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기 가득한 추리소설

[서평] 할런 코벤 <위험한 계약>

등록 2007.06.14 17:37수정 2007.06.1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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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코벤 <위험한 계약> ⓒ 노블마인

<단 한번의 시선>을 보았던 독자라면 이 작품을 보면서 조금 의아해질지도 모른다.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가파르게 독자들을 밀어붙이던 할런 코벤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인물이나 전개가 뭐랄까, 너무 헐렁하다.

스포츠 선수 에이전트인 마이런은 시종일관 욕설이 섞인 농담을 해대고, 마이런과 함께 다니는 '윈'이라는 사내는 무지막지하게 사람들을 위협하고 다닌다. 주제가 되는 살인사건도 최근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한참 옛날에 일어난 일이고, 등장인물들도 여기저기서 산만하게 튀어나오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에 섞여 들어가기 힘들다.

거기에 미국 사람들만이 알고 있을 그들만의 문화 아이콘이 세 마디에 한 번꼴로 출현해서 각주를 일일이 읽어가며 스토리를 따라가야 한다. 이런!

마이런은 실력 있는 농구 선수였다가 부상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약하고 있는 애매모호한 인물이다. 미식 축구계의 유망주 크리스천 스틸의 계약을 맺어가는 도중 크리스천의 옛 여자친구 캐시의 실종사건이 불거져서 곤경에 처하게 된 마이런은 과거의 흔적을 여러 각도에서 하나하나 추적해가며 퍼즐 조각을 맞춰가기 시작한다.

상스러운 욕이 잔뜩 섞인 대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미국 스포츠 문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 산만하고 상스러운 대사들이 다양한 미국 대중문화를 실감나게 체험하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비로소 할런 코벤이 유감없이 발휘하는 고도의 유머감각을 즐길 수 있다.

… 마이런은 미끼를 던져보았다.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마이런은 미끼를 던져보았다.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마이런은 손을 가슴에 얹고 머리를 극적으로 들어올렸다.
"그대의 마음속이 악한지 선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는 이렇게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났구나." (희곡 <햄릿> 중 햄릿의 대사)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마이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 대화에 셰익스피어를 끼워 넣는 걸 좋아하거든요. 제가 똑똑한 것처럼 들려서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


이쯤 되면 입을 크게 벌리고 깔깔깔깔 웃어 젖히지 않을 수가 없다. 마이런이라는 인물이 끊임없이 던지는 기발하고도 엉뚱한 대사들에 푹 빠져들 때쯤이면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살인사건 이야기가 절정에 올라 있고, 그 정점을 넘어서면서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모든 실마리가 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복잡하게 얽혀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 할런 코벤 특유의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반전이 보란 듯이 펼쳐진다. 이때 만나는 활자들은 거의 촉각이 되어 독자의 얼굴을 파고든다. 그랬구나! 그 삶이 범인이었구나! 세상에!

평범한 인간이 특정 상황을 맞아 어떻게 변해갈 수 있는지, 분노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책이다. 전문 탐정이 아닌 훤칠한 키의 스포츠 에이전트 마이런 볼리타가 출현하는 첫 번째 작품으로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기까지 유난히 오래 기다려야 하는,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을 꼭 주는 유머러스한 소설이다.

한 가지, 한 권 분량이면 충분한 소설을 두 권으로 만들기 위해 문장과 문장 사이를 바다처럼 넓게 띄워놓은 출판사의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서 읽는 내내 거슬렸다. 밀도 있는 작품이 이토록 길게 늘어져서 두 권으로 나온 것을 알게 된다면 할런 코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위험한 계약 1

할런 코벤 지음, 김민혜 옮김,
노블마인, 2007


#위험한 계약 #할런 코벤 #노블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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