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풍경처럼 옛 친구도 잊혀질까?

[사진] 옛 모습을 잃어가는 소래포구에서

등록 2007.06.28 16:32수정 2007.06.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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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소래포구 풍경 ⓒ 이승철

추억 속의 소래포구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사라진 것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비틀 달리던 협궤열차만이 아니었다. 차량들이 씽씽 달리는 고가도로와 포구 건너편의 빌딩들, 포구주변에 바라보이는 풍경들이 하나같이 낯설었다.

오늘따라 /바람도 자고 /작은 배들 쉬는 소래포구 /간밤에 몸살을 앓듯/ 뒤척이던 서해바다 /새벽부둣가 해장국집은 /장터같이 바다 얘기하고 /차가운 술 한 잔에 이내 몸은/ 물길 풀리듯 아침이 온다 - 김현성 시, 가요 '소래포구' 앞부분

그래도 다행이랄까. 부~웅! 뱃고동 울리며 그 철교 밑을 드나들던 작은 배들과 끼룩끼룩 날개 퍼덕이며 날던 갈매기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병풍이라도 쳐놓은 듯 산맥처럼 서 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옛 기억을 혼란 속으로 빠뜨린다.

엊그제 찾은 소래포구는 아직 정적에 싸여 있었다. 평일의 오전 시간이어서 그랬을까. 선착장에도 단 몇 척의 작은 어선이 역시 다소곳이 묶여 있을 뿐 옛날의 그 활기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갈매기들까지 조용히 날다가 살짝 물가에 내려 앉아 고개만 갸웃거린다.

"이 부근이었던 것 같긴 한데, 어디쯤이었는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가는구먼."
일행은 소래포구에 왔으니 옛 친구를 한 번 찾아보겠다고 나섰다. 벌써 20여 년 전에 만났던 친구라고 했다. 지금은 상호도 잊어버렸지만 작은 술집을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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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 선착장을 차지한 갈매기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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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파는 시장도 한가하고 조용하다 ⓒ 이승철

포구일대를 한 번 둘러보자고 했다. 외부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혹시 그를 직접 만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 음식점들이 즐비한 상가와 어물전들이 늘어서 있는 시장 일대를 모두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혹시 OOO씨라고 아세요, 나이는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쯤인데요."
그렇게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역시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은 모르고요, 들어오셔서 생선회에 해장이나 한잔 하시죠?"
어느 작은 식당에서는 해장술이나 한잔 들고 가라고 권한다.

옛 친구 찾는 일은 이쯤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이어서 그런지 갯냄새가 더욱 진하게 풍기는 포구를 걸어 옛 협궤선이 깔린 철길로 올라섰다. 철길이 있었던 언덕과 철교 위에도 판자가 덮여 철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대신 그 좁은 언덕 공간에도 빈틈없이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들어앉았다.

"이제 이곳에 오면 떠올리던 옛 친구도 기억에서 멀어지겠구먼."
"그래, 사람의 삶이라는 게 만나고 헤어지고, 또 그렇게 잊혀져가면서 사는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일행은 아쉬운 듯 뒤돌아서서 포구 쪽을 찬찬히 살펴본다.

철교 좌우에는 안전 울타리가 세워져 있어서 여유롭게 주변을 살피며 걸을 수 있었다. 철교 위에서 바라본 소래포구는 그나마 갯벌과 선착장 부근 일대에 옛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서 오래된 책갈피에서 발견한 옛날 사진처럼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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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형제처럼 다정하게 정박해 있는 어선 세척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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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곶포구에 방치되어 있는 녹슨 닻과 어구들 ⓒ 이승철

이 소래라는 특이한 이름에는 유쾌하지 않은 유래가 전한다. 소래(蘇來)의 역사는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 말기 신라와 동맹을 맺은 당나라가 백제를 침공하기 위해 소정방이 이끄는 일대의 당나라군대가 이 소래포구로 상륙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정방이 왔다는 뜻의 소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지명의 유래가 썩 유쾌한 이름이 아니듯 이 소래가 작은 포구로 문을 열게 된 것도 일제가 기승을 부리던 1930년대 후반이었다. 일제는 당시 소래와 서해안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던 천일염을 실어 나르기 위해 협궤철로를 건설했다. 그때 소래역도 생겼고 작은 포구도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악랄한 일제가 수탈의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열린 곳이 소래포구인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한두 척의 작은 고깃배가 드나들던 이 포구는 정겨운 풍경과 넉넉한 인심으로 수도권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로 자리를 잡아가며 찾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래서 지금도 낭만을 찾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일행들처럼 나이든 많은 사람들이 옛 정취를 더듬어 이곳을 찾는 것이다.

철교를 건너자 오른편으로 바닷가 길이 시원하게 열려 있다. 월곶포구로 가는 길이다. 바닷가에는 오전부터 일찍 나온 낚시꾼들 몇이 바다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문득 지난해 어느 날 이곳에서 만났던 색소폰을 연주하던 낚시꾼이 생각나 물어보니 역시 아는 사람이 없다.

하릴없이 바닷가를 돌아 월곶포구에 이르니 조용하기는 이 포구도 마찬가지다. 포구 한 쪽에 나란히 정박해 있는 3척의 작은 어선은 그 크기가 조금씩 다른 것이 형제처럼 정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포구 선착장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어구들과 함께 시뻘겋게 녹슨 닻이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을씨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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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음식점 앞에 세워져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목각 문지기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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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넉넉한 또 다른 식당 앞의 목각문지기 ⓒ 이승철

쭉 뻗은 바닷가 길에는 오고가는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고 차량통행도 뜸하다. 역시 지난해에 왔을 때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은 선수들이 멋진 골 세리모니를 보여주듯 멋진 동작으로 손님을 끌던 음식점 아주머니도 보이지 않는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이슬 맞은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지금은 어디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선착장 풍경이 너무나 썰렁해서였을까. 일행 한 명이 옛날 가요 한 자락을 작은 소리로 흥얼거린다.

장마소식이 전해오는 6월의 텅 빈 포구거리에 땡볕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길가의 음식점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그 꼭 닫힌 음식점 문 앞에는 사람대신 굵은 통나무를 깎아 만든 커다란 목각인형 둘이 문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목각인형은 하나는 배를 드러낸 남자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아이를 업고 소쿠리를 머리에 인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 옆의 또 다른 음식점 앞에도 역시 목각인형이 세워져 있었는데 커다란 얼굴에 툭 튀어나온 눈, 넓고 큰 코에 함지박처럼 큰 입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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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로 들어가는 어선 한척 ⓒ 이승철

"거 참 아주 잘 생긴 인물인데. 식당 앞마다 목각인형 문지기라, 좀 특이한 발상이군."
일행은 월곶포구의 풍경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승용차를 소래포구에 세워놓았으니 다시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양편에 솟아오른 고층파트들 때문에 강폭처럼 좁아 보이는 소래포구로 가는 뱃길에는 작은 어선 한 척이 통통거리며 포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소래포구 #선착장 #월곶포구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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