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중 1년 가까이 실어증 앓는 병사
"맞으면 말하지 않겠어?" 구타당하기도

의료진 "심리적 이유로 인한 전환장애"... 원인·대응 놓고 부대-가족 입장차

등록 2007.08.28 12:35수정 2007.08.2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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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모 상병이 소속부대장에게 쓴 편지와 일기 ⓒ 오마이뉴스 이경태

"손에 구멍을 하나 뚫어 그 고통으로 인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제가 가진 12가지 색연필로 색깔별로 하나씩 구멍을 뚫고 싶은 심정입니다.

1년 가까이 실어증을 앓고있는 윤아무개 상병. 윤 상병의 실어증세가 시작된 것은 작년 9월 22일. 고참이 동료 병사들과 야구 게임을 하다 실수로 놓친 봉걸레 자루에 맞은 후부터였다.

윤 상병을 진료한 군 병원과 민간병원은 그의 실어증이 물리적 타격이 아닌 심리적인 이유에서 발생한 전환장애로 의심된다는 진단을 내렸다. 현재 윤 상병은 지난 17일부터 강릉국군병원에 입원 중이다.

10차례가 넘는 진료와 치료를 받았지만 말문은 트이지 않았고 애초 배정받은 보직에서도 제 역할을 다할 수 없었다. 부대에서는 작년 12월 말을 못하는 윤 상병의 사정을 고려해 부대장실 부속 근무병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그러나 부대의 조치들은 윤 상병의 실어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병원에서 아버지와 나눈 필담과 부대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살펴보면 오히려 말을 잃고 난 뒤 부대 내에서 가혹 행위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말 못하는 11개월 동안에도 가혹행위 시달려

"보직이 변경된 뒤 거기가 더 괴로웠다. 분대장은 옆에서 나 들으라고 욕을 하는 것 같다. 자기가 피해를 받아서 못 살겠다며 전역하면 부대에 고소·고발을 준비하는 아버지를 자기가 고소한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휴일 간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데 나 들으라는 듯 "하는 것도 없으면서 맨날 잔다고"하고…."

윤 상병은 주변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아침에 일어나 구석구석 청소하고 다시 교통소대에 내려가겠다고 자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군생활에 임하려 했다. 작년 3월 윤 상병은 희망대로 다시 예하 부대로 복귀됐다.

그러나 윤 상병은 헌병 검문소에서 근무를 같이 서던 김 병장에게 구타까지 당했다. 김 병장은 "물리적인 자극을 받으면 혹시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냐"며 윤 상병을 때렸다.

부대 측에서 이에 대해 조사하자 윤 상병은 "아무도 다치기 원치 않는다"며 오히려 김 병장의 처벌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가 겪은 마음의 고통은 더 컸다.

"처음 말이 안 나올 때는 '물리적인 타격' 때문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말이 안 나오기 며칠 전에 손으로 목을 장난 식으로 몇 대 맞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나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되거나 피해를 받는 것은 싫다. 부대에 작은 피해라도 갈까 봐 일부러 말을 안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부대 측은 "윤 상병을 구타한 김 병장은 윤 상병의 청원을 감안해 경고조치를 취했다"며 "그 외에 윤 상병이 그 동안 가혹행위를 당했는지에 대해 지난주부터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부대 "입대 전에도 비교적 심한 말더듬 증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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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상병의 소속부대는 관련 보도 중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경태

지난 20일 한 언론이 "군대 내 사고로 실어 증세를 보이고 있는 육군 이등병을 부대 측이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1년 동안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며 이 사건을 보도했다.

윤 상병의 소속부대는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기사내용을 부인했다. "부대는 윤 상병의 치료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고 윤 상병은 입대 전에도 비교적 심한 말더듬증상으로 인해 고충을 겪었다"는 내용이었다.

부대 관계자는 지난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사단 의무대 진료, 군의관 진료까지 포함해 총 13회 정도 윤 상병의 실어증을 치료하기 위해 협조했다"며 "부대는 가족들이 요청한 민간병원 진료를 위해 휴가 등의 조치도 취했고 윤 상병의 보직을 변경하는 등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언론보도처럼 이제야 의병전역 조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국방부령 590호 장병 신체검사 규정을 보면 의병전역을 하기 위해서는 1달 이상의 입원이나 최초 발병일로부터 1년이 경과해야 한다. 윤 상병은 발병 당시 두 가지 요건이 맞지 않았다. 이제야 그 조건이 부합되기 때문에 의병전역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윤 상병이 초등학교 시절 혀짧은 소리를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2차례 정도 받았고, 윤 상병 스스로가 말을 더듬어 지적을 받았다고 진술한 바가 있다"며 실어증 원인에 대해 윤 상병 측 책임을 강조했다.

"영어발음 위해 수술한 것... 우수성적자를 말더듬이라니"

이에 가족들은 즉각 반발했다. 아버지 윤경문(47)씨는 "입대 후 후반기 교육을 받고 나서 수료식에서 우수 성적자로 단상에 서 박수를 받았던 아이다"며 "어떻게 멀쩡했던 아이를 말더듬이로 만드냐"며 부대 측의 입장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혀 짧은 소리를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받은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영어 발음을 더 유창하게 하기 위해 혀 밑에 있는 얇은 조직 '설소대'를 살짝 잘라내는 '영어 발음용 혀수술'을 받은 것뿐이다."

또 그는 "아이가 말을 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우선인데 군병원 측에서는 그런 치료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윤 상병의 글에도 "부대 사람들은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하고 병원에서는 아무 치료가 없이 이렇게 말도 못 하고 시간만 보내니 내가 어떻게 변할 것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밝히고 있다.

가족과 부대 측은 지난 27일 5시간 동안 강릉국군병원에서 윤 상병의 실어증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했다.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부대와 가족들의 입장 차가 어떻게 정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실어증은 심리적 이유로 인해 나타난 '전환장애'

의료진은 윤 상병이 앓고 있는 실어증을 '전환장애'로 진단했다. 정신과 전문의인 조중근 박사는 "전환장애는 심리적인 이유로 신체 중 일부의 기능이 마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환장애'는 무엇인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들이 아버지를 미워하고 폭행하고 싶은데 그 친족 폭행의 죄책감으로 오른팔이 마비가 되는 것이다. 오른팔이 마비되어 아버지를 폭행할 수 없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겪는 죄책감도 해소가 돼 그 사이에서 심리적인 타협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 윤 상병의 가족들은 부대 내 사고로 인한 실어증 발병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물리적인 충격으로 인해 실어증이 발병됐다고 보긴 힘들다.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중추신경을 가격하지 않는 이상 말만 못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심리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물리적인 충격을 준 사람에 대한 적개심이나 그동안 군생활에 대해 심리적인 갈등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 윤 상병이 1년 가까이나 아직 말을 못하고 있는데 정신과적 치료가 있어야하지 않나?
"1년 가까이나 된다면 심각하다. 정신과적 치료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이미 심리적인 타협에 의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 원인 중 하나인 군 생활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치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군조직 특성상 신체가 건강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신경정신과적인 이유가 꾀병처럼 비춰져 얄미운 사유가 될 수 있어 윤 상병이 부대 내에서 처신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군대 #가혹행위 #실어증 #전환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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