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사태 종결... 국민 마음은 어떻게 치료하나

[뉴스 속의 건강 ⑭] 피랍자들,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용서 구하고 자숙해야

등록 2007.09.05 17:52수정 2007.09.0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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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 43일만에 재회한 귀환자들과 가족들이 서로 끌어안고 흐느끼고 있습니다. 안양샘병원에 마련된 환영식장은 온통 울음바다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피랍자 19명이 무사히 귀국하며 41일간 끌어오던 아프간 피랍사건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피랍사태는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피랍자들에게 냉소적인 여론과 정부의 구상권 청구 등 피랍사태 이후에 풀어가야 할 문제가 더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번 사태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피랍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교계의 반응과 언행 하나까지 주시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피랍자들은 현재 안양샘병원에서 의료진들에게 둘러싸여 전인적 치료를 받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번 사태로 인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민들의 냉소적 반응, 어디서 왔나?

박은조 한민족복지재단 이사장이 지난 7월 23일 오전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과 관련해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피랍자들의 석방 후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 엄두영




사상 초유의 피랍사태가 벌어진 시점 이후부터 많은 국민들은 이 사건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일부 국민들은 냉소를 넘어 탈레반을 응원하거나 자극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전 세계에 배포했고, 일부 네티즌은 도를 넘은 악플을 달다가 피랍자 가족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였으며, 피랍자들의 입국장에서는 한 시민이 피랍자들에게 계란 투척을 시도하는 등 많은 사건과 사고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보수 개신교 단체에서 피랍 사건이 종결된 후 계속된 해외 위험지역 선교의지를 보이고, 피랍자들이 속해있는 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목사가 정부가 청구한 구상권에 대한 대응자료 만드는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며 많은 국민들은 개신교 자체에 대한 비난도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국민들의 냉소적인 반응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김혜숙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국민들이 자신과 국가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며 "인질들의 납치가 국가가 인질이 된 듯한 느낌을 주었고,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도 탈레반에 같이 인질이 된 듯한 느낌을 가져 온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김 교수는 "국민들이 피랍자들에게 보이는 비판적 반응은 그들에 대한 애증의 한 단면"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피랍자들과 같은 종교를 믿는 개신교인들 중에도 이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또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전부터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양비론적 생각이 이번 인질 사건에 작용한 듯 하다"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하게 비난하는 심리가 냉소적인 국민들 반응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합니다.

택시 강도의 예를 든다면, 택시 강도와 피해자는 엄연히 다르게 취급받아야 하는데 우리 국민들은 택시 강도를 당한 사람이 위험해 보이는 택시를 탄 것에 대해 양비론적으로 함께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냉소적인 국민들의 반응에 대해 "국민성이 한 단계 성장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즉 냉소적인 것이 단순한 비난이 아니고 이성적으로 비판적인 것이라면 충분히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허 교수는 "과거에는 국민의 정서가 지나치게 정서적인 측면이 있었다"며 "우리의 문화가 감성적 문화에서 이성적 문화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우리 사회가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에서 나온 반응"이라고 피랍자들에 대한 비판을 긍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하나?

한 인터넷 포털에서 현재까지 약 10만명이 참여한 가운데 무려 92%가 넘는 국민들이 피랍자와 교회측에 대한 정부의 구상권 행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국민들의 싸늘한 여론을 되돌리는 일이 새로운 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5일 오후 현재) ⓒ 네이버 갈무리


허태균 교수는 정부가 테러 단체와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에 대해 "매우 나쁜 선례를 남겼으며, 국민들이 테러 단체의 표적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국민들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크게 우려했습니다.

허 교수는 이어 "학습이론을 통해 테러 단체는 한번 맛 들인 인질 교환을 통한 이익 실현을 계속 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타 테러단체도 한국인에 대한 납치를 계획하려 할 것"이라고 외국 여행이나 취업시 국민들이 많은 부담 떠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번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국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같은 분석은 피랍자들의 석방 후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인 물라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 지도위원회 10명 가운데 1명이 로이터 통신을 통해 "한국에서 받은 돈으로 무기와 자살폭탄테러용 차량 구입과 통신망을 정비하여 자살 공격과 추가 납치극을 벌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며 우려가 현실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허 교수는 "우리 국민들이 이번 사건과 같은 이유로 테러 단체에 납치될 때마다 정부가 최 일선에 나서서 구출할 수만은 없다"면서 "현재 이 시점이 우리 국민이 테러 단체에 납치되었을 때의 정부의 역할을 설정할 수 있는 호기"라며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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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털 사이트 네티즌 청원에서 현재까지 4만 8천여명의 네티즌들이 구상권 행사를 건의하기 위해 서명하고 있습니다. (5일 오후 현재) ⓒ 다음 갈무리


한편 최인철 교수는 "현재 국민들이 누가 잘못했는가에 대해 가치관의 혼란을 가지고 있다"면서 "한쪽으로 치우쳐서 보지 말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최 교수는 "현재는 문제의 규정이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게 규정되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자기 방어를 스스로 하기 힘든 민간인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활동하다가 납치를 철저히 계획했던 테러 단체에 피랍된 사건으로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양비론에서 벗어나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김혜숙 교수는"“피랍자들이 그곳에서의 어려웠던 일들과 심경을 진솔하게 얘기하며 엎드리고 자숙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들에게 잘하고 있는 행동"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이런 태도를 보는 국민들은 '밉지만 용서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진솔한 사과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 국민들이 이들을 포용할 수 있으므로 지금 이 시점 이후의 피랍자들과 피랍자 가족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일부 기독교인들과 목회 지도자들이 여론을 무시하고 공격적으로 선교하겠다고 하는 자세는 매우 좋지 않다"며 "피랍자들과 그 가족들이 국민들에게 고개 숙이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리고 피랍자들과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이들과 관련된 종교 단체에서도 함께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이고 자숙할 때 국민들의 냉소적인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피랍 사태는 종결되었지만, 피랍자들과 그 가족들뿐만 아니고 대다수의 국민들까지도 이번 사건을 통해 오랜 기간 많은 상처를 안고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한 국민들의 아픔은 쉽게 아물기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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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형규 목사에 이어 심성민씨가 아프간 탈레반에 의해 추가 살해된 7월 31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아프간사태 평화해결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두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머지 피랍자들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이번 피랍사태가 우리들에게 남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덧붙이는 글 | 엄두영 기자는 현재 경북 의성군의 작은 보건지소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진료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입니다. 많은 독자들과 '뉴스 속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덧붙이는 글 엄두영 기자는 현재 경북 의성군의 작은 보건지소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진료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입니다. 많은 독자들과 '뉴스 속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아프간 #피랍 #뉴스 #건강 #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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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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