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이자 보디가드가 있을까

[상해·항주·소주·남경 여행기 ④] 상해의 용화사와 손중산 고거를 가다

등록 2007.07.29 07:41수정 2007.07.2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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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을 시작한 이후 민박집을 이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박집이 호텔보다 안전한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꼼꼼히 해 보니 상해에 교포가 하는 민박집이 수십 개가 있었다. 민박집을 평가해 놓은 댓글을 보고 숙박할 곳을 정하였다.

가정집 같은 편안함을 주면서 여행지에서 대부분 못 챙겨 먹게 될 아침을, 그것도 한국식으로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도미토리룸이라 하여 한 방에 침대가 6개가 있는 방에서 잤다. 지난밤, 같이 잔 사람 중에는 생면부지의 남자도 있었다.

여행은 사람을 쿨(cool)하게 만든다. 여행자에게 '혼숙'이란 단어는 별로 어색하지 않다. 그저 하루종일 고단했던 몸을 뉘울 수 있고, 내일 있을 여정을 준비하는 침대 하나만 있으면 족하기 때문이다.

황산 꼭대기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출을 보고 내려왔다면서 황산에서의 벅찬 감동을 전하는 남편과 김해에서 흙을 만진다는 도예가 아내는 여행길에서 잠깐 만나 서너 시간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었지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배낭여행족이었다. 그들은 엄마 따라서 씩씩하게 여행을 잘하는 아들이 대견하다며 자신들이 먹는 비타민 세 알을 아들에게 먹이라고 주었다.

여행은 사람을 '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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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용화사. ⓒ 조영님

7월 21일. 두부찌개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민박집을 나섰다. 어제 하루종일 상해 거리를 누빈 탓에 이제 상해에 대한 긴장은 사라지고 오히려 익숙해진 느낌이다. 오늘 오전에 갈 코스는 상해시 서남쪽에 있는 '용화사(龍華寺)'이다.

용화사는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孫權)이 어머니를 위해 지은 사찰로 1700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졌다. 상해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 면에서도 가장 크다고 한다. 사찰 앞에는 40.4미터 8각형의 용화사탑이 우뚝 솟아 있다. 이 탑은 몇 차례 무너졌다가 청나라 말기인 1875년에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청주에도 용화사가 두 개가 있고 전국적으로 '용화'라는 이름의 사찰이 많이 있다. 용화(龍華)라는 말은 미륵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용화수 밑에서 세 차례의 설법을 열었다고 한 '용화회(龍華會)'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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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 조영님

용화사에 들어서니 음력 4월 초 파일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할머니들은 노란 종이로 등같이 만든 것을 한 봉지씩 들고 다녔다. 음력 초파일이라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중국의 사찰 어디를 가도 그렇겠지만 이곳 역시 분향하기 위해 피운 연기로 앞이 자욱하고 매캐한 냄새로 눈이 맵고 목이 아팠다.

용화사에는 미륵전, 천왕전, 대웅보전, 삼성전, 화림장실(華林丈室), 장경루 등의 전각과 누각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고 좌우에 전과 당이 세워져 있다.

특별히 미륵전 뒤편에 있는 종루(鐘樓) 안에는 2미터 크기의 종이 있는데, 상해 8경 중의 하나인 '용화만종(龍華晩鐘)'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이 종루에서 거행하는 성대한 의식을 참관하기 위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전각 앞에서 선 채로 삼 배만 하고 나오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 눈에는 각 전각의 불상이 비슷비슷하여 다른 사찰과 특별히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또 그냥 가기 서운해서 객당(客堂)에 걸려 있는 주련을 읽고 갔다.

여기저기 있는 작은 방은 불법을 논하는 곳이요
흐드러지게 온갖 꽃핀 곳은 바로 도량이로다.

縱橫十笏談法地 爛漫千花選佛場


서른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손문과 송경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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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중산문물관 옆에 의자에 앉아 있는 손중산의 동상이 있다. ⓒ 조영님

용화사를 나와서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서 도착한 곳은 손중산(孫中山) 고거(故居)이다. 이곳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 혁명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손문이 그의 부인 송경령 여사와 함께 1918년부터 1924년까지 살던 집이다. 대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 있는 손중산의 동상이 보였다. 동상 아래에는 '손중산(孫中山)'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손문과 관련된 자료와 상해문물 사료를 전시해 놓은 '손중산문물관(孫中山文物館)'이 있다. 손문의 활동과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나가면 아담하고 소박한 정원이 딸린 2층 집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손문이 부인과 함께 생활하였던 곳이다. 정원에는 1922년 9월 53인의 국민당원이 참가하여 국민당 1차 회의를 거행하였던 곳이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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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중산이 그의 부인 송경령과 함께 생활하던 집이다. 아담하고 소박해 보인다. ⓒ 조영님

손문의 부인 송경령 여사는 남편의 충실한 비서였으며, 남편과 뜻을 같이한 혁명동지였다. 그녀는 남편 손문의 그늘에 가려진 나약한 여인이 결코 아니었다. 중국 근대사상 최초로 미국 유학을 한 신여성이었으며, 여성해방 운동가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아버지의 친구이며 동지이며 자신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 손문과 결혼을 한 결정적 동기는, 손문이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조국을 사랑한 당찬 여성이었으며 평생을 조국을 위해 투쟁하고 헌신한 여성이었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결합한 손문과 송경령이 살았던 집이라고 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송경령 고택이 상해에도 있다고 하였는데 찾지 못하였다. 북경에도 있다고 하니 북경 답사 때는 빼놓지 말고 둘러보고 싶다.

점심은 다시 남경로로 가서 햄버거, 치킨으로 해결했다. 아들은 중국의 낯선 음식을 먹는 것을 싫어한다. 매번 '안 먹어본 음식은 먹어본다'는 말을 상기시켜 주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애써 메뉴를 선택해도 늘 나 혼자 먹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러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7살 아들은 여행의 좋은 파트너이자 보디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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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박물관에 있는 가구이다. 자단목으로 조각한 용무늬 긴 탁자이다. 참 아름다웠다. ⓒ 조영님

점심을 먹고 빙수를 하나씩 들고 남경동로를 오가는 꼬마기차를 왕복으로 타고 가면서 시내를 구경하고 느긋하게 상해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답사라고 해야 아들하고 둘이 하는 것이니까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고, 다리가 아프면 한없이 앉아 있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아들과 함께하는 답사니 만큼 어느 도시를 가든 가능하면 박물관 견학은 빼놓지 않으려고 한다.

두어 시간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이만하면 상해를 떠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미련이 남으면 하루 더 머물려고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오후 5시 56분에 출발하는 항주행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자마자 아들은 잠이 들었다.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니 참 대견하고 고마웠다. 아들은 내게 있어 여행의 좋은 파트너이다.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있을까 싶다. 때로 아들은 내가 보호해 주어야 할 7살 어린애가 아니라, 엄마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디가드이기도 하다.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면 '엄마 맘만 있고 내 맘은 없는 거야?'하면서 대항하는 아들을 보면서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곧 도착할 항주는 어떤 곳일까? 마음속에 기대와 설렘이 이는 동시에 낯선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약간의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19일부터 8박 9일간 아들과 함께 떠난 상해·항주·소주·남경 여행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7월 19일부터 8박 9일간 아들과 함께 떠난 상해·항주·소주·남경 여행기입니다.
#중국 상해 #용화사 #손중산문물관 #상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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