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최남단 숨은 명물, 구덕포·청사포·미포

[영화처럼 재미있는 동해안 문화기행-마지막회]

등록 2007.06.14 11:24수정 2007.06.1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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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하면 해운대해수욕장이 유명하다. 그러나 해운대에 비해 유명세는 덜하지만 깨끗하면서도 한적한 해수욕장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송정해수욕장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송정해수욕장은 은빛 모래사장을 자랑하며 유유히 동해안의 최남단을 지키고 있다.

송정과 해운대 사이에는 세 개의 포구가 해안가 갯바위를 따라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세 포구는 동해안 최남단에 있는 소박한 포구이며, 정동진과 강릉까지 연결되는 동해남부선이 이들을 매일 어루만지고 있다. 녹슨 동해남부선을 따라 걷다가 차례로 만나게 되는 세 어촌의 풍경은 평화롭고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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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포 마을 전경 ⓒ 김대갑

송정해수욕장의 끄트머리에는 구덕포라는 한적한 포구가 자리 잡고 있다. 송정은 터널이 뚫리기 전만 해도 가기가 무척 힘든 곳이었다.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보니 대학생들이 단골로 MT를 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개량되었지만 송정해수욕장에 인접한 민박촌은 70년대풍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민박촌에 인접한 송정시장은 전통 재래시장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옛 시절의 향수를 아련히 느끼게 해준다.

송정해수욕장의 또 다른 이점은 해수욕장 끝자락에 위치한 구덕포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고, 앞바다에서 참고동과 낙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덕포는 약 200년 전에 함안 조씨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해운대 끝자락에 있는 미포나, 송정과 해운대 사이에 있는 청사포에 비해 가구 수가 별로 많지 않고 그렇게 잘 알려지지도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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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 항 ⓒ 김대갑

구덕포에서 청사포 사이에는 험준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해안가가 있다. 이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면 청사포가 나타난다. 해안가의 바위에는 강태공들이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키 작은 해송들이 바위 틈새에 붙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해안가에서 한참 떨어진 바위들에서는 따개비의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 철길에 의해 두 동강이 난 바위들에 붙어 있는 따개비들은 예전에 이곳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월은 이 바위를 희롱하던 동해의 차가운 물을 저만치 밀어붙인 것이다.

구덕포에서 동해남부선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갑자기 만나게 되는 한적한 포구. 이름하여 '청사포'라는 곳이다. 원래 청사포의 한자명은 '푸를 청'에 '뱀 사'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청사포에는 '푸른 뱀'과 관계된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전설 하나가 맺혀 있다.

'예전 이 마을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았다. 하루는 고기잡이 나간 남편의 배가 파선되어 그만 남편이 익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김씨 성을 가진 그 아내는 해안가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남편이 오리라 생각하며 매일 기다렸다. 그 부인을 애처롭게 여긴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 부인을 동해 용궁으로 데려와 죽은 남편과 상봉시켰다.'

여기에서 청사라는 지명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마을 촌로들이 '뱀 사'자가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바닷가에 푸른색을 가진 돌이 많은 것에 착안해서 "靑沙浦", 즉 '푸른 모래의 포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청사포는 세 개의 포구 중에서 마을 형성의 역사가 가장 깊고, 가구 수도 제일 많다. 또한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역은 질 좋기로 소문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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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에서 미포로 가는 기차길 ⓒ 김대갑

청사포는 이채로운 이름만큼이나 황홀한 일출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청사포 일대는 일출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차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드넓은 동해의 수평선을 뚫고 오렌지빛을 발하며 올라오는 태양의 장엄한 모습에 누구나가 감동하기 때문이다.

여명이 밝아올 즈음이면 밤새 옻빛 바다를 헤맸던 배 한 척이 긴 여운을 끌며 들어오고, 일렁거리는 물결 위로는 황색 파스텔 톤의 무늬가 점점이 박히게 된다. 이렇게 현란한 청사포의 일출은 사람들을 어느덧 무아지경으로 빠지게 만든다.

청사포는 그 이름만으로도 곱디고운 해변가와 푸른 모래, 시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푸른 돌이 많았다는 낭만적인 해안가는 해변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횟집과 그 횟집들에서 쏟아내는 오수로 인해 사람들을 실망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청사포는 최백호의 노랫말처럼 '달맞이 고개에서 바다로 무너지는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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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포항 ⓒ 김대갑

이제 해운대의 끝자락이자 달맞이 고개의 끝자락인 '미포'로 넘어가 보자. '꼬리 미'자를 쓰는 미포는 '미늘' 혹은 '미암'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달맞이 고개가 있는 곳은 일명 '와우산'이라 하는데, 이는 소가 누워있는 산이란 뜻이다. 미포는 이 소의 꼬리 부분에 해당된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청사포에서 서쪽 방향의 해안가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곳이자, 달맞이 고개의 끄트머리에서 왼쪽으로 빠져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미포에서도 즐비한 횟집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포구 근처에 있는 노천 횟집에서 싼값에 회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 싼 것은 아니지만 해운대 백사장을 훤하게 들여다보면서 먹는 자연산 회는 횟집과는 다른 맛을 선사한다. 이밖에 미포에서는 동백섬과 광안대교를 오가는 유람선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부산의 참 멋을 알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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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포 표지석 ⓒ 김대갑

송정과 해운대 사이에 있는 이들 포구는 언제나 말없이 오가는 이들을 맞이한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밤, 이들 포구 어디에서나 폭포처럼 쏟아지는 은백색의 달빛을 받으며 벗과 더불어 마시는 술 맛은 그 얼마나 달콤하리. 포구의 방파제에서 목 놓아 노래를 불러도 좋고, 술에 취한 김에 객기를 부려도 허허 웃으며 넘어가는 넉넉한 포구들. 이들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동해안의 최남단을 말없이 지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구덕포 #청사포 #미포 #부산 #송정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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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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