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세상, 내 생의 열쇠를 찾아서

세상을 알아가는 청소년을 위한 책, <산다는 것의 의미>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

등록 2007.08.03 19:54수정 2007.08.0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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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시, 팝핀 등에 골몰한 청소년들에게 낯선 선물이 도착했다. 바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라는 책이다. 왠 책 이야기냐며 넌더리를 낼 수도 있겠지만 보시라, 세기의 악조건 속에서 살았던 이 평범한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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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철북

<산다는 것의 의미>는 제목부터 숙연해진다. 어른들 눈에는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청소년들에게도 '생의 의미'는 자못 진지한 말이다.

이 책의 저자 고사명은 본명이 김천삼으로 1932년 일본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 2세 작가다. 그의 자전적 소설 <산다는 것의 의미>는 김천삼의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최근 <우리학교> 다큐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고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재일 조선인의 삶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김천삼의 삶은 사실 우리 청소년들에게 '할아버지가 들려준 옛날옛날 고생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의 남다른 점은 '일본에 살았던 조선인 할아버지의 소년기' 이야기라는 데 있다.

갓난아기 동생이 쥐에 물려 죽고, 새엄마도 집을 나가고 판잣집에서 아빠와 형과 살았던 소년의 이야기. 김천삼은 이 기구한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심각하게 그려내지는 않는다. 담담하게 조선인들이 살았던 그 시절, 그 마을 이야기를 나직이 들려줄 뿐이다.

아마도 이 책은 일본과 한국의 독자들에게 고루 읽힐 책으로 보이는데, 일본의 전쟁에 대한 원죄는 인정하되, 일본인들의 삶도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는 작가의 해석이 이를 반증해준다.

삶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상황에서 전깃줄에 목을 맸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꽉 잡으며 죽지 말라고 외쳤던 김천삼과 그의 형. 아이러니하게 종이지붕이 무너지면서 아버지는 죽지 않았고, 무너진 집 무더기에서 이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큰소리로 울었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청소년들에게 정말 죽음은 무엇일까? 삶은 무엇일까? 위기 고난 지수가 부족하다는 어른들의 우려를 한몸에 받는 이들에게 김천삼의 생은 어떻게 보일까?

아마도 그냥 힘든 이야기로 보일 것이다. 깊이 감화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의도가 나도 힘들게 살았으니 '그러니까 너도 살아'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근원으로 '사람과 사람'을 말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상냥함입니다. 상냥함이란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평생토록 지녀야 할 마음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훌륭한 것은 다른 사람을 걱정해주는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간의 상냥함이야말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진짜 힘이라는 것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계속 탐구해 나갈 것입니다."

산다는 것, 이 멋진 일에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김천삼은 생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살고 있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

앞서 일본강점기 조선인 소년의 이야기가 있었다면 지구 반대편에는 1948년부터 2000년까지의 소년, 소녀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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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과 느낌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으로 숨 가쁘게 살았던 흑인들의 이야기다. 책 표지 그림은 흑인과 백인 어린이가 사이좋게 교실에서 안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책에 대한 첫인상부터 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느낌이 왔다.

이 책의 저자 베벌리 나이두는 1943년 요하네스버그의 한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흑인 유모와 유년 시절을 함께 했던 그는 대학시절 인종차별법에 저항하다 감옥에서 독방 신세를 진 적도 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권문제에 대해 강연회나 독서 모임 등을 진행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록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산다는 것의 의미>의 김천삼의 이야기와 거의 동시대 이야기인 만큼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인권이란 말조차 사치스러웠던, 아니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이들에게 펼쳐진 험난한 생의 과정들이 흑백영화 속의 기구한 파노라마와 같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는 각 연대별로 주인공을 달리해 단편들로 이루어진 글이다. 첫 번째 글은 1948년 베로니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베로니카는 자신의 집에 함께 살던 가정부 레베카의 아들 셀로가 백인에게 등나무 회초리로 가혹하게 매를 맞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단순한 내용 전달에만 치중하지 않고 주인공들이 인종차별적 사건들을 목격했을 때의 감정 묘사에 신경을 쓴 흔적들이 보이는데, 이러한 점들이 한층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듯했다.

단편들로 이루어져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을 결코 가볍지 않다. 수많은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우리는 글을 읽으며 그 시대 남아프리카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많은 부분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산다는 것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차별'이 존재한다. 전쟁이 지배하던 세계에 민족으로 차별받았다면, 21세기는 돈으로 차별받는 세상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청소년들은 어떤 가치관의 열쇠를 갖게 될 것인가. 청소년들과 함께 사는 어른은 어떠한 열쇠를 만들 것인가. 우리 모두의 과제는 현실이고 풀어야 할 짐이다. 우리가 낸 길과 우리 아이들이 낼 길에 대해 말해야 할 논장에 이 책들을 넌지시 던져 보고자 한다.

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양철북, 2007


#산다는 것의 의미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야기 #부조리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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