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만화를 원한다

소재에서 표현법까지 만화콘텐츠 각광…지속적 발전 위해 만화계 주체적으로 나서야

등록 2007.06.15 13:00수정 2007.06.15 13:00
0
원고료로 응원
a

박인권의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 <쩐의 전쟁> ⓒ SBS

[사례 1] 직장인 A씨는 요즘 드라마 <쩐의 전쟁>과 <키드갱>에 푹 빠져 지낸다.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만화가 원작이라는 것.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감명깊게 본 영화 <300>과 <타짜>도 만화가 원작. '그렇다면 만화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A씨는 내친김에 이들의 원작만화까지 구해보기로 했다.

[사례 2] 대학생 B씨는 어느날 TV에서 만화 <외인구단>을 활용한 모 남성복 브랜드 광고를 봤다. 근래 히트 친 모 음료수 광고 역시 만화를 활용하고 있다. 각종 포털들은 만화를 앞세워 유저들을 유혹하고 최근에는 지하철 퇴근길에 만화만을 실은 무가지까지 선을 보이고 있다. B씨는 일상 콘텐츠에 만화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문화콘텐츠산업을 이끌어갈 콘텐츠로 만화가 뜨고 있다. 더 많은 상상력과 기발함으로, 더 진한 감동과 유쾌함으로 만화는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문화콘텐츠 전반을 넘나들며 맹활약하고 있다.

최근 시청율 30%를 돌파한 <쩐의 전쟁>과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을 마친 드라마 <궁>은 각각 박인권과 박소희의 만화가 원작이었다. 더욱이 게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세계 최초의 머드게임 <바람의 나라>을 비롯해 <리니지>, <라그나로크> 등의 인기게임이 모두 만화에서 탄생했다.

a

700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타짜> 역시 만화가 원작이다 ⓒ 싸이더스FNH

충무로까지 만화에 반했다. 1990년대 소설에 마음을 뺏긴 듯 보였던 영화계는 이제 '숨은 걸작만화' 찾기에 나섰다. <올드보이>, <타짜>, <미녀는 괴로워>, <300>, <바보>, <프리스트> 등 한국 만화와 외국 만화를 가리지 않고 숱한 만화들이 스크린으로 옮겨지고 있다.

또 연극무대에서까지 만화는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막을 올렸고,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최근 100회를 맞았다. <순정만화>가 역시 지난해 인기리에 상연됐다.

a

동명의 인기 온라인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 다온커뮤니케이션

이른바 만화원작사업이 콘텐츠시장의'화수분'이 된 것.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연극이 줄을 잇는다. 요즘엔 조금 재미난다 싶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것도 만화가 원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화의 원작 콘텐츠로의 가능성. 이는 수년 전부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원장 서병문) 등 전문기관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예견된 것이었다. 만화콘텐츠 기획자인 박성식 씨(한국출판만화협회 사업국장)는 "외형상으로 (만화원작사업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3~4년 전부터 예측했던 방향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비단 만화 이야기 자체만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다. 만화 특유의 '표현법'까지 각종 미디어를 통해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 <넘버3>의 고사성어 대결(?) 장면을 기억하는가. 이제는 크게 튀는 방식도 아닌 게 됐다. 최근에는 드라마툰(만화기법을 도입한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까지 나왔다.

이를 통해 일반인이 만화를 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만화스러움'은 어딘지 모르게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선입견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 고유의 표현법을 세련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온라인 만화는 물론 모바일 무빙카툰(애니메이션과 같이 장면을 붙여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모바일 만화), 드라마툰, 사진만화(드라마 등의 장면을 만화 형식으로 제작한 것) 등 갖가지 장르 실험들은 대중을 즐겁게 한다. 물론 여기에는 만화와, 변형된 미디어에 익숙한 십대들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만화의 변화는 전문가들조차 향후 5년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 다만 분명한 것은 미디어 융합과 콘텐츠 융합의 흐름 속에 글과 그림이 통합된 영상 미디어가 주류를 차지하며, 그 중심을 만화콘텐츠가 꿰차게 될 것이란 예측이 있을 뿐이다.

a

모 남성복 브랜드 광고에 사용된 만화 <외인구단>. 향수와 만화 특유의 위트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 이현세

만화가 갖는 콘텐츠로서의 가치에 눈뜬 문화콘텐츠업계는 만화콘텐츠를 다시 담기 위해 나섰다. '단벌구단'으로 많은 인기를 모았던 모 남성복 TV광고를 비롯, 만화를 활용한 갖가지 광고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고, 만화만을 내세운 오프라인 매체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LG텔레콤은 지난달 타블로이드판 만화무가지 <축 퇴근>을 선보였으며, 업계에 따르면 만화만을 싣는 무가잡지가 곧 나올 예정이다. 만화 인기를 증명하듯 지난해 한 업체는 브라운관과 리모콘으로 만화를 볼 수 있는 'TV만화' 채널을 선보이기도 했다. 고래로 스포츠신문들은 물론 소위 '중앙지'들까지 좋은 만화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만화평론가 주재국 씨는 "글보다 그림이 대중적인 파급력이 좋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신문은 그 성공적인 사례인데, 고우영의 <삼국지>와 같은 고전해학극으로 실제 부수를 대폭 늘리기도 했다. 만화는 다른 매체와 차별되는 뛰어난 콘텐츠로서의 상품성을 갖고 있으며 신문의 이미지를 젊게 하는 수단으로서도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만화원작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고 '만화'와 '만화다움'에 대한 호감이 강한 지금이야말로 만화산업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또 단순히 만화를 이용한 콘텐츠가 늘기보다는 만화계까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기존 미디어들의 구작 우려먹기나 콘텐츠 팔아치우기 식이 아니라 좋은 만화작품들이 나올 수 있도록 작금의 척박한 만화 창작 환경까지 신경써야 할 때라는 것.

a

박소희 작가의 히트작 <궁>. 지난해 드라마로 제작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박소희

주재국 씨는 "만화콘텐츠를 원하는 매체와 수요는 늘었지만 오히려 그 자리를 메워줄 콘텐츠는 없다. 이제 그 이야기들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하이틴 중심의 만화에만 콘텐츠가 몰려 성인이 볼 만한 만화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학습만화나 소년지, 소녀지 만화에 쏠려 있는 풍토에서 벗어나 양질의, 더욱 다양한 계층을 위한 만화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식 국장은 "아쉽게도 현재의 프로젝트들의 경우 만화계에서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며 "만화계가 주체가 돼 만화를 이용한 콘텐츠 제작은 물론 그에 파생된 부가사업까지 주도해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아직까지는 외부에서 만화작품을 발견해 접근해오는 경우가 대다수고 오리지널 콘텐츠의 10배의 위력을 갖는 부가사업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영화 <타짜> 개봉관에 주인공인 '고니' 캐릭터를 담은 화투와 트럼프 등이 선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라며 "아직은 우리 만화계가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처럼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만화 #넘버3 #선입견 #융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3. 3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4. 4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5. 5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