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모략하라, 그것이 살 길이다?

당하지 않고 사는 처세의 요령 <모략의 즐거움>

등록 2007.06.25 10:07수정 2007.06.2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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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사

아시아권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고전 <삼국지>는, '젊은 날에는 반드시 읽어야 하되, 나이들어서는 오히려 읽지 말아야할 책'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한다. <삼국지>의 거대한 역사 속에 담겨진 수많은 인생과 처세의 기술들은, 세상의 이치를 일깨워주는 좋은 학습서가 될 수 있지만, 세파에 닳고닳은 이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음모와 권력투쟁으로 얼룩진 추악한 역사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삼국지>만이 아니다. <초한지>, <열국지>, <손자병법> 등 우리가 소위 고전이라고 일컫는, '전란의 시대'를 다룬 작품들 중 9할은 음모와 중상모략의 역사로 꾸며져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하가 군주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비를 배신하며,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보다 현명한 것은, 중상모략을 통하여 적을 모함하거나 속임수로 상대를 기만하여 혼란에 빠뜨려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이처럼 춘추전국 시대 이래 중국 고대역사에서 발전해온 다양한 '병가'들은 전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략의 산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본디 권력지향적이다. 집단과 국가를 막론하고 권력의 속성이란 비정한 것이어서, 결코 둘로 나누어 가질 수 없으며, 우정이나 신의 또한 영원히 함께 가지 못한다. 누구나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오르기를 선망하지만 내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를 밟고 올라갈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가려면 먼저 남을 쓰러뜨려야한다.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수단이자 처세의 요령으로 모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흔히 모략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중국의 역사에서 모략은 엄연히 당대 사회의 정치적 처세술로 평가되었다.

'착하게 살자'나 '정직하게 살자'도 아니고, <모략의 즐거움>(마수취안/김영사)이라니, 당황스럽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어른들은 후손들에게 흔히 버릇처럼, 먹고 살려면 기술을 배워두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 모략도 고급 기술이다. 역사에서 현실적으로 모략과 전략의 엄밀한 차이를 구분지을 수도 없다. 대의명분은 현실 앞에 휴지조각이 되기 일쑤다.

정말 중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로 평가받는 '측천무후' 시대의 관료인 내준신은, <나직경(羅織經)>이라는 희한한 책을 편찬했는데, 그 내용은 상대방을 모략하고 음해하여 수렁에 빠뜨리는 권모술수의 요령이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측천무후가 황제에 오른 시대는, 중국 역사상 전례가 드물 정도로 정치적으로 혼탁했으며 충직한 신하보다는 권모술수에 능한 간신들이 득세한 시기라고 알려져 있다.

측천무후는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주변에 내준신 등 권모술수에 뛰어난 측근들을 두어 반대파를 숙청했고, 밀고와 탄압의 공포정치를 앞세워 여황제의 자리까지 올랐다.

측천무후의 시대가 열린 이후, 인맥이나 밀고에 기대어 관직 한자리라도 맡아보려는 인물들이 늘어나자 내준신이 일종의 처세술 가이드북이자 '간신들의 바이블'(?)로 정의해놓은 것이 바로 내직경이다.

권모술수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측천무후 조차도 이 책을 보고 내준신을 내심 두려워하였다고 하니, 씁쓸하긴 해도 '사악한 모략'이 얼마나 세상을 살아가는데 효율적인 기술인지를 잘 보여준다.

저자 마수취안은 현재 필사본으로만 전해지는 내직경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내용으로 <모략의 즐거움>을 선보였다. 유교적 문화가 깊이 배어있는 기존의 중국 고전들이 답답할만큼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책은 선에 대한 가식을 철저하게 비웃는 처세의 실용서다.

철저하게 상대방을 음해하고 모략의 수렁으로 빠트리기 위한 책략들로 가득차 있는 이 속물적인 내용들에 혀를 차면서도 일견 섬뜩한 것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살벌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모습과 너무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처세술 가이드북을 자처하는 책들이 숱하게 나오지만 '타인과의 경쟁'을 언급하는데 있어서는 상대보다 자기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에서야 어디 그런가. 냉혹한 현대사회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보다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대를 무장해제 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지극히 승리지향적 가치관에 있다.

저자는 '역대로 모든 군주들은 충신을 갈망하지만 소인들이 득실거린다. 충신이 비록 세상사람들의 존경을 받을지언정, 소인배들이 충신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한다.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한 것이고, 착하고 손해보는 삶보다는 나쁘고 편하게 산 사람들이 이득을 보게 되는 현실이다. 당하고 살지 않으려면 스스로 강해지거나 상대를 뛰어넘는 수밖에 없다.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저자는 나직경이 나쁜 취지로 집필되었지만 단지 오늘날같은 혼란의 시대에, 나쁜 상대에게 당하지 않기 위한 처세의 요령으로 참고하라고 권한다. 요컨대 총을 나쁘게 쓰는 놈이 나쁘지, 총 자체나 이를 발명한 사람이 나쁜게 아니라는 이른바 '이성적 도구론'이다.

냉정히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일수록 쉽게 맛이 들리는 법이라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면 오히려 불량식품같은 모략의 세계에 아예 발을 들이지 않는 게 현명할지도.

모략의 즐거움 - 살며시 다가가 적을 낚아채고 옭아매는 12가지 기술!

마수취안 지음, 이영란 옮김,
김영사, 2007


#모략의 즐거움 #마수취안 #김영사 #처세술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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