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너무 크게 펄럭입니다

[정윤수 칼럼] 일상 공간을 장악한 관공서의 거대 상징물

등록 2007.08.23 18:14수정 2007.08.2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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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일상적인 공간에 우뚝 선 초대형 태극기 ⓒ 정윤수

며칠 전부터 동네 앞에 거대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아파트는 지하철 역 입구로부터 작은 공원이 시작되어 신호등 하나를 건너고 나면 어림잡아 약 2km에 걸쳐 큰 폭의 공원 길이 펼쳐지는데, 사시사철 리듬에 따라 그 길을 걸어 출퇴근하는 맛이 사뭇 정겨운 산책에 다를 바 없다.

굳이 그 유명한 호수공원까지 가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소요와 놀이가 가능한 공원 길이다.

보행로 한복판을 '점령한' 초대형 태극기

그런데 그 초입에 거대한 태극기가 휘날리기 시작하였다. 지난봄부터 지하철 입구의 작은 공원을 뜯어고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초대형 스테인리스 깃대봉(?)과 특대호 태극기로 화룡점정을 한 것이다. 흡사 '상징과 그 효과'라는 주제의 미술 전시회 출품작처럼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누가 태극기를 보행로 한복판에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그것도 엄청난 질량감의 깃대봉을 세우고, 그 위에 축구 경기 때 응원용으로 쓸 만한 초대형 태극기를 매단 것일까. 저와 같은 우람한 상징이 일상 공간의 대표적인 시각 이미지로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현대사의 우여곡절에 의하여 태극기에 대한 일반적인 심정은 복잡다단하다. 6·25전쟁과 그 이후의 비극적 상황 때문에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고 그들을 위하여 태극기는 장엄하게 휘날렸다. 오후 6시가 되면 국기 하강식에 맞춰 일체의 행동을 삼가던 때도 있었고 독재자의 귀국 길에 연도에 늘어서서 흔들던 비에 젖은 태극기도 있었다.

세상이 한결 부드러워지면서 월드컵 응원 때의 태극기 패션 같은 흥미로운 집단 퍼포먼스도 있었는데, 그러나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여전히 태극기는 경건한 무게와 다의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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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깃대봉 공사로 건널목 주변이 더욱 복잡하게 바뀌고 말았다. ⓒ 정윤수

'감히' 태극기를 우러러 할 말은 아니겠으나, 그럼에도 '보행권'의 관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그것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는 신호등 한복판에 초대형 태극기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시각 이미지의 관점에서도 이 초대형 태극기는 주위 자연스런 풍경을 한 번에 압도한다. 특히 육중한 스테인리스와 결합되어 '우뚝 솟아 있는' 형상인데, 이 같은 강렬한 힘의 과시가 군 부대도 아니고 관공서도 아닌 동네 어귀에 행사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현행의 국기 게양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경축일이나 기념일,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따로 규정하거나 지방의회가 의결한 경사스러운 날에 게양하도록 되어 있는데, 적어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매일같이 초대형 태극기 밑으로 오가게 된 것이다.

물론 누구라도 태극기에 대하여 경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좌우를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그 태극기에 대하여 저마다 마음의 무늬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이미 상당한 질량의 역사와 그에 걸맞은 권위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존숭이나 경망스런 야유는 불필요하다.

권위적 상징물은 국기의 존엄을 해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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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태극기 밑으로 주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 정윤수

그런 이유에서 동네 앞의 초대형 태극기가 의아스러운 것이다. 현실의 어떤 측면을 뜻밖의 방식으로 새롭게 보고자 하는 예술적인 상상력의 차원에서 국기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전시회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토록 억지스러운 초대형 국기 게양이 가능할 수 있을까.

국기가 존엄한 것이라면, 그것이 권위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필요한 장소에서 적절하게 활용되어도 충분히 존엄하고 권위적일 수 있다. 권위는, 그 자체로 권위적이기 때문에 이를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순간, 흠결이 생기고 나아가 반작용까지 생기는 것이다.

개인 내면의 완전한 자유를 위하여 그 어떤 상징에 대해서도 단호한 거부 의사를 가진 '예민한' 사람들만이 초대형 국기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동네를 오가면서 귀로 듣고 눈으로도 본 주민들 중에 저토록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대하여 지지를 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한 가지 더. 언젠가 이 칼럼을 통하여 쓴 적 있지만(2005년 1월 31일), 자유로를 이용하여 귀가할 때마다 '바르게 살자'는 표석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나와 내 가족의 편의를 구하기 위하여 일산의 한 모퉁이에 작은 집을 구해 살고 있지만, 적어도 관공서의 입장에서, 그 거대한 상징물을 만든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나는 날마다 '바르게 살자'는 다짐을 받아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초대형 국기를 동네 어귀에 설치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충용스런 신민'에 불과한 것이다.

저 거대한 상징물이 오히려 원치 않는 역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과연 모르는 것일까.

나무와 풀이 어울려 있는 공원 길 한복판에 따라 초대형 국기를 설치한 것은 오히려 온갖 권위적 상징물을 억지로 강요했던 독재 시대의 우울했던 기억만 되살릴 뿐이다. 보행에도 불편하고 시각적으로도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국기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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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에서 장항 나들목을 빠져나와 일산 신도시 입구에 서있는 '바르게살자' 표석 ⓒ 정윤수


#국기 #애국심 #권위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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