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방울보다 작은, 내 이름은 긴잎갈퀴꽃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31] 긴잎갈퀴

등록 2007.07.01 16:44수정 2007.07.0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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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6월의 마지막 날, 장맛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사이로도 여름의 태양은 뜨거웠습니다. 장마철이니 습기는 높고, 오랜 가뭄 끝에 내린 장맛비라 숲은 오랜 갈증끝에 만난 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올해는 가뭄이 심했어. 이번 장맛비로 어느 정도 해갈되기는 했지만 아직 턱도 없이 부족해. 올 봄? 가뭄에 꽃이 별로 피지 않아서 벌통을 다 거둬버렸어. 이 넘의 날씨가 왜 이렇게 변덕을 부리는지 모르겠어."

강원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일거리로 양봉을 하는 시골 촌로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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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6월의 숲은 청년기입니다. 청년의 때는 젊음이라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은 그리 짧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청년의 때를 '새벽 이슬 같다'고 했습니다. 새벽이슬, 참 아름답지만 아침 햇살에 이내 말라버리고, 작은 바람에도 말라버리는 이슬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이슬은 얼마나 맑은지 모릅니다. 그 작은 이슬들이 하나 둘 모여 큰 바다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6월의 마지막 날, 작은 이슬방울보다도 더 작은 꽃을 만났습니다. 긴잎갈퀴의 꽃입니다. 어느 정도 작다고 하기에 그럴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본문에 나오는 글자 크기의 반 정도라고 하면 얼마나 작은 꽃인지 상상이 갈까요?

아주 오랜만에 작은 꽃담기에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살면서 꽃을 담을 기회도 많이 없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이전에 담지 못했던 꽃을 만났기에 땀을 뻘뻘 흘리며 정성껏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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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작은 것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고, 공감도 많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큰 것만을 추구하다보니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그 흐름을 따라 살기에 급급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시대의 비극이겠지요.

그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오로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 길밖에 보이지 않을 때 힘겨운 삶의 무게를 지고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남들보다 더 많이(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가져야만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남들과 비교우위에 서야만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삶,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 때에 좌절하는 삶, 그것이 우리 사람들의 삶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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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러나 들꽃들은 그렇지 않아요. 들꽃뿐 아니라 자연이 그렇지요. 그들은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을 온전히 피워내는 데만 열중합니다. 때론 온전히 자기를 피우지 못할 때도 있지만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나는 왜 이렇게 작은 거야?'하며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들꽃이 좋고, 자연이 좋습니다.

원예종은 더 화사하고, 더 향기로워야 빛을 발하지만 야생화는 작아도, 향기가 없어도 바라보는 이가 어떤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빛을 발합니다. 그래서 나는 원예종보다는 야생화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이미 마음의 문을 다 열어놓았고, 내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어떤 눈,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들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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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환경에 대한 관심들은 점점 많아진다고 하고, 환경의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지구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 하여 21세기의 화두는 '환경문제'일 거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서점을 나가보아도 처세술과 관련된 책들이 장악을 하고 있고, 여전히 성공의 기준은 얼마나 큰 집에 살고, 얼마나 큰 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이 소비하는지에 있으니 환경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알고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자 결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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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작은 것들은 우리 일상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아주 소중한 것이라서 작게 느껴진 것일 뿐입니다.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나면 많은 이들이 새해가 시작될 때 어떤 꿈을 가지고, 계획을 가지고 시작했는지 돌아봅니다. 그런데 사실 그 어느 날이든 우리 삶에서 처음 살아보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일상화된 하루하루가 아니라 내 삶에서 '단 하루밖에 없는 의미있는 날'로 하루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 하루로 인해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물론 그 풍성함이라 단지 커지고 많이 갖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비우면서 충만해지는 비결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요.

오랜만에 아주 작은 꽃과 씨름을 하면서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오랜만에 풀섶에 누워 하늘도 바라보았습니다. 그 작은 꽃이 당당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내 삶, 충분히 의미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이 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홈페이지 <달팽이 목사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홈페이지 <달팽이 목사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긴잎갈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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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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