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악해도 선한 뜻을 품고 살아야 하나?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읽고서

등록 2007.07.14 17:52수정 2007.07.1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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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 리브로

세상은 선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세상 욕망에 사람들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탓이요, 악한 구조가 뒤흔들고 있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온갖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경우에라도 과연 선한 의지를 품고 계속 살아가야 할까?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비록 세상 바깥으로 버려진 인생이지만 세상의 불합리한 악의 구조 속에서도 결코 선한 뜻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아이의 삶을 들여다 본다.

북조선 청진에서 태어난 '바리'는 일곱째 딸 중 막내였다. 위로 여섯 언니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이름까지 지니고 있다. 하지만 막내인 바리만큼은 이름이 없다. 어머니가 줄줄이 낳아도 사내 녀석이 하나도 나오지 않자, 아버지가 실망한 끝에 내팽개치다시피 한 까닭이다.

“던져라 던지데기 버려라 바리데기. 그러니까 너 이름이 바리가 된 거다.”(11쪽)

기구한 운명 속에서 힘겹게 살아난 그녀지만 커가면서부터는 가족들과 또 뿔뿔이 헤어져야만 했다. 북조선에 불어 닥친 체제의 감시와 굶주림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와중에 큰 언니는 원산으로 시집을 갔고, 둘째 언니는 군대에 입대했고, 다섯째 언니는 벙어리가 되었고, 여섯째 언니는 겨울 어느 해에 죽었다.

할머니마저 저 세상으로 떠난 뒤에 그녀는 유령들만 남아 있는 북조선 땅을 배회하다, 결국 머나먼 이국 땅 영국으로 팔려 나간다. 그 죽음의 소굴에서 우여곡절 끝에 마사지 기술을 익혀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간다. 이때 그녀의 나이 16살이었으니 그야말로 처참한 삶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좋은 남자 친구 알리를 만나 혼인까지 하고, 그들 사이에 자식도 생긴다. 하지만 남편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을 찾아 아프카니스탄으로 떠나고, 그들 사이의 자식도 죽고 만다.

“아무런 악한 짓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신은 왜 저에게만 고통을 주는 거예요?”(263쪽)

사실이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온통 악의 굴레를 헤엄치다시피 하며 살았다. 북조선의 삶이 그랬고, 영국의 불법이민자 생활이 그랬다. 사망의 늪지대를 허우적거리면서 죽은 혼령들과 대화해 보지만 좀체 나아지지도 않는다. 현실의 수렁을 초현실로 대체해보려 하지만 고통이 줄어들거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녀가 영국에 머무르면서 듣게 된 이국 땅 소식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북조선과는 상관없는 미국과 아프카니스탄 간에 꼬인 일이 그러했다. 그녀와 상관이 없는 듯한 9·11 테러 사건을 둘러싼 아프카니스탄의 침공과 무슬림들의 참전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남편의 동생이 그 모든 일에 깊숙히 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바리는 선한 의지를 품어야 할까? 참담한 지옥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과연 희망을 품고 사는 게 온당한 일일까? 오늘 나에게 그런 현실이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할까?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286쪽)

그렇다. 작가 황석영은 나와 내 둘레에 일어나는 일이 힘들더라도 세상에 대한 선한 의지를 버려서는 안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거짓과 악의 구조가 휘어잡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 선한 뜻이 우뚝 설 날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상은 선한 의지를 품고 사는 희망의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달라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창비, 2007


#바리데기 #황석영 #북조선 #영국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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