.

'불온서적' <병든 서울> 소지와 탐독만이 아니라, 이들이 모임인 '오송회'가 학생들에게 좌경의식화 교육을 시켰다는 혐의를 추가했고, 동료교사들끼리 나눈 대화까지 문제삼았다.

1983년 12월 27일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소를 기각해 이들은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이광웅), 징역5년과 자격정지 5년(박정석) 등을 확정판결 받았다.

그리고 23년이 지난 2006년 5월 이광웅의 아들 이진명과 박정석 등 오송회 사건 당사자 9명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이하 진실화해위)에 "이 사건은 조작되었다며" 진실규명을 요청했다.

"가족과 변호인 접견 차단, 불법 감금, 가혹행위 등 문제"

이와 관련 진실화해위는 6월 12일 열린 제45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리고, "국가는 위법한 확정판결에 대해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환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른바 '오송회 사건'을 "5공 시절 현실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교사들을 강제연행·장기구금·고문해 처벌한 전형적인 사건"으로 규정하며 ▲구속영장 발부 전까지 10~23일간 가족 및 변호인 접견을 차단한 점 ▲대공분실과 여인숙 등에 불법 감금한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가한 점 ▲고문에 의한 자백을 증거로 이적단체 구성과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혐의를 적용한 점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송회 사건을 기소하고 재판한 전주지검과 전주지법·광주고법·대법원도 진실화해위로부터 "공익기관으로서의 직무를 저버리고, 국민 기본권 보장이라는 사법부의 책무를 방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주지검은 피해자들이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음에도 고문 수사관들이 배석한 상태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해 전주지법에 기소했고, 전주지법은 임의성 없는 자백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했다는 것이 진실화해위의 설명. 또, 당시 광주고법은 지법 선고 형량보다 더 높은 형량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부당하다"는 교사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마지막으로 진실화해위는 "진실화해 기본법 제4장에 따라 경찰, 검찰, 법원은 수사과정에서의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 자백에 의존한 무리한 기소, 증거재판주의를 위반한 유죄판결 등에 대해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진실화해위의 결정이 알려진 13일 오후 국회 브리핑룸에서는 오송회 사건 피해자들의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5공화국 시절 교사 연행·구금·구속사건
'보안위원회'가 교사 채용시 과거 전력 조회하기도

방기중 사건: 1987년 11월 강의 중 <찢겨진 산하>(정경모 저) 관련 리포트를 냈다는 이유로 건국대 시간강사 방기중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

아람회 사건: 1981년 7월 교사 6명을 포함한 군인, 경찰, 검찰청 직원, 고등학생 등 11명이 아람회라는 좌경용공 조직을 결성한 혐의로 구속됨.

상록회 사건: 1983년 12월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소속 교사 9명과 대학교수 3명이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통일문제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연구·분석하다가 연행된 사건. 이 사건으로 조승혁 목사, 이영희 교수, 강만길 교수 등 3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됨.

민중교육 사건: 1985년 교육무크지 <민중교육>의 내용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 하여 필자인 양정고 김진경 교사, 성동고 윤재철 교사 등이 출판사 주간 송기원(소설가)과 함께 구속된 사건. 이 책에 기고한 교사 10명은 파면, 7명은 강제사직 당함.

부림 사건: 1981년 9월 부산 대동고 고호석, 혜화여중 김희옥, 감적초교 설경혜, 모라여중 윤연희 등 교사 4명을 포함해 부산지역 학생운동 관련자 19명이 북한찬양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됨.

이병설 간첩사건: 1986년 7월 <민중교육> 사건으로 해임된 전 성동고 교사 유상덕이 안기부로 연행돼 북한 공작원에 포섭된 이병설과 접촉한 혐의로 구속됨. / 진실화해위 보도자료 일부 발췌
#오송회 #진실과화해위 #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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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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