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갈 데가 없어 좋겠습니다"

나를 일깨우는 전남 구례 '사성암'

등록 2007.08.24 10:47수정 2007.08.2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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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사성암은 원효ㆍ의상ㆍ도선ㆍ진각대사 등 네 명의 고승이 수도했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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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마음먹기 나름이겠지요? ⓒ 임현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세상에 임하며 누구나 한 번 쯤은 스스로에게 던져봤을 질문입니다. 이런 나를 돌이켜 보고 생각할 여유가 필요하다면 가볼만한 곳이 있습니다.

지상에서 하늘 세계인 도솔천에 승천한 것 같은,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이라 하고픈 곳은 바로 지리산 자락인 전남 구례에 있는 사성암(四聖庵)입니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암자를 보며 '저기 한 번 올라야 하는데…' 했던 곳입니다.

드디어 지난 22일, 박광수씨와 사성암에 올랐습니다. 그의 "사성암에 가자"는 뜻밖의 제안에 흔쾌히 "그러자" 응낙했던 것입니다. 가파른 산길을 오릅니다.

원효ㆍ의상ㆍ도선ㆍ진각대사가 수도했다는 '사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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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은 산을 오르는 사람 입장에선 오르막길이요, 내려오는 사람에겐 내리막길이듯 처지에 따라 다르겠지요? ⓒ 임현철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허~어, 어찌 그걸 알아?) 그저 왔다 가는 곳."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까?"
"(아이고~, 뭔 이런 질문을 한다냐?) 마음 편하게 사는 것. 누구 하나 마음 편히 사는 사람이 없다. 내가 나를 속이며 사는 데 그럴 필요 없이 사는 게 잘 사는 것 아닐까?"

느닷없는 엉뚱한 질문에 '아니, 이놈이…' 하던 표정이면서도 답은 딱꿍딱꿍 잘 합니다.

사성암은 해발 500여m의 전남 구례 오산 꼭대기에 있는 암자로 고승들이 수도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이름만으로도 용화세계로 이끌 것 같은 원효ㆍ의상ㆍ도선ㆍ진각대사 등 네 명의 고승들이 수도했다 하여 사성암으로 이름 지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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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 절벽에 자리잡은 사성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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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은 각도에 따라 다양한 멋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삶도 그러하겠지요? ⓒ 임현철

유래를 알고 보니 어떤 이가 전한 어느 스님의 설법이 생각납니다.

"… 어떤 이가 어느 날 유람 중에 아귀를 만났습니다. 첫 번째 만난 아귀는 팔이 없었습니다. 그를 보고 '당신은 할 일이 없어 좋겠습니다'고 말하니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두 번째는 다리가 없었는데 '당신은 갈 데가 없어 좋겠습니다'란 말을 듣고 모습을 감췄습니다. 세 번째는 머리가 없는 아귀를 만났습니다. 그는 '당신은 살면서 골치가 안 아파 좋겠습니다'란 말에 종적을 감췄습니다.…"

참 엉뚱하고 황당한 말입니다. 팔이 없는 귀신은 팔이 없는 불편함을 호소하려 했겠지요. 다리 없는 귀신과 머리 없는 귀신도 자신의 애로점을 말하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갈구하고 희망하려 했겠지요.

그런데 "당신은 할 일이 없어 좋겠습니다", "당신은 갈 데가 없어 좋겠습니다", "당신은 골치가 안 아파 좋겠습니다"며 오히려 그들의 신간편함(?)을 부러워했으니 더 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했겠습니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을…."

잊고 있었던 본심의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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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들에게 삶은 '선' 자체였겠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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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곧 사성암의 마음이겠지요? ⓒ 임현철

절벽에 우뚝 선 암자가 마음의 안개를 몰아내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온 이채홍씨는 "어떻게 이런 곳에 건물을 올렸을까?" 궁금해 하며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설악산의 봉정암 같은 느낌이 들어 참 좋다"고 합니다. 봉정암을 못 가본 저로서는 그 느낌을 비교할 순 없습니다만 그냥 좋습니다.

법당을 살펴보니 불상은 간데없고 유리 사이와 바위가 보입니다. '절벽 사이에 세운 암자라면 돌에 불상을 새긴 게 좋겠군' 여겼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고려 초기로 추정되는 마애약사여래불 입상이 투명 유리를 통해 비추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다보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마련이지요. 그러면서 힘들어 하고 "아이고 죽겠다"를 남발하며 살아가지요. 산에 오르는 재미는 세상을 잊고 잠시 도솔천의 세계로 오르는 비움(無)을 맛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성암에서 아래를 굽어보니 섬진강과 구례가 시원스레 펼쳐지고 있습니다. 또 지리산 자락의 줄기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잊고 있었던 본심의 나를 불러보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나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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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로 추정되는 사성암의 마애약사여래불.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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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에서는 섬진강, 지리산과 어울린 구례가 시원스레 보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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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씨는 세상을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는 "인사 잘하는 아이"를 목표로 자식을 키웠다 합니다. 소박한 꿈입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365, SBS U포터,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365, SBS U포터,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구례 #사성암 #원효 #의상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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