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댓글 씨
썩어가는 세상과
썩어가는 세상을 옹호하는
쓰레기 같은 글들을 통박하려고
사이버 세상에
사뿐사뿐 납신다
그를 찾는 사람
아무도 없지만
넘치는 사명감 하나로
자신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만 세상이 멈춰버리기라도 할 듯
조바심하면서
지켜보는 이
아무도 없지만
마치 누가 쳐다보기라도 하는 듯
우아한 걸음걸이로
거실을 가로질러
서재 귀퉁이에 놓인
컴퓨터 책상 앞
의자로 가서 털썩 주저앉은 다음
포르테시모로
자판을 두드린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자판을 두들겨야
이 버르장머리라곤 도무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똑바로 기능 할 것이냐
우리들의 존경해마지 않는 댓글 씨
자판이 부조리 그 자체라도 되는 듯 흘겨보면서
이윽고 작성하던 댓글에
쿵,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음미하듯 댓글을 들여다 본다
이게 정말 내가 쓴 글 맞나
의심이 들 만큼 천하 명문이다
그런데 내가 선사하는
이 진주 목걸이의 가치를
사이버 돼지들이 제대로 알아채기나 할까
댓글 씨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삐뚫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데
그만한 자기희생쯤이야
각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내 자신을 다독인다
사이버 세상은 구름 없이 광활하고
댓글 달 글은 지천이다
또 다른 글에 댓글을 달고자
댓글 씨 부드럽게 마우스를 움직여
또 다른 사이트로
순간 이동을 감행한다
그가 떠남과 동시에
그의 등 뒤에 남겨진
사이트의 글자들이 일제히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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