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속의 푸른 완두콩, 입안에서 사르르

몇 배로 되돌려주는 자연의 은혜, 고맙고 고마워라!

등록 2007.06.16 08:44수정 2007.06.1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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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과 완두콩은 아주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 전갑남

아내는 늘 바쁘다. 상담소 일은 타고난 천성인 것 같다. 거기다 일주일에 두 번은 대학에 나가 강의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밭에 자주 나오지 못한다. 어지간해서는 호미를 잡는 일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일까? 먼저 퇴근을 한 아내가 부추 밭을 일구고 있다.

"당신이 호미를 들 때가 다 있네?"
"만날 혼자서 김매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있어요."

부추는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을거리이다. 부추를 베어 겉절이도 하고, 부침개를 하여 매일 먹다시피 한다. 쌈을 쌀 때도 부추를 싸서 먹는다. 자라기가 무섭게 베어 먹는다.

오늘은 두엄도 끼얹고 밭을 일궈주느라 호미자루를 부지런히 놀린다. 아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완두콩이 야무지게 여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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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텃밭의 완두콩밭. 한동안 완두콩이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할 것이다. ⓒ 전갑남

일을 다 마치고는 완두콩밭으로 와서 호들갑이다. 부추밭 옆에는 서너 평 남짓 완두콩밭이 심어져 있다.

"와! 완두콩이 벌써 여물었어요!"
"덜 여문 것 같은데."
"아끼지 말고 따 먹자구요. 완두콩은 마르면 맛이 떨어지거든."
"그런가?"

완두콩을 딸 때면 파란 콩과 흰 쌀밥이 조화를 이룬다며 아내는 쌀밥을 짓는다. 일 년 내내 잡곡밥을 먹다 완두콩을 수확할 때만 쌀밥을 짓는 것이다.

완두콩 꼬투리를 보아하니 통통하게 여물기 시작하였다. 며칠 새 몰라보게 여물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자라준 게 너무 고맙다.

완두콩은 올 들어 우리 텃밭 농사에서 두 번째로 수확하는 작물이다. 첫 수확물은 상추를 비롯한 채소였다. 지금 한창 자라고 있다. 인심 좋은 이웃들과 나눠 먹고 있다.

아내가 잘 여문 것으로 골라 두어 주먹 딴다. 저녁밥에 넣어 먹을 욕심으로 손놀림이 빠르다.

"정말이지 흙은 우리에게 땀 흘린 것의 몇 배를 돌려주는 게 너무 신비스러워요. 작은 콩씨 하나에 정성을 조금 기울였는데…. 이렇게 풍성한 열매를 맺혀줄 줄이야! 감사 또 감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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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속의 보석같은 알갱이 ⓒ 전갑남

콩깍지 하나를 벌리자 파란 알갱이가 드러난다. 보석 같은 알갱이가 틈을 주지 않고 꽉 차있다. 얼마나 소중한 열매인가? 이렇게 예쁜 선물을 받다니, 몇 날 며칠을 기다린 결실에 보람이 느껴진다.

예전 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은 부지런하면 잘 살게 되어있다. 작은 씨 하나를 땅에 넣으면 어떤 것은 수십 배, 또 어떤 것은 수백 배로 늘려주지. 그러니 흙 속에 정성을 다해 가꿔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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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달린 완두콩. 자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 전갑남

정말이다. 한 알의 씨앗이 몇 배로 되돌려주는 자연의 이치가 얼마나 고마운가? 주렁주렁 달린 완두 꼬투리를 보니 족히 수십 배는 늘려준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죽으면 썩어질 살이라며 살아생전에 몸 아끼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흙은 반드시 보답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돈도 붙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농사지어 얻어지는 수확의 기쁨! 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이다. 씨를 뿌려놓고서 싹트기를 기다리고, 꽃이 피면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그런 기다림 끝에 수확하고, 어린 시절 특별한 날처럼 쌀밥을 짓는 아내를 보면 마음 깊이 차오르는 즐거움이 있다. 물론 돈이 되면 좋겠지만 아마추어인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완두콩에는 과학이 있다

완두콩은 이른 봄에 심는다. 3월 말경, 땅이 풀리기 시작하면 맨 먼저 심는 게 완두이다. 나는 씨 관리를 잘못하여 두었던 씨가 좀이 먹었다. 다행히 아는 분께서 씨를 주어 심었다.

씨를 넣고서 싹이 올라오기를 노심초사 기다렸다. 한 열흘 만에 싹이 텄나? 어린싹이 언제 자라 결실을 맺어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튼실한 결실을 가져왔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완두콩이 어느 정도 자라자 덩굴손이 뻗기 시작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도록 어린 나뭇가지를 꽂아주었다. 덩굴손이 지주를 감고 올라가 서로 의지하며 쓰러지지 않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식에 신비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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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꽃은 나비가 앉아 있는 착각이 든다. ⓒ 전갑남

완두콩은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와 1∼2개씩의 꽃이 핀다. 꽃을 가만히 바라보면 녹색의 이파리에 나비가 사뿐히 앉아 있는 것이 연상된다. 완두꽃은 그래서 접형화(蝶形花)에 해당된다. 완두콩의 꽃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쁘기 그지없다.

완두콩 하면 과학자 멘델이 유전법칙을 밝히는 실험에 이용한 식물로 유명하다. 완두는 한 세대가 짧고, 자손이 많이 나온 데다 자기 꽃의 화분이 암술머리에 붙는 현상으로 순종을 얻기 쉽다. 이런 점 때문에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밝히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흰 쌀밥과 푸른 완두콩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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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한 완두콩 열매이다. ⓒ 전갑남

모든 콩이 그렇듯이 완두콩도 단맛이 나고 영양덩어리다. 씨알은 탄수화물이 주성분이지만 단백질도 많다. 성숙하기 전의 어린 꼬투리에는 채소로 비타민이 풍부하다. 주로 팥이나 강낭콩처럼 밥에 넣어 먹는데, 떡이나 과자의 고물로 이용하면 색다른 맛이 난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오돌토돌하게 생긴 완두 콩깍지를 까기 시작했다. 한 꼬투리에 예닐곱 개의 알갱이가 들어있다. 알갱이 색깔이 연한 녹색으로 선명하다. 한 주먹 남짓 까놓고 보니 한 끼 먹을 양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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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은 맛도 달고, 영양만점의 먹을거리다. ⓒ 전갑남

"예전엔 밥에 콩을 넣어 먹으면 별로였는데."
"난 좋기만 하였는데, 영양도 좋구요."
"지금이야 흰 쌀밥에 콩을 넣어 맛있지, 꽁보리밥에 콩까지 넣은 게 뭐가 좋아?"
"하기야 그땐 배불리 먹는 게 우선이었지!"

예전 시꺼먼 꽁보리밥에 완두풋콩이 들어간 밥상이 생각난다. 밥상머리에서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야! 푸실푸실한 완두콩이 정말 맛있다!" 아버지의 속내를 그땐 왜 몰랐을까?

아내가 밥을 푼다. 풋콩이 주걱에 으깨어질까 조심스럽다. 하얀 쌀밥에 섞여있는 푸른 콩이 식욕을 돋운다. 예전 먹어보았던 꽁보리밥 속의 완두콩 맛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전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다. 푸실푸실한 맛이다. 단내가 난 풋콩이 입에 사르르 녹는다. 어느새 밥 한 공기가 비워진다.

흙과 조화를 이루어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준 자연의 선물에 고마움이 절로 일어난다. 주말엔 완두콩을 따서 서울 애들한테 가져가야겠다. 우리 애들도 완두콩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완두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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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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