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마다가스카르의 밤을 달린다

[마다가스카르 여행기 8] 피아나란츄아 가는 길

등록 2007.08.21 09:31수정 2007.08.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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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다바를 오전 11시에 출발한 미니버스는 밤 10시 경에 미안드리바조에 도착했다. 이 버스의 목적지는 피아나란츄아(Fianarantsoa)라는 도시다. 무릉다바를 출발하면 미안드리바조, 안치라베, 암보시트라를 차례로 거친 후에 피아나란츄아에 도착한다. 피아나란츄아는 꽤 큰 편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2번째 혹은 3번째로 큰 도시다.하지만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도시이기도 하다.

 

<론리플래닛>에 의하면 피아나란츄아의 인구는 채 15만명이 되지 않는다. 수도인 타나의 인구가 400만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인구가 수도에 밀집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무릉다바에서 피아나란츄아로 가는 길

 

피아나란츄아 자체에는 크게 볼거리가 없다.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그 주위에 두 개의 국립공원 즉 이살로 국립공원, 라노마파나 국립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피아나란츄아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이살로 국립공원이 있고,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라노마파나 국립공원이 있다. 피아나란츄아는 이 국립공원으로 가기위한 일종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다.게다가 피아나란츄아에 가면 마다가스카르에서 유일한 정기여객열차를 탈 수 있다. 피아나란츄아에서 동쪽으로 가면 '마나카라'라는 작은 항구도시가 있다. 인도양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피아나란츄아에서 마나카라로 가는 여객열차가 일주일에 세편이 있는데, 그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기차 밖으로 기가 막힌 경치가 펼쳐진다고 한다. 피아나란츄아는 작은 도시지만, 그 주위에는 멋진 여행의 명소들이 있는 셈이다.미안드리바조 역시 작은 도시다. 미니버스가 정차한 주위에 여러대의 버스들이 서있다.

 

장거리를 달리는 버스들은 대부분 미안드리바조에 들러서 휴식을 취한다. 운전사와 승객들은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밥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나는 환타 1병을 사서 마시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에는 엄청난 수의 별이 박혀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던 한 현지인이 나한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재크'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인데 이 도시에서 여행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재크는 여행가이드가 되기 위해서 7년동안 영어공부를 했다고 한다. 영어를 잘하지만, 발음이 약간 억센 편이다. 이 친구는 'Factory'라는 단어를 '빡또리'라고 발음한다. 그는 자전거를 한쪽에 세우더니 가방에서 커다란 파일을 한권 꺼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식당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우리 투어프로그램 좀 소개할게요""피아나란츄아 가는 버스가 이제 곧 출발할텐데요""금방이면 되요. 시간 그렇게 많이 안 걸려요"

 

미안드리바조에서 만난 가이드 재크

 

설마 미니버스가 나를 버려두고 그냥 출발하지는 않겠지. 나는 재크를 따라서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재크는 커다란 파일을 펼쳐보이면서 나에게 투어프로그램을 설명했다.

 

미안드리바조에서 서쪽으로 가면 '치리히비나'라는 이름의 강이 있다. 보트를 타고 이 강을 따라가면서 캠프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도중에 여우원숭이도 볼 수 있고, 물고기를 잡아서 구워먹기도 한다. 재크는 그동안 투어를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말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 참가비용이 얼만데요?"

"2박 3일 짜리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숙식 모두 포함해서 200유로에요"

 

2박 3일에 200유로라면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장점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투어에 참가하면 쉽게 가볼 수 없는 지역을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셈이다. 호기심이 발동하기는 했지만, 지금 나는 우선 피아나란츄아에 가야한다. 재크는 투어프로그램을 정리해둔 종이 한장을 나에게 주며 말했다.

 

"다음에 여기 오게되면 우리 투어에 참가해보세요"나는 고맙다고 말을 하고는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재크는 자전거를 몰고가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혼자서 여행하다보면 이런 현지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현지에서 투어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가이드들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외국인에게 와서 자신을 소개하고 투어프로그램을 홍보한다. 마다가스카르에는 멋진 경치와 함께 온갖 희귀동물들이 있는 만큼, 이런 가이드들의 숫자도 많을 것이다.

 

버스는 포장도로를 따라서 어두운 밤길을 달려간다. 피아나란츄아에 도착하려면 꼬박 24시간이 걸린다고 했으니까 이제 절반정도 온 것이다. 가끔가다 포장도로가 끊기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을 달리다보면 길 양쪽에 여러 채의 집이 세워진 작은 마을을 볼 수 있다. 때로는 '마을'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만큼 작은 곳도 있다. 나무로 만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상수도 시설도 없고 전화도 없고 가스도 없다. 간단하게 말해서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한밤중에 그런 동네에는 아무런 불빛도 없다. 가끔씩은 촛불이나 모닥불을 켜두고 10여명의 현지인들이 그 불 주위에 모여 앉아있는 경우도 있다. 마치 무슨 한밤중의 비밀의식이라도 하는 것 같은 풍경이다. 이건 그래도 좀 좋은 경우이다.

 

사람도 안보이고 불빛도 없는 유령의 마을 같은 곳을 지나갈때도 있다. 그럴때는 정말 여기가 사람사는 마을이 맞나, 하는 의심이 생겨난다.간혹 그런 마을 도로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앉아있다. 고양이는 겁도없이 도로 한 가운데 앉아서 다가오는 미니버스를 빤히 바라본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반사된 고양이의 눈이 반짝 빛날때면 나도 모르게 오싹해진다. 저놈의 고양이가 이 마을 사람들을 죄다 잡아먹어치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마다가스카르에도 변화의 바람이 올까

 

도로에서 좀더 떨어진 곳, 그러니까 좀더 깊숙한 산악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방식으로 자급자족을 택할 수 밖에 없다. 외부와의 거래없이, 현금거래도 없이 그냥 물물교환만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충당한다. 마을하나만으로 완결된 경제활동이 가능한 것이다.그 사람들은 해가 뜨면 논에서 곡식을 키우고, 지천으로 널린 과일나무에서 과일을 따고 소를 돌보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올린다.

 

그리고 해가 지면 나무를 얽어서 만든 집이나 흙으로 만든 집으로 들어간다. 전기도 없고 가스도 없고 상수도도 없는 곳에서 더 이상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정도 활동만으로도 이들의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충당할 수 있다.이들에게는 '임금노동'이라는 것이 필요없다. 현금을 벌어들일 필요도, 재테크를 해야할 이유도 이들에게는 없다. 단지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서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끌어모으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돈을 벌기위해서 노동을 한다'라는 개념을, 이들은 아마 평생동안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장소가 그렇듯이, 이곳에도 변화의 바람이 오고 있다. 그런 변화는 자연을 밀어내고 길을 닦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길을 만든다. 산을 뚫고 숲을 밀고 강에 다리를 놓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질 수 밖에 없다.조만간 마다가스카르의 구석구석에도 포장도로가 뚫리고, 전기가 들어오고 TV가 보급될지 모른다.

 

그러면 이들의 생활방식도 근본부터 바뀔 것이다. 그 변화가 이들을 어디로 끌고갈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때가되면 이들은 더이상 예전같은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그 변화를 과연 반갑게 받아들일까? 전기와 수도와 의료시설이 들어오면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화폐경제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 지금까지 해온 것 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야만 할 것이다.

 

깊은 오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들 스스로 문명을 거부하는 것일수도 있다. 무엇 때문일까. 자신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확신 때문일까.그런 변화가 시작된다면 마다가스카르의 거친 자연도 함께 파괴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펜 워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우리는 잃은 것이 무엇인지,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곳에도 변화가 시작되면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 것일까? 아니 그런 변화가 정말 이들을 위한 것일까? 그때가 되면 마다가스카르의 밤하늘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별들도 함께 사라질지 모른다. 미니버스를 타고 밤길을 달리면서 별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없어진다는 이야기다. 복잡한 생각으로 밤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2007.08.21 00:1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문명 #파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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