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게이(Gay) 아니거든!"

[자전거 세계일주 15] 캐나다 몬트리올

등록 2007.07.19 09:58수정 2007.07.1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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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의 가옥 구조.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외부에 설치되어 있다. 6월 6일. ⓒ 문종성

남미의 파리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다면 북미의 파리는 단연 몬트리올이 아닐까 싶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도 고집스레 프랑스 문화를 살려놓았던 그들의 정통성은 지금 '다문화주의'로 대변되는 캐나다 사회에서 프랑스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원동력이 된다.

1971년 각 인종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문화주의 정책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채택하면서 계승되어온 다문화주의를 통해 캐나다 정부는 인종, 언어,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들이 평등하다는 개방적인 사회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굳이 유럽풍이라는 가이드북의 말을 보지 않고서도 몬트리올 곳곳에서 대번에 유럽의 향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프랑스의 향기를 거부감 없이 맡을 수 있게 된다. 몬트리올의 300만 명의 인구 중에서 약 70%가 프랑스계라서 그런지 프랑스 문화가 녹아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볼 수도 있겠다.

또 '모자이크 문화'라는 별명이 있는데 이것은 뉴욕만큼이나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서로 가치관을 공유한 채 지내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면서도 인종 차별이나 소수인권 등에 있어서 불협화음이 적은 걸 보면 몬트리올이야말로 평등의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하는 도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몬트리올 도착 다음날 새벽 기도를 마친 후 단일이와 욥과 함께 성요셉 성당에 가기로 했다. 단일이는 고등학교 때 몬트리올로 유학을 와 현재 맥길대학에서 수학 중이었으며, 욥은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어학연수 차 외삼촌댁에 방문한 상태로 모두 한 교회에서 만난 청년들이다.

나는 가장 캐나다다운, 정말 몬트리올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그런 곳을 가고 싶었다. 게다가 성당이라면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천상의 성당들을 질리도록 보게 될 것이므로 굳이 유럽풍 양식을 진하게 풍겨대는 성당에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마뜩찮은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둘의 의견은 칼로 오이 자르듯 부드럽지만 단호하다.

"형, 그냥 성요셉 성당 가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니만큼 결코 실망하지 않을꺼에요. 몬트리올에 그만한 관광지도 드물구요."
"맞아요. 저도 지난번에 한 번 갔다 왔는데 정말 괜찮더라구요. 다른 곳은 뭐 크게 기대할 것이 없어요. 에이, 그냥 거기 가요."

차라리 몬트리올 엑스포스 경기나 보러 야구장이나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재정난과 팬들의 무관심 속에 야구팀은 워싱턴으로 연고지를 옮긴 지 3년째.

"야구팀이 없으니 야구도 못 보죠. 여기 사람들은 야구에 별 관심이 없어요. 아이스하키라면 또 모를까. 예전에 김선우 선수 경기 때 몇 번 가보긴 했는데 갈 때마다 엄청 얻어 맞더라구요."

더 이상 다른 곳에 욕심 내지 않고 성 요셉 성당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에서 오래 지낸 단일이가 강추하는 만큼 그 경험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몬트리올에서 맞닥뜨린 노먼 베쑨 동상

지하철 역에서 성요셉 성당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우연히 비둘기 떼에 둘러싸여 있는 한 동상을 발견했다. 몬트리올의 유명한 누군가의 동상일 거라 생각되어 확인차 가까이 다가갔는데… 세상에나 이게 웬일인가? 이름을 보는 순간 연극배우의 과장된 연기처럼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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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던 노먼 베쑨의 동상. 머리 위의 앉은 비둘기는 자신이 누구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지 알기나 할까? ⓒ 문종성

'노먼 베쑨(Norman Bethune)'. 이십대 초반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감명깊은 영감을 주었던 인물 중 하나인 바로 노먼 베쑨의 동상이었던 것이다. 군대 시절 그의 관한 평전을 읽다가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전에 없는 충격과 흥분을 가져다 준 노먼 베쑨의 인생. 도대체 이토록 나를 떨림과 환상으로 전율시켰던 그는 누구였던가?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그의 업적들. 기존의 몽매하고 답답한 의료시스템 속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검증된 자신만의 의견을 피력하며 여러 가지 정책과 더불어 혁신적인 의료 개혁을 이끌어 낸 그였다. 중국의 시골 마을에서 전쟁통에 모두가 피난길에 오르는데도 도리어 전쟁통으로 달려 들어가 아군이고 적군이고 가리지 않고 살려내던 그였다. 질병과 사람, 사회를 돌보면서 정작 마지막 순간 자신의 패혈증은 돌보지 못했던 그였다. 원칙과 소신은 늘 정치보다 생명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켜졌으며, 그것들을 이뤄가고 또 지켜내기 위해서 자신의 기득권마저도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그였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장편임에도 행간마다 의미가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그의 이야기는 느슨했던 나의 삶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렇게도 가슴이 떨릴 수 있는 거구나라는 걸 느꼈었던 누군가의 인생이었다. 그의 인생은 성공을 말하지 않았으면서도 아름다웠고,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찬양했다. '백구은(白求恩) 대부'. 오죽하면 모택동 주석이 노먼 베쑨을 기리며 쓴 글 '백구은을 기념한다'는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많이 읽혀진다고 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조국 캐나다의 촉망받는 의사가 혈혈단신으로 전쟁터로 향해 변변한 수술 도구 없이 극악한 환경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수술을 집행하다 자신이 패혈증에 감염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을. 게다가 자신의 조국과 적대적일 수 있었던 중국이란 나라에 투신하여 살아간 그야말로 온몸으로 역사가 된 진정한 혁명가이자 의사였다는 것을.

의·치대 다니는 친구들에게 노먼 베쑨 평전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던 기억과 다음으로 읽었던 체 게바라의 평전이 무미건조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기억되는 뜨거웠던 그의 생애, 4년 전에 읽은 그의 평전 내용이 동상을 보는 순간 간헐적으로 회상된 것이다. 노먼 베쑨. 그에게서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인생의 목적을 완성할만한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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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요셉 성당.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설명에 따르면 몬트리올이 자랑할만한 관광지 중 하나인 이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성당 중의 하나다. 돔의 높이가 97m에 이르는데 이 크기는 로마에 있는 성 피터 성당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라고 한다. 1만여명의 예배자를 수용할 수 있는 교회당과 성가 예배당, 성당 지하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Brother Andre를 포함해 수많은 순례자들의 유골이 전시되어 있다. ⓒ 문종성


날씨는 선선하고 하늘이 자꾸 낮아지고 있다. 아마도 내가 북반구로 올라와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요셉 성당은 멀리서 보는데도 그 모습이 위용 찬란하다. 성요셉 성당(Saint Joseph's Oratory)은 몽루 아얄(Mount Royal)의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높은 곳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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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기도 계단'. 사람들은 이 계단에서 무릎으로 예배당까지 올라가는 고행을 하며 기도했다고 한다. ⓒ 문종성

그런데 중앙에 보니 따로 특화된 계단길이 있다. 이름하여 '기도계단'이다. 이전에는 이 계단으로 사람들이 계단마다 무릎으로 올라가거나 병자들이 목발을 짚은 채로 기도하며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가면 병이 씻은 듯이 나아 내려올 땐 목발을 성당에 놓고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얼마든지 기도하며 올라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보이지는 않는다. 물질적 부요와 정신적 편안함이 가져다 준 결과일까? 나? 자전거 타느라 관절이… 옆 계단으로 그냥 올라간다.

성당 내부와 외부에는 주로 예수의 고난에 관한 조형물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수요일인 오늘은 관광객들도 참여할 수 있는 미사가 드려진다. 성당 바깥쪽 산책로에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결박에서부터 부활까지 순서대로 설치해 놓았다. 그런데 그 조형물보다도 사실 푸른빛의 산책로가 가져다주는 아늑한 느낌이 더 좋다.

"이런 곳은 여자친구랑 데이트 오면 딱이겠는데?"
"형, 사실 이런 곳은 밤에 와야 돼요. 그래야 여자친구가 무서워하거든요. 하하하."

단일이가 자신의 경험담을 살짝 털어놓는다. 이런 곳에서는 밤에 데이트를 해야 여자친구랑 더 가까워질 수 있다나 어쨌다나.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옆에 솔로들은 가슴 속 깊이 우러나오는 농도 짙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덕분에 나무들의 잎사귀가 더더욱 푸르러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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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요셉 성당은 1904년 Brother Andre가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큰 규모가 아닌 겨우 1000여명을 수용할 정도의 예배당이었지만 1924년 또다른 예배당을 건축하기 시작해 1967년에 완공하였다. 매주 수요일에는 관광객을 위한 미사가 드려진다. ⓒ 문종성



몬트리올 관광청의 '섹시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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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를 짚고 환자들이 기도하며 성당에 올라온 뒤 씻은듯이 병이 나아 지팡이를 두고 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저 많은 지팡이들이 바로 그 증거라고. ⓒ 문종성

성 요셉 성당에서 이것저것 둘러본 뒤 밤이 되어 또다른 청년 의빈이까지 합쳐진 네 명의 일행은 몬트리올 야경을 보러 갔다. 그리고 가는 중에 유명한 게이 스트리트를 가기로 했다(사실 내가 주구장창 주장하던 루트였다).

몬트리올은 그 좋은 이미지가 무색하게 섹스와 관련한 카페가 버젓이 다운타운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몬트리올이 폭력 조직들이 많이 들어와서 발전한 곳이거든요. 그 조직들이 유흥업소를 차려놓고 떼돈을 버는 것이죠. 시내 곳곳에 섹스어필하는 가게들이 많아요."

실제로 차를 타고 가다 보니 민망할 정도로 야한 분위기를 조성해 대놓고 영업하는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몬트리올 시가 오히려 이런 부류에 대한 부분들을 광고해서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키스를 많이 할수록 프랑스풍이 됩니다' 이것이 캐나다 몬트리올 관광청이 2300만 달러를 투자한 새로운 관광 캠페인 구호 가운데 하나란다. 이름하여 '섹시 마케팅'이라는데 이에 대해 관광청이 "몬트리올은 로맨틱하고 섹시하다. 북미 유일의 프랑스풍 대도시의 독특한 분위기를 팔고자 한다"고 적극 홍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혹 가득한 남녀들의 섹시한 광고들이 보는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또 해마다 5월에 열리는 게이 커플 축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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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의 게이 스트리트. 간판에 보이는 무지개 색은 게이들의 상징이다. 앞에는 게이를 상징하는 한 남자의 섹시한 컨셉트의 광고. ⓒ 문종성

몬트리올의 게이 스트리트엔 게이의 상징인 오른쪽 귀걸이를 한 동성커플들이 자주 보인다. 단순히 성적 취향만 틀린대도 이렇게 다른 시각으로 접근이 되는 그들의 삶은 어떨까? 사실 그들은 생각 외로 전투적이거나 까칠한 면보다는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이 많다고 한다. 그들의 성적 취향과 인격과는 아무런 공식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반증일 것이다.

일단 게이 스트리트에 왔으니 유혹의 빨간색과 무지갯빛 조명을 쏘아대는 게이바와 게이 상점들을 보려고 단일이랑 둘이 차에서 나와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한 여인이 다가왔다.

"이봐요. 사진 찍어 드릴까요?"

그녀는 우리가 커플인데 함께 사진을 못 찍어 하는 것 같아 도와주려고 한 것이었다.

"Nooooooooo!!"

놀란 나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크게 대답했다. 순간 나와 단일이는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웃고 말았다. 우리가 게이 커플로 보인다는 걸 서로가 동시에 인지한 것이다.

"그럼, 내가 남자고 단일이 넌 여자?"
"사실은 예스라고 하려고 했는데 말이 안 나왔어요."

단일이의 농담에 엎어지고,

"얘 예전에도 공원에서 어떤 남자가 대시해 왔어요." 의빈이의 말에 뒤집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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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모양 역시 게이들을 상징한다. 몬트리올의 시내에서는 게이 스토어와 섹스 스토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끔 시민들의 항의가 있다고는 하지만 시 정부는 도시를 정화(?)시킬 의지가 전혀 없고 오히려 이런 문화를 관광자원으로 삼기 위해 부채질한다고. ⓒ 문종성


성요셉 성당과 게이 스트리트의 공존

몬트리올은 게이들의 천국이라고 볼 수 있다. 북미에서는 샌프란시스코 다음으로 많은 동성애 문화가 발달해 있으며 지난 5월 17일부터 4일간 세계 동성여행자들의 여행박람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벌써 올해로 24회째라니 소수인권의 문화치고는 그 유서도 남다르다. 또 캐나다 주교 회의는 몬트리올에서 게이 사제들이 동성 배우자들의 결혼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을 했다.

우리나라 가톨릭이나 개신교라면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어쨌거나 나는 게이 스트리트에서 짧지만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시킨 그들의 문화를 통해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과 같아지거나 그들의 의견을 100% 수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거부감이 있다. 말하자면 그들의 모든 것(문화, 생활, 사상 등)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지는 못한 채 선택적 수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게이가 철저하게 비난받거나 그들을 멸시해야만 할 하등 이유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성적 취향도 있겠지만 자신의 선택과는 다르게 유전적인 요인이나 혹은 그 밖에 다른 이유로 인해 불가피하게 그렇게 될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들도 우리랑 똑같다고 본다. 누군가의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인격체이기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면 게이를 사랑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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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의 스카이 라인 야경. 시카고, 홍콩, 상해 등에 비해 소박한 면이 있지만 꽤 아름답다. ⓒ 문종성

몬트리올의 야경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쳤다. 시카고나 홍콩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고 담백한 야경. 그 불빛 아래에서 오늘도 묵묵히 가정을 돌보는 이들과 유흥을 즐기는 이들이 공존하며 몬트리올의 하루를 같이하고 있다. 중요한 건 게이들의 천국이 일반인들의 지옥이 아닌 둘 다 천국으로 공존할 수 있는 도시로 발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풍요의 심리'인 것이다. 성요셉 성당과 게이 스트리트, 그리고 그 둘을 아우르는 몬트리올의 야경. 부조화인 것 같으면서도 조화로운 질서가 새삼 몬트리올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몬트리올 #캐나다 #게이 #성요셉 성당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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