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뭐라고요! 이바지 음식이 평균 300만원이라뇨. 호텔 뷔페도 아니고 말이에요." "이바지 음식은 친정어머니가 시댁 식구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음식이에요. 대충 해 보냈다간 계속 말 나와요."
오는 11월 결혼을 앞둔 이아무개(30)씨는 이바지 음식 값을 알아보다가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서울 압구정에 있는 L업체는 170만원, 신촌에 있는 K업체는 110만원, 신사동에 있는 P업체는 400만원의 견적을 낸 것.
업체 관계자들은 "모둠 떡, 모둠 전, 갈비찜, 해물산적, 과일 세트, 술 일곱 가지가 기본 중 기본"이라며 "잘 해 가는 집은 10가지 이상 해 간다"고 강조했다. 시댁 식구들에게 친정어머니 솜씨를 선보이는 첫 자리인 만큼 간소하게 했다간 두고두고 후회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씨는 식구들과 음식을 먹는 데 몇 백만원을 쓰는 건 그야말로 돈 낭비라고 생각하고 친구들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본이 400만원인데?" 하는 무안한 반응만 되돌아왔다. 이씨 친구 중 2명은 올해 초 결혼했고 이들은 모두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유명 한정식 집에서 이바지 음식을 맞췄다.
가격은 기본 7종 세트가 400여 만원. 이들이 일반 이바지 업체가 아닌 한정식 업체에서 맞춤 제작을 한 건 한눈에 보기에도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업체 홈페이지나 전화 상담을 통해 알아보면 지역별, 업체별로 같은 품목이라도 많게는 30만원 넘게 차이가 났다. 정말 많은 예비 신부들이 이바지 음식에 몇 백만원씩 들여 할 수밖에 없는지 이들이 말하는 강남 일대 이바지 음식 업체 4곳을 직접 방문해봤다.
"누구 소개로 오셨어요?" 이바지 음식을 알아보러 왔다고 하자 유명 한정식 업체 관계자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이 업체를 찾을 정도라면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소개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업체에서 이바지 음식을 했던 지인의 이름을 말하자 업체 관계자는 눈을 반짝이며 앨범 형식의 카탈로그를 보여줬다.
"기본은 하실 거죠? 그럼 모둠 떡과 약식 떡 63만원, 갈비찜 55만원, 갖은 전 50만원, 전복을 포함한 해물찜이 150만원, 도미찜 50만원, 국수 28만원, 밑반찬 85만원, 과일 28만원…. 대략 400만원 정도 하겠군요." "이중에서 생략할 만한 것은 없나요? 모두 다 해야 하는 거예요?" "굳이 생략한다면 국수랑 밑반찬 정도 생략할 수 있어요. 하지만 더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생략해도 괜찮으시겠어요?"
중상 수준은 된다는 압구정 Y업체도 가격 차이 외에는 다를 것이 없었다. Y업체가 제시한 가격은 150만원. 업체 대표는 "이바지 음식은 친정어머니와 이모들이 품을 많이 들여 마련해야 하는데 요즘은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라 업체에서 대행한다"며 "신부 집안이 신랑 집안에 비해 처질수록, 예단이 부실할수록 고가의 이바지 음식을 주문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예비 신부들은 이바지, 폐백 음식에 집착할까. 한 끼 밥값으로 지불하기엔 가격 부담이 큰 음식들을 왜 고집할까?
올해 3월 강남 유명 한정식 집에서 이바지 음식을 맞춘 최 모(29)씨는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요약했다. 그는 "요즘은 친정어머니가 직접 이바지 음식을 하는 대신 이바지 전문 음식 업체에서 맞추는 것이 대세"라며 "요즘 시어머니들은 이바지 음식 업체 이름만 대면 대충 가격을 안다"고 말했다. 즉 이바지 음식 업체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인 만큼 싼 곳에서 했다가는 시댁을 우습게 아느냐는 뒷말을 들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이어 "친정어머니도 예로부터 이바지 음식은 친정어머니의 수준과 가풍을 가늠하는 음식인 만큼 어지간한 곳에선 하기 싫어 하셨다"고 덧붙였다.
올해 2월, 300만원짜리 이바지 음식을 한 신아무개(30)씨는 이바지 음식과 예단은 신부에게 '일종의 보험'이라고 말했다.
"우리 시어머니는 처음에 예단, 이바지 음식 모두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요. 근데 정말 제가 생략했으면 아마 지금 시집살이깨나 할걸요? 이바지 음식을 들여가던 날, 딱 음식 보자기를 푸시더니 '친정어머니가 신경 좀 쓰셨구나' 하시더라고요. 시어머니들끼리 서로 예단과 이바지 음식 정보를 나누기 때문에 간소하게 하거나 덜 해 가면 평생 피곤할 수 있어요."
시댁 식구 출신 지역 따라 기대하는 이바지 음식도 달라진다. 업체 관계자들은 이바지 음식을 다양하고 많이 신경 써서 준비하는 지역은 경상도라고 말했다. 이어 전라도, 강원도, 서울, 충청도순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시댁이 경상도이면 기본 세트인 일곱 가지 품목 외에도 해물산적, 편육, 장어구이, 구절판 등을 추가로 해야 한다고 한다. 모란떡, 두텁떡, 찰편, 한과, 갈비찜, 오색전, 구절판, 떨갈비, 대게 대하, 장어, 전복, 생선 해물찜 등을 모두 할 경우 가격은 500~800만원 선에 이른다.
폐백 음식 가격도 만만치 않다. 폐백 음식은 무조건 시아버지 고향 풍습에 맞추는 것이 예의다. 가격은 30만원부터 100만원까지 다양하다. 많은 예비 신부들이 결혼식장이나 웨딩 컨설팅 업체에서 추천하는 업체의 폐백 음식으로 정하지만 실제로 웬만큼 잘 산다는 집안은 이바지 음식만큼이나 폐백 음식에도 신경을 쓴다고 업체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집안 살림에 서툰 딸이 시집가서 행여 고생하지나 않을까 이런저런 음식을 장만해 보내줬던 이바지 음식, 하지만 지금 이바지 음식은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얼마짜리 이바지 음식을 했는지, 어느 업체에서 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화려한 이바지 음식 이면엔 딸은 '시집을 오는 것'이라는 시댁의 으름장과 예비 신부들의 시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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