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기를 떼어놓고 떠난 여행

삼천포와 함양 상림으로 떠난 '추억' 여행

등록 2007.07.18 14:52수정 2007.07.18 18:33
0
원고료로 응원
서둘러 병원 일을 마치고 딸에게 전화한다.

"이제 끝났으니까 준비해."

대구 사돈댁에 도착하자마자 딸과 손자만 떨어뜨려 주고 떠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드러났다. 과분한 대접을 받고 남대구 IC까지 바래다주시겠다는 사돈어른의 배웅까지 받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어림짐작을 해보아도 대구에서 진주를 거쳐 삼천포로 가려면 최소한 2시간은 잡아야 할 것 같다. 속도위반 카메라에 한번 기념촬영을 하고 삼천포 초입에 다다르니 11시를 조금 넘는다. 한 4년 사이에 너무 변해버린 시가지. 전에 갔었던 서부시장 근처를 지나 삼천포항 근처로 들어간다.

a

삼천포항. 태풍 '마니'가 비켜 지나 갔는지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잔뜩 구름만 끼었다. 삼천포는 몇년전 가족여행의 많은 이야기가 묻혀져 있는 곳이다. ⓒ 이덕은

삼천포는 몇 년 전 가족 모두 주문진을 들러 안동을 거쳐 이곳까지 내려왔던 곳이라 오늘(15일)처럼 딸과 아기를 대구 사돈댁에 떨어뜨려 놓고 부부만 들르니 좀 이상하다. 그때도 늦게 도착하여 숙소를 쉽게 정하지 못했었지. 부자간에는 부두 포장마차에 나가 밤바다 바람을 쐬며 조개구이와 소주로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았었는지….

숙소를 못 정할까 했던 염려는 불야성처럼 들어선 모텔들로 한방에 날려 보낸다. 이 시간에 문을 열겠느냐는 걱정을 비웃기나 하듯 24시간 영업하는 횟집들이 몇 군데 있다. 좀 더 일찍 도착하여 어시장 구경도 하고 좌판에서 바다구경을 하며 회 한 접시 즐기려는 느긋한 계획에는 차질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시간에 한잔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예상대로 회는 퍽퍽했지만, 그렇다고 밀려오는 밤바다 냄새를 접하는 즐거움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a

삼천포 서부시장은 이와 같이 부두를 뒤로 하고 좌판 아줌마들이 자리하고 있어 어시장 정취를 더한다. ⓒ 이덕은

창 밖에는 구름 사이로 아침 햇살이 항구를 비추고 있다. 흠뻑 비 맞을 각오를 했는데 태풍 '마니'는 비켜가는 모양으로 바람도 잠잠했다.

삼천포 서부시장. 장날인지 복날 때문인지 시장은 이른 시간에도 매우 번잡하다. 반짝이는 은빛 몸매를 과시하는 갈치, 커다란 덩치를 내보이는 도미, 갯장어, 각종 어패류들이 선도를 자랑하며 얼음이 깔린 좌판에 널려 있다. 서부시장 좌판은 부두와 접해져 조금만 부주의해도 바닷물에 떨어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아줌마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것이 어시장 정취를 더한다.

어시장을 돌아 나오니 각종 채소와 과일을 파는 아줌마들이 도로를 점하고 있다. 간식으로 먹기 좋을 만큼 작은 수박, 원숭이바나나 같은 옥수수, 좌판에서 뜬 회와 함께 먹기 좋게 회 양념과 채소, 매운탕 양념은 기본이고 복날이라고 닭 장수 아줌마가 커다란 통나무 도마를 갖다 놓고 닭을 다듬고 있다. 갓 담근 나박김치와 집에서 만들었다는 쌈장과 초고추장, 작은 수박과 '원숭이' 옥수수를 산다.

a

비토섬을 잇는 연륙교. 다리와 바다가 잘 정돈된 정원을 보는 것 같다. ⓒ 이덕은

삼천포대교 밑을 지나 죽방렴을 구경하며 사천반도 서해안 쪽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몬다. 굽이굽이 길을 꺾을 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잘 정돈된 어촌마을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전개된다. 차를 천천히 몰며 창문을 열어젖히고 바닷바람을 만끽한다.

새로 만들어진 사천대교는 거의 길이가 2km 이상 될 듯한 다리로 가운데가 'ㅅ'자 모양으로 불쑥 솟아 올라와 만(灣)을 가로지르고 있다. 대교를 건너 비토섬으로 들어선다. 섬이 토끼와 거북을 닮았다 하여 별주부전의 고향으로 불린다는 섬. 연륙교가 있는 바다는 호수가 있는 작은 정원 같다.

비토분교는 폐쇄되어 굳게 문이 닫혀 있고 운동장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곁에 서 있는 젊은이에게 물으니 자기도 처가에 놀러 와서 이곳 유래를 잘 모른단다. 이웃에 접한 집 마당에 열린 석류와 복숭아를 구경하고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나와 곤양IC로 간다.

a

필봉산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과 숲으로 우거진 상림. 원래 수해를 막기위한 숲이라 하나 그 수해로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었다가 그나마 하림은 없어졌다는 곳. 뜨거운 여름 볕에도 숲속은 시원하다. ⓒ 이덕은


함양.

전에 아들, 딸 네 식구와 우연히 들렀던 곳, 그날은 마침 장날이어서 각종 과일이 쌓여 있었지. 그러나 오늘은 정기휴일인지 가게 문은 거의 닫혀 있다. 피순대가 들어간 순대국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 '상림(上林)'으로 향한다. 진성여왕 때 홍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홍수로 가운데가 무너져 상·하림으로 나뉘고 하림은 훼손되어 이제는 상림만 남았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숲이다.

커다랗게 자란 나무숲 산책로는 하늘을 가려 숲길은 향기로운 나무 냄새와 흙냄새로 충만하고 하이얀 한 줌의 햇살이 나뭇잎을 뚫고 들어와 흙길에 무늬를 만든다. 나뭇잎으로 하늘이 가리니 습한 곳에서는 낙엽을 뚫고 이름 모를 버섯이 피어오르고, 가을에는 꽃무릇이 무성한지 나무 이름을 알리는 팻말이 숲속 여기저기 꽂혀 있다.

수량이 풍부한 냇물이 포말을 일으키며 모랫바닥에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른다. 짧은 시간에 '상림'이 얼마나 큰지 가늠을 할 수 없지만 곁에는 필봉산이란 산이 있어 산책로가 등산로와 이어져 있는 모양이다. 산책 나온 사람들에 끼여 숲을 돌아 나오니 연꽃이 가득 피어난 연못이 있다. 역시 사람들은 잔잔한 아름다움보다는 화려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붉은 홍련과 수련이 있는 못에는 삼각대를 펴고 연꽃을 촬영하는 사람들과 가족이나 단체로 놀러 와 '한방 박으려는' 사람들로 어수선하다.

a

상림 연못에 피어있는 백련. 마침 연꽃이 만개하여 원없이 홍련과 백련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그 좋은 시간도 가족과 함께 함으로 배가될 수 있다는 뻔한 사실을 절실히 느낀 여정이었다. ⓒ 이덕은

아무리 무심코 잡은 겸사 여행이지만, 왜 이렇게 일정을 잡았을까? 삼천포와 함양이 몇 년 전 아들, 딸 네 식구 가족여행의 추억이 너무 강렬하여 아무리 좋은 풍경도 아무리 좋은 음식도 가족보다 못하다는 것을 절절히 느낀 여정이다. 연꽃 위에서 또 하나의 여름을 맞으며 맴돌고 있는 무심한 잠자리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 http://yonseidc.com/2007/samchunpo_01.html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닥다리즈 포토갤러리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http://yonseidc.com/2007/samchunpo_01.html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닥다리즈 포토갤러리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삼천포 #함양 #상림 #삼천포대교 #창선대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 은둔자', 낙동강서 대거 출몰
  2. 2 국가 수도 옮기고 1300명 이주...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5. 5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