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꽃에는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등록 2007.08.17 19:07수정 2007.08.17 19:0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참, 오랜만이네."

울퉁불퉁 꽃 모양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린 시절에는 흔하디 흔한 꽃이 바로 맨드라미였다. 우리 집 화단에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구네 집에 가더라도 볼 수 있는 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이 없다. 눈앞에서 멀어졌다. 찾은 적도 없었지만 사라졌다고 하여 찾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하게 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a

맨드라미 ⓒ 정기상

생각지도 않은 후배가 전화를 했고, 만남의 기쁨을 나누기 위하여 찾은 식당이었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공간에 화단을 조성하고 가꾸어놓은 모습에서 주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얼마 만인가. 재회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면서 한참 동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바빴을까? 생활에 밀려가느라 옆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달리다 문득 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바위를 보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이 얼마나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인지를 실감하였다. 온몸에 전해지는 절박함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극복할 수 없는 위기였었다. 열정이 넘쳐 있을 때에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당연 무서운 것도 없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온몸에서 힘을 빠져나가 버리니,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a

고추 꽃 ⓒ 정기상

능력의 한계. 무서운 위기감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안으로부터 오는 자각이었다. 나 자신의 힘을 한계를 절감하게 되니, 지탱할 수가 없었다.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뿌리가 흔들리게 되니, 모든 것이 모래성이었다. 굳게 믿고 있던 신념들이 바람처럼 힘을 잃었다. 흔적도 없이 해체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였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살아온 시간들이 허무해지고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나 자신만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절망감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난감하여 방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는 생각이 참을 수 없게 하였다.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곳으로 끝없이 추락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전환점이었다.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됨으로써 자유를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초점을 찾지 못하던 마음이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시선이 안으로 돌려진 것이다.

a

되살아나는 추억 ⓒ 정기상

생각이 내 안으로 돌려지게 되니, 그동안 의식하지 못하던 것들이 되살아났다. 잃어버리고도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하였던 것들이 하나 둘 살아난 것이다. 밖에서 찾던 것들이 결국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하나 되찾게 되는 것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래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맨드라미도 그래서 그렇게 반가운 것이었다. 꽃에는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행복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기에, 절망감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a

그리움 ⓒ 정기상

빨간 맨드라미를 바라보면서 소중한 추억을 되살려낼 수 있었다. 반추하면서 재음미함으로써 소중한 나의 보물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맨드라미를 통해서 잊어버리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되찾는 일에 열중해야 하였다. 맨드라미가 한하게 웃고 있었다. 꽃을 바라보면서 묵은 것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김제시에서 촬영

덧붙이는 글 사진은 전북 김제시에서 촬영
#맨드라미 #전북 김제 #추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4. 4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5. 5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