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만 가려고' 귀향한 젊은 도예가 부부

어린 세딸과 나고 자란 밤나무골로...

등록 2007.07.12 16:13수정 2007.07.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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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 양성면 목미리 하율마을 밤나무골. 초등학생 딸 셋을 둔 젊은 도예가 부부가 고향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서울의 좋은 대학에서 도예를 공부하다가 만난 부부는 둘 다 도자기를 만든 지 십수 년씩 되는 프로들입니다. 그런데 굳이 밤나무밖에 없는 골짜기에 내려와 사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지난 6월 9일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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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선 부부 ⓒ 정기석

"잡지의 소재거리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을공동체보다는 나를 만들어가기도 벅찬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고 보니 마을에 접목될 만한 거리도 없고요. 워낙 흙 파먹고 사는 직업이오니 그리 큰 기대는 하지 마시옵소서. 언제고 오시면 차 한잔 드리겠습니다."

밤골도예 또는 일중요라 불리는 터의 바깥주인인 이준우씨의 첫인상은 막사발을 빚는 조선시대 도공의 재림을 보는 듯합니다. 밤골도예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흙으로 지은 전통가마의 주인이 '바로 저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여기저기 꽤 알려졌나 봐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관광공사 여행정보 사이트에서 보고 찾아오는 분들까지 있고요. 언젠가는 충주시에서 수십억원을 들여 이 마을에 도예를 테마로 한 체험장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예산이 없는지 지금은 어찌된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준우씨는 이곳이 고향마을입니다. 서울의 대학에서 도예를 공부하고 그곳에서 부인 서원주씨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외국까지 나가 공부하고 온 도예 엘리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사동도, 청담동도 아닌 고향 밤나무골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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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이자 살림집 ⓒ 정기석

"고향마을을 위해 뭔가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아요. 더군다나 집안의 손윗분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한참 아래인 처지에 나서기도 그렇고요. 그래서 귀농해 농사를 짓는 몇 농가와 의기투합해 '앙성농군'이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어요. 도시민들을 마을로 초대해 농사나 도예 체험 행사도 하고 농산물도 직거래하고 했지요. 하지만 그 중 몇 가구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도 했고요. 많이 가지지 않고 귀농해서는 살기 어렵잖아요?"

농사를 생업으로 삼지는 않지만, 농촌에서 나고 살고 있는 이준우씨는 농촌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마을이 하나가 되어서 해야 한다는 마을 만들기나, 서로 다른 여럿이 모여 서로 같은 하나처럼 살아야 하는 공동체 마을이니 하는 이른바 마을사업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참, 요 옆 마을에도 신문에 귀농일기도 연재하고 책도 펴낸 알만 한 귀농인 부부가 집과 땅을 내놓았다고 해요. 그만큼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지요."

그렇지않아도 언젠가 TV에 나와 화제가 된 전라도 무주 산골의 젊은 귀농 부부가 얼마 전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던 참이라 더욱 씁쓸했습니다.

집터는 3천 평의 대지 위에 널찍한 작업장과 살림집이 한데 붙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앞마당에까지 그동안 이준우씨 부부가 땀으로 빚어낸 역작들이 즐비합니다. 저마다 자유롭게, 그러나 조화롭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무지갯빛인 듯 다양한 빛깔과 모양의 도자기들이 빼곡합니다.

"가마는 두 개가 있습니다. 석유가마와 장작가마입니다. 석유가마는 일률적인 색깔을 내야할 때 주로 씁니다. 장작가마는 연기와 온도의 변화를 가해 다양한 색의 작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같이 씁니다."

이준우씨는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뒤 유럽으로 건너가 공부할 때 집중한 화두가 '전통'이었다고 합니다. 유럽은 아주 사소한 물건도 전통 그대로 전해져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 도자기는 전통적인 것이라고는 목물레 정도만 겨우 남아있는 현실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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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장작가마 ⓒ 정기석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 전국을 돌며 전통 도자기의 흔적을 찾아다녔어요. 예전엔 소나무가 많은 골짜기라면 어김없이 장작가마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흔적만이 겨우 남아있을 뿐이고요. 전통적인 가마의 각도와 만드는 법조차 전해지지 않습니다. 고향마을에 귀향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드디어 고향마을로 내려온 그 이유를 들려주는 이준우씨 부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습니다.

"일단 전통적인 장작가마를 짓고 작업하기에 도시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향마을로 내려와 이렇게 전통가마를 직접 짓고 작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ㄱ' 자로 꺾인 작업장 건물은 도예가 이준우씨 부부의 작업장이자 도예를 배우려는 이들의 체험공간입니다. 체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가마를 열기 한 달 전쯤부터 인터넷을 통해 알리고 불러모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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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함께 일 하는 부부 ⓒ 정기석

"누구든 30분 이상 흙을 만지면 모양이 나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어떤 모양의 도자기를 만드느냐보다 흙의 질감이나 존재감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한 공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체험작품들은 가마에서 구워 부쳐줍니다. 작업장은 황토로 마감한 외벽, 큰 통나무를 쓱쓱 잘라 세운 기둥이나 서까래까지 전통과 자연스레 어울립니다. 집주인의 깊은 뜻이 그대로 읽히는 구조입니다. 지붕도 나무를 얇게 켜 마치 너와집처럼 켜켜이 얹어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집을 지은 이유를 물어보니 명쾌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편하게 작업하고 싶어서요. 잘 지은 공간에 매이면 작업하기 불편하니까 그냥 대충 지었어요. 일중이라고 지은 호도 '날마다 중간만 살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 중간쯤 하고 사는 게 오히려 더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어느 곳 하나 대충 넘어간 공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무로 지어 습도조절도 잘되고 작품을 건조시키거나 보관하는데도 좋고 내부공간은 황토로 마감해 작업공간이 쾌적하다고 합니다."

"날마다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한답니다. 작업도 많이 하는데다가 도예를 배우러 오는 수강생들 전시회 준비도 해야 하고, 가마에 불도 때야하고 말썽부리는 기계도 고쳐야 하고…."

안주인 서원주씨는 오월이 되니 더 정신이 없습니다.

"어제는요, 초등학생 두 녀석의 운동회날이었어요. 둘째 딸이 44명인가 되는 작은 초등학교의 전교회장입니다. 그러니 안 가 볼 수가 없지요. 이번 운동회에서 풍물패의 상쇠까지 맡았다니까요. 나도 모르게 은근히 목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가 으쓱거려지는 거 있죠. 애들 운동회였지만 열심히 같이 뛰었지요. 카메라도 집에 빠뜨리고 가서 사진 한 장 못 찍는 정신없는 엄마였지만 덩달아 신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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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겹고 조화로운 앞 마당 ⓒ 정기석

정신없는 안주인은 큰 일거리가 더 생겼습니다. 항아리 소금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항아리 소금은 1000도에 가까운 장작 가마의 고온에서 구워요. 그래서 이렇게 눈처럼 하얗지요. 저온에서 구우면 회색빛이거나 심지어 다이옥신까지 검출될 수 있다고 해요. 소금은 850도에서부터 녹기 시작해 1350도에서는 기화됩니다. 1000도 고온에서 일중요에서 흙으로 빚은 항아리에 넣어 전통 장작가마에 구우니 소금에 들어있는 수분과 불순물이 깨끗이 제거돼 쓴맛은 없고 짠맛은 덜한 깔끔한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부부는 좋은 천일염 소금을 찾기 위해 전라도 신안 앞바다의 염전마다 샅샅이 뒤지며 다녔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아이들이 다 크면 더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일하며 살고 싶어요."

'중간만 가려는' 일중 이준우씨의 장래 계획은, 보다 제대로 살고, 보다 제대로 창조하려는 장인으로서의 욕심, 진정 그것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오래된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 원주민 정기석이 쓴 이 기사는 월간마을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오래된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 원주민 정기석이 쓴 이 기사는 월간마을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귀농 #하율마을 밤나무골 #충북 충주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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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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