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인철 대위 영정 앞아서 오열하는 어머니와 동생.안서순
“아빠 어디갔어, 왜 안오는거야”
“비행 나간 아빠가 어디간거야? 엄마”
검은 상복을 입은 이정환(11), 지훈(8)형제가 흰 국화로 장식된 아버지 고이규진 중령의 영정이 영결식장에 들어오자 울부짖었다.
옆에 서서 슬픔을 삭이던 미망인은 끝내 고개를 떨구며 아이들을 싸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남편과 아들을 모두 하늘에서 잃은 고 박인철 대위의 어머니 이준신(53)여사는 북받치는 슬픔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자세를 바로하고 있던 의장병의 뺨에도 눈물이 흘려 내렸다. 모두 울고 애써 울음을 삼켰다.
23일 지난20일 KF-16 전투기를 타고 야간요격훈련에 나갔다가 서산기지로부터 90㎞정도 떨어진 서해상에 추락해 순직한 고 이규진 중령과 박인철 대위의 영결식이 거행된 20전투 비행단 내 영결식장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이날 영결식장에는 유족과 김은기 공군 참모총장 등 군 고위 관계자와 미7공군 사령관 스티븐 우드(Stephen G.Wood)중장, 두 조종사의 후배, 선배등이 참석했다.
이 중령은 야간비행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다음날 시간표를 보고 책가방을 미리 챙겨 줄 정도 자상한 으뜸아빠였고 남편이었고 부대내에서는 장래가 촉망되는 전투조종사로 후배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선배들로부터는 믿음직한 후배로 통했다.
박 대위는 지난2월 1년8개월의 고난도 고등비행훈련을 마치고 정식으로 ‘전투 조종사’가 된 새내기로 아버지 박명렬 소령도 박대위가 5살때이던 지난 1984년 한미합동 팀 스프리트 훈련에 F-4D팬텀기를 몰고 참가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산화했다.
▲영결식장에 나란히 놓인 두 조종사 영정안서순
두 조종사의 소속 부대장인 공군20전투비행단 이창현 준장은 조사를 낭독했다.
“오늘 비행단장으로서 참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조국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고 이규진 중령,고 박인철 대위와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하는 힘든 자리에 서 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공군사관학교에 들어와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토록 꿈에 그리던 최고의 KF-16전투조종사가 되었건만 모두의 가슴에 아픔을 남기고 우리곁을 떠나는 지금 비행단장이기 이전에 전투조종사로서 묵묵히 올바른 길을 가던 두 후배조종사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언제나 대견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저 고인으로 맞이하려니 가슴깊이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금할 길 없다.”
영결식 후 이규진 중령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됐고 박대위는 아버지 박명렬소령이 영면하고 있는 서울 동작동 현충원의 아버지 묘소 바로 옆에 묻혔다.
이날 안장식에는 아직 두 조종사의 시신을 인양하지 못해 이들이 비행전에 남겨 둔 머릿카락과 유품을 대신해 묻었다. 공군은 이들 조종사들이 순직하자 각각 일계급씩 추서하고 이날 영결식과는 무관하게 순직 조종사들의 시신과 기체를 인양하기 위한 탐색작전을 계속 진행한다고 밝혔다.
두 조종사가 순직하자 공군홈페이지와 공군전우회 로카피스 홈페이지에 사이버 분향소를 마련 이들들의 명복을 빌 수 있도록 했다.
| | 아버지 따라 하늘에서 산화한 고 박인철 공군대위 | | | | 꿈의 나래를 채 펴보지도 못한 젊은 보라매가 갔다.
그것도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가 산화한 하늘에서 장렬하면서도 너무도 안타깝게 애기(愛機)와 함께 영원히 하늘나라에 핀 꽃으로 남았다.
고 공군 대위 박인철(공사52기). 박대위는 지난 20일 저녁8시 28분 KF-16 전투기를 타고 고 이규진 중령과 함께 타고 서산기지 활주로를 이륙해 서해상공에서 임무수행을 하던 중 저녁9시께 서해해상에 추락해 순직했다.
아버지 고 박명렬소령도 23년전 박대위가 5살때인 1984년 F4D팬텀기를 몰고 한미연합훈련인 팀 스프리트 훈련에 참가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산화했다.
박대위는 지난2월 1년8개월간의 공군 고등비행훈련을 마치고 전투조종사가 됐다. 현충일인 6월6일에는 현충원에 영면중인 부친의 묘소를 찾아 빨간 마후라를 바치며 ‘이게 내 운명으로(전투 조종사가 된 것이)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대위의 집안에서는 박대위가 공군조종사가 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랬는데 박대위는 ‘아버지가 지키던 조국 하늘을 지키겠다’며 재수까지 해서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갔고 지난2월 마침내 소원하던 ‘전투 조종사가 되는 꿈을 이뤘는데 불과 다섯달만에 너무도 성급하게 아버지 뒤를 따라갔다.
박대위의 동료조종사들은 “아버지 박소령은 어떻게 아들을 받아들었을까, 그보다도 남편을 보내고 다시 23년만에 같은 사고로 아들을 잃고 비통해 하는 어머니의 애끓는 간장은 누가 알겠습니까”며 동료를 잃은 슬픔을 애써 참고 있었다.
박대위는 죽어서 일계급이 추서가 되어 대위가 됐다. 박대위의 어머니 이준신(53)여사는 영결식장에서 차오르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며 아들이 사라져간 먼 서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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