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바다너머에 정말 모잠비크가 있을까

[마다가스카르 여행기 7] 바오밥나무 4

등록 2007.08.17 11:57수정 2007.08.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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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해변가 ⓒ 김준희

아침에 일어났더니 코가 꽉 막혔다. 어제 저녁에 늦게까지 모잠비크 해협을 바라보면서 바닷바람을 맞았기 때문이다. 여기가 아무리 아프리카 대륙 옆이라고는 하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게다가 내가 머물고 있는 오아시스 호텔의 작은 방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열치열'이 아니라 '이냉치냉'이라고 해야하나.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으니까 머리털이 얼어붙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면 좀 나아질지 모르겠다. 해변가의 뜨거운 태양빛 속으로 들어가면 이 추위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오아시스 호텔에서 5분만 걸어가면 해변이 나온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따뜻하다. 이른 아침의 해변가에서는 아이들이 맨발로 축구를 하고 있다. 해변은 고운 모래사장이라서 맨발로 뛰거나 걷기에 좋다. 하지만 단단한 축구공을 차기에도 좋을까? 아이들은 모래바닥에 선을 긋고 긴 막대 2개를 꽂아서 골대로 사용한다.

작은 배를 타고 어디론가 나가는 사람도 있고 야자열매를 들고다니면서 파는 사람도 있다. 2만 아리아리를 내면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갈 수 있다고 호객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맨발이다. 운동화를 신고 있는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시몬 덕에 먹어본 야자열매

무엇을 먹는 것이 좋을까? 몸 상태가 이럴때는 과일을 먹는 것이 좋다. 그러고보니 마다가스카르에 와서 과일을 아직 먹지 못했다. 오늘은 무릉다바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다음 목적지는 이살로 국립공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살로 국립공원 앞에 있는 작은 마을 '라노히라'가 목적지다.

무릉다바에서 라노히라로 가는 시외버스는 없다. '피아나란츄아'로 우선 이동한 다음에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라노히라로 가야한다. 우선 이 버스표를 끊어놓고나서 과일을 먹든 뭘 먹든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시몬을 찾았다.

"시몬!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오늘은 일요일. 상점도 많이 문을 닫았고 거리는 한가하다. 덩달아서 호텔도 한산하다. 호텔의 직원들도 제각기 자기 볼일들을 보고있다. 시몬은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내가 물었다.

"무릉다바에 성당이 있어?"
"작은 성당이 하나있어"
"매주 일요일에 성당에 가? 오늘이 일요일이잖아"
"성당에 가지. 일요일 아침에. 성당에 가면 프랑스어로 미사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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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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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마을 ⓒ 김준희

이 호텔에서 2일 동안 머물면서 친해진 시몬과 함께 버스 정거장으로 향했다. 내일 오전 10시에 피아나란츄아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가격은 4만아리아리. 우리 돈으로 약 2만원 가량이다. 꼬박 하루, 그러니까 2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타나에서 무릉다바로 올때도 24시간 동안 버스를 탔는데, 또 24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 같다. 한번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나한테도 요령이 생겼다.

"시몬! 우리 시장에 가자!"

버스표를 사놓고 우리는 시장으로 향했다. 일요일이라서 시장도 한가하다. 우리는 커다란 야자열매와 파인애플을 각각 2개씩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야자열매는 2개에 1000아리아리, 파인애플 2개는 3200아리아리다. 시쳇말로 '착한 가격'이다.

나는 야자열매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이 야자열매를 어떻게 먹을까? 아무래도 칼이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가지고 다니는 맥가이버칼을 꺼냈다. 시몬은 내 칼을 한번 쳐다보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월남전때 정글에서 사용했을 것 같은 커다란 칼을 들고 나타났다. 시몬은 한손에 야자열매를 들고 다른 손에 칼을 잡고 야자열매의 윗부분을 몇차례 내리친다.

퍽! 퍽!

그렇게 몇차례 치자 윗부분이 잘려나가면서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안에는 시원한 과즙이 들어있다. 시몬은 야자열매를 나에게 건네준다.

"자, 마셔"

솔직히 좀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그냥 마셨다. 커다란 야자열매를 두손으로 들고 구멍에 입을 대고 그 과즙을 들이켰다. 별다른 맛은 없다. 달지도 않고 그냥 시원한 맛이다. 그리고 양이 많다. 이거 하나를 마셨더니 배가 불러온다. 시몬도 다른 야자열매 하나를 들고 마셨다. 그리고 파인애플을 깍아서 커다란 접시에 늘어놓고 먹었다.

"시몬, 축구 좋아해?"

아침에 해변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생각이나서 내가 물었다.

"그럼, 축구 좋아하지"
"어느 팀 좋아해? 프랑스?"
"아니, 프랑스는 싫고 브라질이 좋아. 잘 하잖아"

이곳은 무릉바다가 아니라 '무릉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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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열매, 윗부분을 자르고 구멍을 통해 즙을 마신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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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이카의 영웅, 밥 말리 그림 앞의 시몬 ⓒ 김준희

어딜가나 남자들의 공통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축구다. 하긴 프랑스팀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한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에서 프랑스팀을 좋아할리가 없지 않겠나. 호텔에서는 신나는 마다가스카르 음악을 틀어놓았다. 호텔의 곳곳에는 밥 말리의 포스터와 그림이 걸려있다. 춤추기를 좋아하는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밥 말리의 음악처럼 경쾌한 음악을 좋아한다. 야자열매와 파인애플로 배를 채우고 나서 시몬과 함께 다시 해변을 거닐었다. 햇살은 따갑고 바다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저 바다 너머에 정말 모잠비크가 있을까? 아무리 성능좋은 망원경이 있다하더라도 400km 너머를 볼 수는 없다. 정말 모잠비크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배를 몰고 나가보는 수밖에. 오래전 대항해시대 당시에 수많은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 대서양으로 나갔던 것도, 징기즈칸이 말을 달려서 서쪽으로 향했던 것도 어쩌면 그런 호기심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수평선 너머에 그리고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그 호기심.

이 곳의 이름을 '무릉다바'가 아니라 '무릉도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해변의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온화한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좀처럼 소리를 지르는 법이 없다. 현지인들을 닮아서인지 이곳의 개들은 짖지도 않는다. 시도때도없이 울어대는 닭들을 제외하면 마을 전체가 조용한 느낌이다. 나는 시몬과 함께 천천히 해변을 걸었다. 따가운 햇살만 아니라면, 아무리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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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해협으로 해가 진다. ⓒ 김준희


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바오밥나무 #자마이카 #모잠비크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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