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인에게 환영받는 한국인 되려면

[서평] 정기효 <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등록 2007.07.27 14:39수정 2007.07.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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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피랍 사태로 한국 사회가 어수선하다. 그 와중에 기독교 비판 논쟁까지 불 붙어 인터넷은 그야말로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럽다.

특히 두 장의 사진이 논란을 부채질했는데, 한 기독교인이 '민들레밥집' 두타스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회개를 권하는 사진과 아프가니스탄 여행을 자제하라는 경고문 앞에서 찍은 피랍인들의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기독교가 너무 독선적인 것 아니냐" "여행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무리한 일정을 강행한 피랍인들의 안전 불감증에도 문제가 있다"는 등의 따가운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네티즌들의 성토는 점차 인질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목소리로 바뀌고 있다. 비록 엄중히 따져야 할 부분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은 인질들을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쪼록 피랍된 인질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전세계가 한국인의 활동 무대,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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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표지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 이후 한국인들의 활동 무대는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그로 인해 한국인들의 의식의 지평이 전세계로 확대되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간혹 현지인들과 마찰을 빚거나 '어글리 코리안'이란 오점을 남기는 등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정기효의 <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파리에 살다 보면 여행 온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 새끼들 잘 해놓고 사네"라든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라고 말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도 예술품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기보다는 '여기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훔쳐오거나 빼앗아왔다'는 것을 먼저 강조한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한때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무매너와 촌스러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유럽의 호텔에서 라면을 끓여먹다가 쫓겨났다거나 호주에서 노상방뇨를 하다 경찰서에 끌려갔다거나 미국 공항에서 화투를 치다 물의를 빚었다는 식의 일화들이 전설처럼 떠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세계인(cosmopolitan)이 되기 위한 비싼 수업료였던 셈이지만 그 당시엔 "바깥에서 나라 망신시키는" 몰상식한 한국인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바깥에서 나라 망신시키는" 그 몰상식한 한국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이 책에서 여기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썩었다고 너무 쉽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외계에서 떨어진 별종 집단이 아니라면 그들과 동일한 문화적 바탕을 가진 일반 국민들은 부패하지 않았는데 그들만 부패했다고 몰아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정치인 집단이나 기업인 집단은 그 사회의 '표본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썩었다는 것은 '모집단'인 일반 국민들도 일상적인 삶 속에서 부패의 논리를 똑같이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단지 권력과 돈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서 실현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국인 해외 여행객들에게서 나타나는 오만과 무례를 일부 몰지각한 여행객들의 추태로만 몰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한 불씨는 보통 때는 우리의 인성 속에 죽은 듯이 사그라져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하여 지펴지기만 하면 언제든지 화마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면 그 나머지 손가락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썩어빠진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비난하지 말라는 얘긴 아니다. 다만, 그들을 비난하되 자기 자신 역시 그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해외에 나가 추태를 부리는 한국인들에 관한 얘기들이 무성하게 들려온다. 자기과시와 허영심으로 가득 찬 졸부 근성을 외국에 나가서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로마에 가서도 한국에서 하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한국인에 관한 얘기들이 끝없이 들려온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좋든 싫든 그들 역시 한국인이다. 자랑스런 한국인만 한국인이 아니라 어글리 코리안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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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에 들어있는 '절대주의 논리 지도'

그럼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과연 언제까지 어글리 코리안이란 비난을 들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그런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에 의하면 그 해답은 바로 '상대주의'에 있다. 잘 알다시피 상대주의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흔히 암흑기로 일컫는 중세의 사상적 토대가 절대주의라면 중세와 대별되는 현대의 특징은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기본 원리인 민주주의도 상대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나 다름없다.

상대주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갈릴레오의 지동설, 인본주의가 싹튼 르네상스, '국왕은 지배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아낸 영국의 명예혁명, 자유ㆍ평등ㆍ박애의 기치 아래 왕정을 종식시키고 공화정을 출범시킨 프랑스 혁명, 노예 해방을 이루어낸 미국의 시민전쟁(남북전쟁),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고 선언한 천부인권설 등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과 맥이 닿아 있다.

이처럼 유럽과 미국의 상대주의는 수없이 많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조금씩 발전해온 것이다. 독일의 합리주의, 프랑스의 톨레랑스 정신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옮겨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상대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는지 모른다. 단지 절대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만 노력했을 뿐. 지금 진보 진영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따라서 앞으로 한국 사회가 성숙, 발전하기 위해선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 이행하려는 노력에 좀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상대주의와 절대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정기효의 <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은 바로 그에 관한 책이다. 파리 유학을 경험한 저자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 복잡하게 얽힌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하나씩 점검해 나가는 동안 독자들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이나 시집처럼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논리적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은 듯한 포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아프간 피랍 사태를 접하고 가장 먼저 손이 갔던 책도 바로 이 책이었다. 이번 사태를 기독교인들만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우월의식, 민족주의 같은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상대주의 정신의 결여는 언제 어디서나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되겠다. 그렇다고 이번에 피랍된 기독교인들에게 상대주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얘긴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인도주의 정신에 충실했을 뿐이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미국과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 권력을 행사하는 근본주의 성향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김진호, 백찬홍, 최형묵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 미국 복음주의를 모방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그 역사와 정치적 욕망> 참고).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 몇 걸음 더 나갈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하루빨리 피랍된 인질들이 무사귀환하길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정기효, <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에코리브르, 2006, 341쪽. 가격 13500원.

덧붙이는 글 정기효, <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에코리브르, 2006, 341쪽. 가격 13500원.

한국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정기효 지음,
에코리브르, 2006


#아프가니스탄 #기독교 #어글리 코리언 #해외여행자유화 #상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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