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좀 봐요. 어머~, 신기해라!"

[장수풍뎅이 기르기 2] 짝짓기

등록 2007.08.31 11:51수정 2007.08.3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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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풍뎅이 수컷 '팽팽이'와 암컷 '린다'의 짝짓기입니다. 동물의 짝짓기는 번식이 목적이지만 인간의 경우 이 외에도 암수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보상'차원도 강하다 합니다. ⓒ 임현철

"여보, 여보! 이리와 봐요."

다급하고 들뜬 아내의 목소리입니다. 무슨 큰일이 난 줄 알았습니다.

"왜 그래?"
"아이∼, 여기 좀 봐요. 어머∼, 신기해라!"


아내와 아이들은 합사시킨 장수풍뎅이, 수컷 '팽팽이'와 암컷 '린다'의 짝짓기를 보며 너무나 신기해 합니다. 물론 저도 빠질 수야 없죠.

팽팽이와 린다의 신혼 첫날밤은 지난 10일 밤, 아내가 출장 가고 없는 틈을 타, 아이들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유인즉, "혼자 두면 외로우니, 서로 의지하며, 자손도 퍼트리고, 알콩달콩 지내라"는 배려입니다.

"둘이 사니까 집도 큰 집으로 교체한다"며 모종삽으로 톱밥을 옮기고, 물도 뿌리고, 놀이목을 놓고, 드라이버로 스티로폼 뚜껑을 뚫어 공기구멍을 내느라 정신없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시킨 후 따로따로 먹이를 줍니다. 같이 살면 '먹이 다툼'이 생길 것을 염려해 마지막으로 편히 먹어라는 의도입니다. 새집이 완성되어 합사를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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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이'와 '린다'의 신혼방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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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첫 날 밤을 보내기에 앞서, '팽팽이'와 '린다'가 각자 젤리를 먹고 있습니다. ⓒ 임현철

첫날밤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뒤늦게 확인하니 새집인 스티로폼 위의 공기구멍을 너무 크게 뚫어 빠져나오기 쉽게 되었습니다. 녀석들이 돌아다니다 다칠 우려 등으로 새집을 포기합니다. 린다가 쓰던 보금자리에 신방을 차립니다. 합사 첫날입니다. 동족을 만나 반가운 기색과 함께 탐색전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첫날 밤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짝짓기는 이틀 밤에 이뤄졌습니다. 아내는 이를 보고 신기해 하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훔쳐보기'는 인류에게 일부일처제 정착 이후, 남녀노소 지위고하 불문하고, 성에 대한 불만(?) 해소책으로는 최고라 합니다. 이 재미, 굳이 말해 뭐하겠습니까?

"어디, 어디?"
"아이∼, 요 팽팽이 엉덩이 밑에요. 생식기가 나왔잖아요∼ 봤어요?"

"아니, 안 보이는데…."
"아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봐요."


바닥에 바짝 붙어 생식기를 보려 애를 쓰나 잘 보이지 않습니다. 팽팽이가 린다 몸 뒤로 올라 낑낑대며 안간힘을 씁니다. 린다는 괴로운 듯 도망 다니기에 바쁩니다. 허물 벗은 지 3일 된 린다에게 짝짓기를 억지로 시도하려 하니 어디 쉬이 되겠습니까?

팽팽이 녀석, 좀 기다렸다 크면 일을 치를 것이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안달인지….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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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보는 재미, 말해 뭐하겠습니까? ⓒ 임현철

동물의 교미, 수컷이 뒤쪽에서 암컷 엉덩이에 올라타

번식을 위한 팽팽이의 노력이 안쓰럽습니다. 쫓기고 쫓아가고, 숨고 찾는 실랑이가 계속됩니다. 사랑의 밀고 당기기 과정이겠지요. 그러나 린다에겐 곤욕인 것 같습니다. 짝짓기를 시도하는 사이, 수컷이 생식기를 들이밀며 삽입을 시도하지만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합니다. 암컷이 사랑을 나눌 준비가 안 됐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영장류의 전형적인 교미 자세는 수컷이 뒤쪽에서 접근하여 암컷의 엉덩이에 올라타는 것이다. 암컷은 엉덩이를 들어올려 수컷에게 내민다. 따라서 암컷의 생식기 부위는 수컷한테는 거꾸로 보인다. 수컷은 그것을 보고 암컷에게 다가가 뒤에서 올라탄다." - 데스먼드 모리스 <털없는 원숭이> 79쪽

그러고 보니 짝짓기 실패의 원인은 책 내용 그대로입니다. 암컷이 엉덩이를 들어올려 내밀면서 수컷 생식기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야 하는데 이 준비가 덜된 것입니다. 무작정 올라탄다고 짝짓기가 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한 시간가량 헛물만 켜던 팽팽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벽에 올라 방바닥에 떨어지곤 합니다. 넘치는 정력을 주체 못해 씩씩거리는 모습이 왠지 민망스럽습니다. 꼭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화끈거립니다.

아내는 짝짓기 때 보이는 장수풍뎅이 수컷 생식기도 신기하지만 씩씩거리는 과정을 더 재미있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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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가 톱밥 속으로 숨기도 하지만, '팽팽이'는 어김없이 찾아내 짝짓기를 시도합니다. 여기까지는 '나~ 찾아 봐라~'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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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지로 피해도 끈질기게 쫓아가 끝끝내 짝짓기를 시도하려 합니다. ⓒ 임현철

"야, 그만해. 린다가 싫다잖아!"

짝짓기를 보며 호기심에 알듯 모를 듯 이상야릇한 미소가 묻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차츰차츰 안타까움이 밀려듭니다. 참다못한 유빈이 울먹이며 한 마디 던집니다.

"야, 팽팽아! 그만해. 린다가 싫다잖아!"
"린다, 옮겨줄까?"


하자, 태빈이 기다렸다는 듯,

"아니요. 친구하라고 오늘은 놔둬요."
"그래, 그러자!"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다른 건가요? 린다가 안쓰러운지, 지켜보던 아내마저 나무젓가락을 들어 둘 사이를 떼어 놓으려 합니다. 자연 다큐 찍는 이들이 간혹 자연의 활동에 개입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며칠 지나는 사이 린다가 몹시 수척해졌습니다. 시달리다 못해 탈진 상태입니다. 팽팽이도 짝짓기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장수풍뎅이는 태어난 지 보름 정도 지나야 껍질이 딱딱해져 완전한 성충이 된다는 걸 몰랐던 탓입니다. 결국 팽팽이와 린다의 합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면 다시 합사를 시도할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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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이'가 '린다' 뒤에 올라 타 짝짓기를 시도하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합니다. 자세가 중요한데 자세를 간과한 탓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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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가 안쓰러운지, 보다 못한 아내의 개입이 잠시 있었습니다. 그만큼 사랑에는 '때'와 '마음'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 임현철

인간의 성(性), 암수관계 강화 위한 '보상'

아무튼 짝짓기도 때가 있고, 서로 마음 맞아야 한다는 자연의 이치일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막무가내로 벌이는 사랑은 탈이 나는 거겠지요. 절제가 필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동물의 사랑은 번식이 목적이지만 인간은 이것만 아닙니다. 데스먼드 모리스에 의하면 "인간이 성교를 많이 하는 것은 자녀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짝에게 보상을 줌으로써 한 쌍의 암수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이며 "긴 양육기간에 따라 배후자를 묶어둘 요량으로 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 합니다.

삶을 엿보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난 25일 린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번식을 하면…' 하고 잔뜩 기대했었는데….

아이들은 팽팽이에게 "다른 짝을 구해 주자" 또는 "짝을 찾게 산림욕장에 놔 주자"고 조르고 있습니다. 고민입니다. 어찌할지?

어찌됐건, 아이들은 곤충이 알에서 깨어나 성충이 될 때까지의 경험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느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짝짓기 후, 알 낳는 과정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마저 경험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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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암컷 '린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팽팽이는 다시 홀로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생명에 대해 배운 듯 합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365, SBS U포터,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365, SBS U포터,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장수풍뎅이 #짝짓기 #번식 #첫날밤 #팽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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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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