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뜨락에 놓은 징검다리

[광촌단상 7] 기원을 담으면 돌길도 상징물이 된다

등록 2007.08.25 14:26수정 2007.08.2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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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뜨락'은 아직 이름이 없다. 텃밭이라기에는 넓고 '농장'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작다. 그렇다고 '별장'이니 '별서(別墅)'니 하는 명칭은 나 자신부터 원하지 않는 바다. 그러기에 아직도 '아내의 뜨락'일 뿐이다.

풀 베는 틈틈이 아내의 뜨락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발길 닿는 곳이 곧 길인데 굳이 돌길을 만들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사실 징검다리는 달리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느림에 공명하는 길이다. 자연과 어우러질 때는 멋스러운 점도 있고 또 사람을 편하게 하는 점도 없지 않으나 그렇지만 모든 길이 그러하듯 자칫 강요된 질서, 즉 사람에 대한 구속일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시간 망설이다 시작한 일이었다.

길에는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길이 있음을 알고 있다. 길을 뜻하는 한자의 도(道)는 실체를 짐작할 수 없는 우주의 근원임과 동시에 절대적인 진리를 의미한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러나 뜨락의 징검다리는 보이는 길이지만 사람이 반드시 다녀야 하는 길이라기보다는 쉼터로 가는 방향을 일러주는 상징적 의미가 강한 길이다. 그리고 징검다리는 나의 소박한, 그렇지만 다소 이기적인 소망을 담은 길이기도 하다. 남이 모르는 또는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으면 하는 소망을.

기왕 길을 낼 작정이면 현재의 지형에 어울리는 특별한 길을 만들겠다는 의욕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져 남의 정원을 엿보았지만 아무래도 예산이 문제였다. 아무리 간절한 소망을 담은 징검다리라지만 하늘의 별을 떼어 땅에 심고 달그림자를 붙여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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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를 시작했을 때의 한 장면 ⓒ 홍광석


생각 끝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로 징검다리를 놓자고 결론을 내고 돌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한 변이 평평하여 성인 남자가 두 발로 서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크기, 그러면서 너무 무겁지 않은 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냇가를 헤매고 폐가의 무너진 돌담을 들추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정한 기준에 맞는 돌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준을 바꾸어 두 개를 붙여 놓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넓적한 돌을 찾았지만 그 역시 흔하지 않았다.

어렵게 모은 돌을 운반하는 일도 한 짐이었다. 모양도 다른 무거운 돌을 수레에 싣는 일도 힘이 들었고, 익숙하지 않은 수레를 끌 때는 여러 번 비틀거렸다. 그 와중에 너무 욕심을 부린 탓인지 돌을 실었던 손수레의 바퀴까지 주저앉아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그뿐 아니다. 계획한 선을 따라 돌을 배치함으로써 징검다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적절하게 땅을 파서 느린 걸음의 폭에 맞추어 돌을 심는 작업도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돌은 허리를 놀라게 했고, 비슷한 작은 돌 두 개를 골라 맞추는 일도 퍼즐게임 못지않게 땀나는 고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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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서 입구 쪽으로 바라본 징검다리 전경 ⓒ 홍광석

하루에 몇 개도 놓고, 일주일은 쉬기도 하면서 거의 달포 만에 입구에서 쉼터에 이르는 징검다리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느릿하게 걷는 사람이 병을 떨치고 잡념을 털어내기를 바라는 소박한 주술적인 기원를 담고, 밟아도 흔들리지 않는 돌길 한 가닥을 지상에 남긴다는 생각으로 땀흘려 만들었지만 내가 봐도 모양 좋은 길은 아니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 비탈진 곳을 가는 것처럼 위태해질 수밖에 없다지만 순탄하지 못했던 내 삶을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별로 내세울 것도 없던 사람들, 양지만을 찾아다니던 사람들도 어쩌다 때를 잘 만나 한 자리했던 경력을 밑천으로 대통령을 꿈꾸는데 고작 징검다리나 놓고 있는 내 신세를 비교하면 조금은 초라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 30명 이상의 국민이 절망하고 목숨을 끊는 나라, 한미FTA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나이든 노인들을 구속하는 나라에 살면서 한가하게 징검다리나 놓으면서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누군가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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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쉼터 쪽으로 바라본 징검다리의 전경 ⓒ 홍광석


그러나 징검다리는 사람과 만남을 피하고 복잡한 생각을 떠나 시골에 묻혀 지내는 나에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처럼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작업이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또 징검다리를 놓으면서 나 역시 부모와 자식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라는 사실과 더 나아가 기나긴 역사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놓여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많이 생각했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그러나 징검다리에 개인의 사유와 기원의 흔적은 남지 않을 것이다. 반백년이 되기 전에 징검다리는 땅에 묻혀 형체를 잃거나 아니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바람만이 스쳐가는 길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지라도 혹시 아내의 뜨락을 찾은 사람들이 징검다리를 느리게 건너면서 잠시 먼 하늘을 보며 숨 고르는 시간을 갖는다면 다행 아니겠는가?
#징검다리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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