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래방서 아리랑 세 번 부른 사연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 21] 한국 식당·노래방 현장수업 ②

등록 2007.06.19 12:01수정 2007.06.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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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석씨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고 있다. ⓒ 구은희


한국 식당에서의 현장 수업을 마치고 기념 촬영 후에 각자 차를 타고 '아리랑 노래방' 앞에 모였다. 한국어로 "H 비디오 뒤에 있다"는 이야기도 잘 알아들었다. 알아서 노래방에 찾아 온 학생들이 대견했다. 김대영씨 커플과 정성운씨는 피곤하다고 집에 돌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노래방에 모였다.

8명이 들어갈 수 있는 중간 방을 잡고 모두 둘러앉았다. 필리핀 학생 김정미씨와 강수진씨는 방으로 가는 복도에 붙어 있는 한국 가수들의 포스터를 보고 신곡 목록을 읽어보느라 방에 늦게 들어왔다. 들어오면서도 두 사람은 '슈퍼쥬니어가 어떻느니 빅뱅이 어떻느니' 하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리랑 아저씨' 왕중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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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저씨' 왕중화씨가 구성지게 노래 가락을 뽑아내고 있다. ⓒ 구은희


가장 먼저 노래 목록을 잡은 중국 학생 왕중화씨가 누른 노래 번호는 '1번'이었다. 그때 처음 노래방 기계의 '1번'이 바로 '아리랑'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전부터 아리랑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왕중화씨가 아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은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모두 아리랑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는 학생들이 모두 다 같이 불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전통 민요풍의 아리랑 노래가 끝나자마자 다시 나온 노래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윤도현 밴드가 응원가로 불렀던 '아리랑'이었다. 왕중화씨는 연속해서 두 개의 아리랑을 노래방 기계에 입력했던 것이었다. 전통 가락의 아리랑과는 달리 리듬이 빠르고 흥이 더욱 났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응원 모습이 화면에 나와 모두들 신나게 다시 한 번 아리랑을 불렀다.

그 후에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이 아는 노래들을 부르곤 했는데, 다시 한 번 아리랑 노래가 흘러나왔다. '똑같은 노래를 또 눌렀나' 해서 의아해 했는데, 한자로 가사가 뜨는 중국어 버전의 아리랑이었다. 다들 기막혀 하면서도 다시 한 번 아리랑을 신나게 불렀다.

왕중화씨는 본교의 수업을 받기 전까지는 아리랑이 일본 노래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일본어도 능숙한 왕중화씨는 일본에 갔을 때 아리랑 노래를 들었는데 참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좋아했는데, 본교 수업 중에 아리랑에 관한 내용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독도, 동해, 김치에 이어 이제 아리랑도 일본 것으로 착각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부터 슈퍼쥬니어의 '로꾸꺼'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흥이 더해졌다. 그동안 얌전히 노래만 따라 부르던 필리핀 학생 강수진씨와 김정미씨가 드디어 한국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인 필자도 따라 부르기 힘든 빠른 랩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특히 강수진씨의 경우에는 거의 가사를 외우고 있어서 화면을 굳이 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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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김정미, 강만석, 구희진, 왕중화씨(왼쪽에서부터). ⓒ 구은희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에 반해서 한국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브라질 학생 강만석씨는 한국 노래에 대해서 많이 알고는 있지만 잘 부르지는 못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입력해 놓고는 강수진씨에게 불러달라고 했다. 자신의 읽기 실력에 비해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을 다 읽을 수가 없었던 강만석씨는 랩 부분에는 조사나 연결어미 등만을 읽어서 모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였다.

그들의 한국 노래 실력은 정말 놀라웠다. '할리우드 보울'에서 개최된 한국 음악 축제에 다녀올 만큼 한국 음악을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의 실력인 줄은 정말 몰랐다.

"노래 번호도 한국어로 말해주세요"

그냥 즐기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다. 한국어만 하기로 했던 한국 식당에서의 규칙은 이곳에서도 지켜졌다. 초급 2반의 경우에는 한국어로 숫자를 10000까지 셀 수 있기 때문에, 노래방 번호도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에만 입력해 주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좀 더듬더듬하더니 조금 지나니 능숙하게 한국 숫자를 말했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도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말한 번호의 노래가 나올 때면, 자신이 제대로 숫자를 한국어로 말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아직 숫자를 배우지 못 한 초급 1반 학생들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매 학기마다 자두의 '김밥'이라는 노래를 가르쳐주곤 했는데, 올해에는 노래방에서 가르쳐 줄 수 있었다. 대부분 '김밥'이 뭔지를 알고 있고, 그 노랫말과 뮤직비디오가 재미있어서 함께 부르기에 좋은 노래다. 특별히 리듬이 한 글자가 한 음에 붙게 되어 있어서 발음을 분명히 할 수 있어서 학생들이 쉽게 따라 부르곤 한다.

그 노랫말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을 한 뒤 다같이 '김밥' 노래를 마지막으로 부르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노래방 현장 수업을 마쳤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구은희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구은희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노래방 #아리랑 #한국어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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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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