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서평] 이진경 편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등록 2007.07.09 09:37수정 2007.07.0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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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문학의 위기"란 말을 자주 듣는다. 그렇다고 누가 누굴 탓하겠는가? 먹고 살기 바빠서 단편소설 하나 제대로 읽을 시간 없는 현대인들에게 두꺼운 인문학 서적을 억지로 강요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요즘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커뮤니티(공동체)를 통한 접근 방법이다. 인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함께 독서, 토론, 연구를 하고 세미나, 토론회, 강연회 등을 개최해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그 덕분에 일반인들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방대한 인문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강좌들을 얼마든지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도 이 같은 경로를 거쳐 지금에 이른 연구공동체다. 처음엔 소규모 모임으로 출발했지만 인문학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 성과를 내며 점차 인정을 받아 지금은 철학, 문학, 사회학, 어학 등 다양한 강좌들을 개설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지식의 즐거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지적 능력의 증식, 담론의 생산적 변이"를 행동 강령으로 표방한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저술 활동도 활발하게 병행하고 있는데, 최근 그린비에서 발표한 이진경 편저 <모더니티의 지층들> <문화정치학의 영토들>은 일반인들에게 인문학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장(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활용 가치가 높은 책이다.

두 권의 책은 각각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연속성을 띠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문화정치학의 영토들>을 <모더니티의 지층들>의 후속작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전작(前作) 격인 <모더니티의 지층들>의 제1장이 '근대(모더니티)란 무엇인가'로 시작되었다면 그 후속편 격인 <문화정치학의 영토들>의 제1장은 '탈근대(포스트모더니즘)란 무엇인가'로 시작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과연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지만 정작 구체적인 의미는 간과하기 쉬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간단히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이란 말에다 '뒤'나 '후'(後)를 뜻하는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를 붙여 만든 말이다. 이 말은 1960~70년대 미국에서 문학과 건축 등의 예술 관련 분야에서 만들어진 말인데, 말 그대로 모더니즘 이후에, 모더니즘과 상반되는 특징을 갖는 작품이나 작가, 혹은 취향이나 태도 등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 본문 중에서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 자체는 그리 어려울 게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는 철학, 예술, 문학, 건축, 문화, 사회 등, 각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와 양상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건축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1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신고전주의(부르주아의 높아진 지위와 과시욕을 표현하기 위해 장식적인 건축을 추구)의 반동(反動)으로 탄생한 모더니즘(금욕적, 합리적, 기능적인 건축을 추구) 양식이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단조롭다는 비판의식에서 출발해 과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상이한 건축 양식의 공존을 모색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문학에서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충돌은 불가피했는데 레빈은 이를 모더니즘의 난해한 지성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지성주의의 대립으로 보았고, 핫산이나 피들러는 지식보다는 비전, 논리보다는 환각, 에고보다는 이드를 중시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방가르드적 유미주의가 미(美)적인 것과 비(非)미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그와 같은 구분을 거부하며 이발소 그림, 탐정소설, 공상과학소설 같은 저속한 것(키치, kitsch)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작품을 섞어 쓰는 혼성모방(패스티쉬, pastiche)을 이용하기도 한다. 제임스 조이스, 프루스트, 엘리어트, 파운드, 카프카 등이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라면 보르헤스, 마르케스, 움베르토 에코, 알랭 로브그리예 등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좀더 복잡하고 난해하다.

"철학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 프랑스에서 본격화된 철학적 흐름과 관련되어 있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등으로 흔히 분류되는 이 흐름은 근대 철학이 서 있는 지반을 공격한다. ... 데카르트 이래 근대 철학이 발 딛고 있던 '주체'라는 범주, '진리'라는 범주 등을 비판 내지 해체하며, 세계나 지식이 하나의 단일한 전체일 수 있다는 '총체성' 개념을 비판한다. ...이후 여러 분야에서 출현한, 어느 정도 유사한 것처럼 보이는 경향들을 하나로 모아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로 부르기 시작했다." - 본문 중에서

1980년대 이래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었던 레비-스트로스, 자크 라캉, 알튀세르, 미셸 푸코, 들뢰즈, 가타리, 데리다, 리오타르, 보드리야르 등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이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개념이다. '탈근대'란 사전적 정의만 놓고 보면 그리 어려울 게 없지만 실제로 각 분야에서 전개되는 양상을 살펴보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진경 편저 <모더니티의 지층들>과 <문화정치학의 영토들>은 근대(모더니즘)와 탈근대(포스트모더니즘)를 이해하는 입문서로 적격이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무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한 번에 다 읽기엔 다소 벅찬 분량이지만 17개의 강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주제부터 골라 읽는다면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예컨대 미디어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3강 미디어와 스펙터클'(권용선)을, 시간이란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립해보고 싶다면 '6강 근대적 시간: 시계, 화폐, 속도'(최진석)를, 성형수술을 권하는 사회, 그 이면에 도사린 사회학적 코드가 궁금하다면 '10강 얼굴의 정치학'(조원광)을 먼저 읽으면 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학교가 진정 겨냥하는 것은 국어, 영어, 수학 같은 1차적 교육이 아니라 선생님에게 복종하고, 공간화 된 시간에 따라 생활하고, 잘못하면 얻어맞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전제군주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등의 2차적 교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시간은 돈"이라는 유명한 격언은 시간을 교환 가능한 화폐로 전환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만 성립하는 진리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처럼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많은 기호와 코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에서 만끽할 수 있는 재미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진경 편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그린비, 2007, 592쪽.
가격 23,000원.

덧붙이는 글 이진경 편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그린비, 2007, 592쪽.
가격 23,000원.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 현대문화론 강의

이진경 엮음,
그린비, 2007


#포스트모더니즘 #이진경 #문화정치학의영토들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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