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결혼비용? 500만원 들었지"

삼종 장애경기를 무사히 넘긴 언니의 성공사례

등록 2007.07.12 10:15수정 2007.07.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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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고만고만한 선배 언니의 큰 딸아이가 한 달 전에 결혼을 했다. 주업이 재야 활동가였던 남편 덕에 언니는 이 날 이때껏 생계를 온통 책임지고 살다시피 했으니 그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두 딸 어엿하게 키워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큰 딸은 좋은 직장에 취직까지 했으니 고생 끝에 낙이고 가문의 영광이었다. 마침 뭔 일이 겹쳐 결혼식엔 참석을 못하고 축의금만 전달했으니 궁금한 것도 많았다.

모처럼 모임에서 만난 언니에게 축하 인사부터 건네고 결혼 비용의 구체적 액수부터 묻기 시작했다. 1년 전이었을까? "우리 딸이 드디어 취직을 했다"고 좋아했다던 언니 소식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아이가 월급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기간 동안 아무리 열심히 저축해도 제 혼수비용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언니나 나나 사는 형편은 거기서 거기니 먹고 살기에 급급한 언니가 딸아이 결혼비용을 저축할 리도 만무했다. 그나마 제 집 마련이 하늘의 별 따기인 서울에서 셋집 면하고 연립주택이라도 마련한 것이 장하다면 장한 정도였으니까. 딸 결혼시키느라고 빚은 또 얼마나 졌을까 걱정부터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들, 딸 혼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우리들. 남의 일 같지 않아 모두들 언니의 대답에 귀를 모으고 있는데 언니가 활짝 웃으며 자랑을 시작했다.

"결혼준비는 다 저희 둘이 알아서 하고, 내 돈은 딱 500만원 들었어. 그 녀석 결혼식 끝나고 나니까 왜 그렇게 내가 장해 보이니? 와~ 막막한 그 세월 견디며 암도 안 걸렸지, 미치지도 않았지 더구나 이혼도 안했지... 그런데 자식들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시집까지 보내다니. 내 스스로 내가 너무 대견스러워 표창장이라도 주고 싶었어. 하하하~~"

암도 안 걸리고 미치지도 않고 더구나 이혼도 못했다는 언니의 성공사례에 모두들 박수와 웃음으로 축하를 했다. 사실 그 모임 구성원 중에는 3가지 중에 한 가지씩은 다 해 본 가락이 있으니 삼종 장애경기를 무사히 넘긴 언니의 성공사례가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니도 처음엔 딸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머리부터 아팠단다. 늦게까지 시집 장가 안가고 속 썩이는 다른 집 자식들을 생각하면 일찌감치 제 짝 알아서 찾아 온 딸이야말로 가장 큰 효도를 한 것인데, 현실적으로 꼭 필요한 결혼비용을 마련할 일이 까마득했던 것이다.

그런 엄마 마음을 헤아렸던지 이번에도 딸아이가 해법을 제시하더란다. 둘이 합의하기를 혼수와 예단 일체를 생략하고 결혼식만 소박하게 치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예물도 커플링으로 가름하고, 식장도 돈 적게 드는 학교 시설을 예약한 것이다. 돈 없는 부모 생각해 저희들이 알아서 최대로 간소하게 결혼식을 준비했던 딸 덕분에 어려움 없이 대사를 치른 언니. 참 남의 집 자식이지만 현명하고 똑 떨어진 처사에 부러움이 앞섰다.

더구나 신랑 신부가 그렇게 합의해도 부모가 토를 달면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신랑 측 어머니까지 흔쾌히 동의하셔서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진행했으니 신혼부부는 물론 양가 어른들 모두 상처 받을 일 없었다. 은행 대출을 받아 저희들 살림집까지 마련한 딸과 사윗감은 오히려 저희들 돈으로 양가 부모님 한복까지 선물을 하더란다.

장성한 자식들 혼수문제, 형편껏 하면 되지 않느냐는 모범 답안이 있지만 세상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식들 혼수문제로 골머리를 싸매는 것은 똑같다. 치사하고 자존심 상하기 딱 알맞은 거래지만 상대방 특히 내 자식의 부모가 될 사람이니 웬만큼 맞춰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하긴 우리 때도 혼수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시댁 쪽에서 무례하게 예단을 요구한 것에 반발을 했던 후배는 결국 그 갈등을 시작으로 부부간에 골이 깊어져 끝내는 파경을 맞고 말았다. 시대는 초고속으로 변해 가는데 그 놈의 혼수관행은 왜 그렇게 제 자리인지. 지금 아이들은 옛날과 달라 쿨~하다고 하던데, 배우자의 조건을 따지는 영악함은 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부모의 재력과 배우자의 능력을 칼같이 따져 행여 밑지는 장사는 안하려고 요리조리 주판알 튕기는 얄미운 행태는 요즘 젊은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외모 못지않게 따지는 것이 아내감의 경제력. 예전에는 남자들이 밥벌이는 제 책임이라는 의식을 가졌던 것에 비교하면 조건이 더 열악해진 것이다.

얼마 전에는 꽤 괜찮은 신랑감이 있다고 해서 친구 딸을 소개했더니 신랑측 엄마가 보기도 전에 거절하더란다. 뭐 표면적으론 신부감이 나이도 먹었는데 지금까지 똑 부러진 직장도 못 잡았으니 자기 아들한텐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는 말씀이었다. 그 속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신부 부모가 사회적 위치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재산가도 아니니 뭐 내세울 게 있느냐는 말씀이겠다.

신랑감을 소개했던 후배가 내게도 넌지시 충고 했다.

"언니, 언니네야말로 내세울 거라곤 하나도 없으니 언니 딸은 무조건 연애를 하라고 그래. 나이도 적고 괜찮은 직장도 있고 얼굴도 예뻐야 뽑히지 그렇지 않으면 괜찮은 신랑감은 꿈도 못 꾸는 세상이야."

하기야 요즘 떠도는 우스갯소리로 얼굴 못 생긴 것은 용서해도 직장 없는 것은 도저히 용서 못 한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콧대 높은 어떤 지인의 시동생도 맞선을 보고 와서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는지 하나도 고치지 않고 태연스레 맞선 보러 나온 강심장도 있더라고 투덜거리더란다. 아이구, 머리야~ 이 놈의 세상이 왜 이리 천박한지.

내 딸도 언니 딸처럼 슬기롭고 야무지게 제 인생 꾸려갔으면 하는 바람, 그런 행운이 내게도 오면 얼마나 좋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결혼 #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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