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기차, 너무 빨라서 사람들이 외면

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 여행의 역사>

등록 2007.08.21 21:01수정 2007.08.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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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처음 타 본 기억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경남 진주에서 경남 하동 송림숲에 소풍을 가는 형님 가족을 따라 갔었다. 그 때 비둘기호를 타고 갈 때 본 풍경이 지금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후 기차 여행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1994년 대학원 공부를 위하여 수원까지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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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여행의 역사> ⓒ 궁리

96년까지 계속된 기차여행은 매주 계속되었기 때문에 아마 지구를 몇 바퀴는 돌았을 것이다. 10여 년 전 기차여행은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최근 읽은 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여행의 역사>는 3년간의 긴 기차 여행을 새롭게 떠올리게 하였다.

볼프강 쉬벨부쉬는 기차가 현재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서러움과 고통을 겪고 노력을 하였는지 말한다. 기차가 사람들에게 처음 속살을 드러내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시간의 단축과 절약, 속도감 때문에 감사패를 전달하지 않았다. 기차는 사람의 대화를 단절시켰다. 나와 너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한 마차의 좁은 공간을 기대할 수 없었다.

또한 풍경과 사람을 단절시키는 존재였다. 빠른 속도감이 느림의 시간 속에 공간의 풍경을 이해하는 당시까지 인간의 능력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기차는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공간의 풍경을 이해할 수 없게 하였다. 사람은 빠른 시일 내에 공간의 풍경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숙제를 가졌다.

"열차를 타고 하는 여행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자연 조망, 산이나 계곡의 아름다운 전망은 아예 사라져버리거나 아니면 왜곡되어 버린다. 지형을 오르고 내리는 것, 건강한 공기 그리고, '거리'라는 말로 연결되는 다른 모든 기분 좋은 연상들을 사라지거나 아니면 황량한 단절들, 어두운 터널들, 그리고 위협적인 기관차의 건강하지 않은 가스 분출이 되어 버린다."(본문 73쪽 인용)

이런 기차를 누가 사랑하겠는가? 사람들은 이웃과 너와 나 사이의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기차는 사람과 이야기, 풍경을 보는 재미를 빼앗아 가버렸다.

우리 시대 기차는 속도를 더욱 빨리 한다. 비둘기호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통일호도 사라졌고, 무궁호는 가장 느린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새마을호는 이미 KTX에 강자의 자리를 내준 신세이다. 기차를 처음 만난 이들이 KTX를 타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빠른 것만 옳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 시대 인간 군상들이 조금은 더 느린 기차를 타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닐까?

저자는 유럽과 미국의 객차 차이를 말하면서 기차의 세계를 너무나 잘 그리고 있다. 유럽은 마차와 기차의 객차, 미국은 증기선과 기차 객차의 차이다. 즉 마차는 단절성이 있다. 유럽의 기차 객차는 객차 사이에 단절의 벽이 있다. 하지만 증기선과 미국의 객차는 열린 세계이다. 기차는 병리학의 발전을 가지고 왔다는 말에 동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의 충돌 쇼크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질병을 이해하는 노력의 출발점이 된다. 닫힌 객차가 남긴 현상은 무엇일까?

"마부는 마차를 세우고, 여행객은 당장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철도 여행객들의 경우는 어떻게 다른가? 여행객이 우연히 차장 바로 가까이에 있는 좌석에 앉아 있지 않는 경우, 도움을 청하는 그의 목소리를 그저 허공에 울릴 뿐 어떤 도움도 받을 수가 없다. 죽어간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면 할수록 더 도움을 받지 못한는 상항에 처하게 될 것이다."(본문 107쪽 인용)

우리 기차는 열린 객차이다. 하지만 고급화가 될수록, 특급이 될수록 갇힌 공간을 원한다. 자신의 세상을 꿈꾸지만 그곳엔 '우리'가 없다. 그러기에 도움이 필요할 때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이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하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문제 그 공간이 닫힌 곳이며, 우리가 없으며, 살림의 공간은 아니다.

백화점과 기차가 파노라마라는 의미에서 동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였고, 흥미를 넘어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 풍경과의 단절을 선물하면서 사람들의 외면을 샀지만 이제는 단절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이야기 꺼리와 다른 이와의 만남, 조용히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교통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빠른 속도, 고속 열차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느림보 완행열차 비둘기호(이런 열차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말 다시 한번 비둘기를 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철도여행의 역사> 볼프강 쉬벨부쉬 저/박진희 역 | 궁리 |

덧붙이는 글 <철도여행의 역사> 볼프강 쉬벨부쉬 저/박진희 역 | 궁리 |

철도 여행의 역사 -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볼프강 쉬벨부쉬 지음, 박진희 옮김,
궁리, 1999


#기차 #철도여행 #볼프강 쉬벨부쉬 #단절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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