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헌법소원은 정책홍보실패의 결과물

등록 2007.06.25 16:37수정 2007.06.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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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달라며 헌법소원한 일을 두고 시끄럽다. 최근 대통령의 발언들에 대한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의무위반 결론이 대통령의 정책방어권을 박탈했다며 헌법소원을 검토하더니 갑자기 자연인 노무현의 정치활동자유 쟁취를 헌소이유로 변경한 것은 보기에 좀 민망한 일이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우리 선거문화와 법제가 가능하도록 민도가 높아져야 한다고 보지만 어쨌든 국민여론이 곱지 않은 가운데 헌법재판소의 최종판결을 기다릴 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헌법소원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홍보실패가 지금의 이런 사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애초 노무현 정부는 인터넷 정권이란 지칭에서 알 수 있듯이(꼭 인터넷만으로 집권했다는 뜻이 아니라 선도성을 말한다) 국민과의 쌍방향소통을 통해 들어선 정부다. 여기에는 신문,방송 등 전통적인 단방향 언론과의 좋지 않은 악연도 한몫하고 있으나 어쨌든 노무현 정부는 인터넷이 발달했기에 출현가능한 정권이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는 처음부터 좀 다른 홍보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했다. 비우호적인 기존 언론에 의존하기보다 인터넷과 방송,그리고 각종 뉴미디어를 통한 새로운 홍보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했다. 직접 국민과 대면하고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소통채널을 확보했어야 했다. 주례 라디오나 인터넷 연설, 혹은 텔레비젼 연설이나 대담 등도 좋은 수단이다. 반대언론이 왜곡한 내용에 대해 매주 연설하거나 토론, 대담을 한다면 반대언론의 터무니없는 왜곡은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최근의 방식이 역풍을 부르는 것은 임기 내내 하지 않던 행태를 하기 때문이고 그 행태의 생경함은 대선시기와 맞물려 선거개입의혹으로 부풀려졌다. 그리고 결국 대통령의 헌법소원이란 초유의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헌법소원의 결과와 무관하게 노무현정부와 그 참모들이 적어도 정책홍보에서만큼은 무능했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한번 살펴보는 것은 향후 정권의 홍보기능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예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먼저 청와대입성과 더불어 국정홍보처의 장,차장과 청와대 홍보수석실을 채웠던 인물들을 보면 이른바 제도언론기자출신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단방향소통인 신문기자출신들로서 언론의 상징조작 메카니즘에 능통한 인물이긴 하지만 정작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킨 인터넷에는 문외한들이 대부분이다. 인터넷을 이용할 줄은 알았겠지만 쌍방향소통이라는 새로운 소통문화환경에서 단방향시대에서 갈고 닦은 특기를 발휘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그들이 처음 한 것이 노 대통령의 입을 틀어막은 일이다. 말만 하면 서민적 말투와 표현양식 때문에 거대 보수언론의 ‘먹잇감’이 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체의 발언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차라리 임기 초반부터 지금의 거친(?)언행을 그대로 두었더라면 지금쯤 국민도 최고권력자의 언행에 적응되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문제의 선거법과 공무원법규정을 개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말투와 표현양식이 더 이상 노무현 죽이기의 근거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말썽장이’(?) 대통령의 입을 봉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임무를 다했다.

다음으로 이들 참모들이 할 수 있는 홍보정책은 관영언론 만들기다. 조선.중앙,동아,문화일보와 같은 거대 반대언론의 등쌀에 못 이겨 이를 대항할 만한 수단을 찾다보니 대항매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언론의 논조가 워낙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다보니 여기까지는 동의할 수 있겠는데 그 해법이란 것이 국정브리핑 신설과 청와대 홈페이지의 홍보성 강화('청와대브리핑'으로의 명칭변경 등), 그리고 케이블방송인 정책방송(K-TV)의 홍보기능강화로 나타난 것은 실소를 금할 수없는 일이다.

신문시장의 70%이상을 장악한 신문과 일부 상업방송 권력에 대해 겨우 인터넷사이트 두어 개와 1개의 정부소유 케이블채널로 ‘맞짱’뜨려는 신문기자출신의 홍보참모들이었다. 조족지혈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임에도 그들의 문제의식은 수백만 대군을 맞닥뜨린 수백여 전사들이 ‘적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겠다’는 패배주의적 사고에서 홍보기획이 시작된 것이다. 최근 노 대통령이 언론과의 대담에서 국정브리핑에 하루 몇 만 명이 들어온다느니 하는 언급을 보면서 참 한가한 참모와 대통령이란 생각이 들었다면 불경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애지중지 만들어놓은 청와대와 정부 홍보기구가 임기 후에도 여전히 자신들을 보장해줄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정책을 사후에 비판하는 강력한 관영매체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보다는 차라리 반대언론에 대항할 수 있는 언론에 대한 기능을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며 언론개혁적 차원에서 강화시키는 것이 보다 항구적인 대책은 아니었을까.

거대신문사들의 불공정거래관행인 경품제공이나 불법무가지 제공에 대한 신고보상금이 책정된 예산의 10%도 채 지출되지 않은 대언론 정책홍보미숙은 전체 홍보정책의 첫걸음부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 주고 있다.

정책홍보라는 것이 언론사주와 기자들에 대한 특혜성 로비라는 전통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아예 정반대로 튀어 사사건건 고소고발하거나(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관영언론 을 만들면 된다는 일도양단식의 대응, 이런 대증적 요법에서 차분하게 언론개혁을 통해 개혁언론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면모는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말하자면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부 인터넷홍보사이트를 개설하는 문제의식 속에는 쌍방향소통문화를 그저 소통사이트개설 하나로 가능하리라 보는 단순무지함이 있었고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정부와 청와대의 정책홍보를 좌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임기 중에 못한 홍보를 퇴임 후에 하겠다고 정치세력화를 겸한 포럼을 위해 저리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홍보조직의 인사시스템에는 ‘끼리끼리’의 담합적 평가가 가능한 ‘다면평가제도’, 그러나 노무현정부가 혁신적 인사시스템으로 자랑하는 ‘다면평가제도’가 있었으니 웃지못할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쌍방향 소통기구인 인터넷이 어떻게 노무현 정부를 만들었는지 노 대통령 자신도 잘 몰랐고 지금도 모르고 있다. 그저 자신이 감동의 근거인 3당야합 불참과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자산만으로 정권을 담당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감동적 근거 외에도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는 국민적 요구에 노무현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 여겼던 정서적 여론이야말로 노무현 정부를 만든 핵심적 배경이다. 즉 서민대중과의 소통에 대한 신뢰자본이 가장 큰 후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정작 임기개시와 더불어 청와대 구중궁궐에 갇혀 살았다. 여기에는 탄핵사태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겠지만 대통령 스스로 홍보에 대한 문외한이었고 일체의 바깥출입을 ‘정치적 쇼’로 치부하는 근본주의적 경향도 한몫 했다. 그리고 참모진이 이를 총체적으로 완성시켜주었다.

대통령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선진자유민주국가라면 누구나 누리는 권리다. 그 방향으로 대한민국도 가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노 대통령의 헌법소원은 판사출신인 노 대통령이 상황과 조건을 무시하고 원리주의적 접근을 취한다는 ‘느낌(느낌은 소통의 전제다)’을 주고 있다. 그리고 좀더 구조적으로 보자면 노무현 정부의 총체적 정책홍보실패가 빚어낸 필연적 귀결이란 점이 두드러진다.

이번 헌법소원에서 대통령이 이기길 바란다. 그것도 개인자격이 아니라 대통령 자격으로 승소하길 바란다. 이는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 선진국민으로 나아가기 위한 의식전환의 징검다리이자 도약을 향한 하나의 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누가 이기든 관계없이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한 정부가 국민보기에 치기어린 행태로 비춰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관위 유권해석을 원리적으로 접근하면서 ‘나도 정치적 자유 좀 누리자’라는 국민기본권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그간의 정책홍보실패를 가리려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시도다. 정책홍보에서 실패한 인사들에 대한 문책은 없고 그저 온정주의적 동지애로 똘똘 뭉쳐 ‘쳐부수자 공산당’식의 적대적 공존방식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은 차라리 구차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는 격’은 작금의 헌법소원보다는 정직하게 정책홍보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처분과 평가를 기다리는 겸손한 자세여야 한다. 무슨 영화를 더 보겠다고 정책홍보에 실패한 자들이 퇴임 후에 나대고 대통령이 이들을 감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 같으면 당분간 집에 처박혀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있을 창피할 노릇이건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뷰스앤뉴스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뷰스앤뉴스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노무현 #홍보 #정책홍보 #팜평포럼 #헌법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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