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틀이나 먼저 와서"... 부시는 불청객

[APEC 리포트 ①] 민폐와 공휴일 동시에 선사한 부시... '시드니 스톱'

등록 2007.09.06 10:12수정 2007.09.0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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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미로를 통과하는 시드니 시민. ⓒ 윤여문


2007년 현재, 지구에서 힘자랑깨나 하는 나라의 정상들이 속속 호주 시드니로 모여들고 있다. 200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제15차 정상회의가 시드니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제19차 APEC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는 5일 개막됐다.

APEC은 아시아와 태평양연안국 21개국이 모여서 만든 세계 최강의 경제협력체다. 세계 3대 군사강국인 미국·중국·러시아가 회원국이고, 거기에다 일본까지 합하면 세계 주요 경제대국이 망라된다.

그뿐이 아니다.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따르면, 21개 회원국가의 인구를 합칠 경우 세계인구의 40%에 달하고 전 세계교역량의 48%를 차지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지구 GDP의 56%를 APEC 회원국들이 생산하는 것이다.

부시와 후진타오가 시위대의 공격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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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 부시' 시위 포스터. ⓒ 스톱부시연합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라이벌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호주에 가장 먼저 입국했다. 9월 3일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제일 먼저 도착했고, 바로 그 다음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호주에 도착한 것.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환영보다는 반대시위의 대상이 됐다. 부시는 이라크전쟁 책임, 후진타오는 파룬궁 탄압이 그 이유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배출량 1·2위 국가여서 APEC 회의 기간 내내 환경단체들의 최대공격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프 엔젤 토탈환경센터(TEC) 소장은 "9월 6일에 도착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까지 포함하면 1·2·3위 국가의 정상이 순서대로 도착하는 셈인데, 그들이 어떤 개선책을 내놓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역시 1인당 탄소배출량 1위인 환경 불량국가인데다, 미국과 함께 교토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대표적인 나라여서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게다가 호주는 탄소가스의 주범인 석탄 수출 세계 1위 국가다.

한편 2007년 APEC 주최국가인 호주 당국은 행사기간 내내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대대적인 경비대책을 수립했다. 5일 오후, 그 현장을 미리 답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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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반대 시위를 벌이는 파룬궁 신자들. ⓒ 윤여문


바리케이드에 휘감긴 시드니, 실망하는 관광객들

APEC이 열리는 시드니 시내엔 가는 곳마다 진입을 통제하는 바리케이드가 쳐졌고 회의장과 숙소 일대에는 2.8m 높이의 철조망 장벽이 5㎞나 세워졌다. 그것도 시드니관광 1번지인 오페라하우스 주변에 흉물스럽게 설치되어 관광객은 물론 시드니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철조망뿐이 아니다. 수시로 전면 통제되는 도로망에 바리케이드가 쳐진 진입금지지역(no go zone)까지 겹쳐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오페라하우스 주변의 상가들은 잠정적인 철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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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진입금지지역.'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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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흉한 APEC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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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APEC 장벽.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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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장벽에 갇힌 시드니. ⓒ 윤여문


시드니는 지금 이른 봄이다. 오페라하우스 옆에 있는 왕립식물원엔 온갖 꽃들이 만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 바로 옆에 부시 대통령이 묵는 인터콘티넨탈호텔이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도 예외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오페라하우스를 정상적으로 관광하지 못한 관광객들의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차라리 시드니 철조망 장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이나 찍어두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오페라하우스 진입로에서 뉴스에이전시를 경영하는 한국인 김상순씨는 "고객의 절대 다수가 관광객인데 절반 이상 줄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1주일 전부터 관광객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런 불만은 정치인한테도 나왔다. 베리 오페럴 NSW주 야당 당수는 "부시 대통령이 당초 계획보다 이틀 먼저 시드니에 도착해서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 장모(서양에서 장모는 한국의 시어머니와 비슷한 의미다)가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 사위집에 미리 오는 것과 같다"면서 "그로 인한 상인들의 손해가 너무 크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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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관광 중인 하워드 총리 부부와 부시 대통령 그리고 콘들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 디 오스트레일리안


'부시'에서 즐긴 부시, 시드니 시민에게 두 번이나 사과

오페럴 당수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4일 밤늦게 도착해서 5일에 방문일정을 시작한 부시 대통령이 하워드 총리와 함께한 공동기자회견 외에는 주로 유람선 관광, 바비큐 파티 등으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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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bush)'로 가서 산악자전거를 즐긴 부시 미국 대통령. ⓒ 데일리텔레그래프

부시는 놀랍게도 오페라하우스 건너편의 숲으로 가서 산악자전거까지 즐겼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쇼였는데 이를 두고 채널7의 리포터는 "부시가 부시(bush)로 가서 자전거를 탔다"고 특종보도 했다.

문제는 부시가 움직일 때마다 1000여명 가까운 경호요원들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호주의 한 경호전문가는 "부시 대통령이 지구에서 가장 파워풀한 사람이고 테러리스트의 첫 번째 공격목표이기 때문"이라면서 "그가 이틀 먼저 시드니에 도착해서 발생하는 경호예산은 상상 이상"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부시-하워드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채널7의 정치부 기자가 "당신 때문에 겪는 시드니 시민들의 불편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어서 이 기자는 "그래서 당신을 흔쾌히 환영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정색을 하면서 "시드니 시민들에게 사과한다"면서 "그러나 APEC이 워낙 중요한 회합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답변했다. 부시는 호주로 출발하기 전에 스카이TV와 한 인터뷰에서 시드니 시민들에게 이미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APEC 임시공휴일로 3일 연휴

그러나 "부시 미국 대통령 때문에 그야말로 '시드니 스톱(Sydney stop)'이다, 그가 지구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부시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한 택시기사의 볼멘소리를 들어보면 부시 대통령의 사과는 한낱 수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부시를 반대하는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발생하는 교통체증으로 인한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는 7일과 8일로 계획된 대규모 'APEC 반대 시위'와 '반 부시 시위'는 시드니 시내를 마비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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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언제 오려나.'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APEC에 참여하는 주요 국가 정상들의 경호를 위해 설치한 바리케이드와 철조망 장벽 때문에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 윤여문


더구나 '스톱 부시 연합(Stop Bush Coalition)' 등의 시위대 조직은 미리 배포된 지침서를 통해서 폭력시위를 조장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조직의 리더들은 조직원들에게 얼굴 노출을 막을 수 있는 방독면 착용과 10인 단위의 단체행동으로 경찰에 맞서라는 지침을 제시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한 호주당국은 9월 7일(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했다. 결국 7일부터 9일까지 3일 연휴가 됐는데, 많은 직장인들은 아예 휴가를 내어 '시드니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추산이 힘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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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시드니.' 텅 빈 시드니 중앙역. ⓒ 윤여문


한편 시위대의 폭력시위 계획에 대해 하워드 총리는 "그들은 지구온난화 방지와 지구 빈곤퇴치 등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서 만나는 APEC을 반대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도 하워드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서 "민주국가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시위는 얼마든지 환영하지만 폭력시위는 안 된다"면서 "시드니 APEC에서 지구 전체를 위한 많은 해결책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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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반대 시위에 나선 고등학생들. ⓒ 스톱부시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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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반대 시위에 나선 비키니 차림 여성. ⓒ 스톱부시연합


인기 없는 부시-하워드 투맨쇼

'난 바보랑 같이 있어요.'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워드 호주 총리를 풍자한 <시드니모닝헤럴드> 만평. ⓒ 시드니모닝헤럴드

그러나 두 사람의 호소는 별다른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호주 국영 ABC-TV의 짐 미들턴 기자가 "두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는 두 정상의 얘기가 그냥 의례적인 말로 들렸다"고 보도할 정도이니 말이다.  

9월 5일 호주TV의 저녁종합뉴스는 부시 대통령과 하워드 총리가 공동주연을 맡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특히 시드니 상공에 떠있는 헬기와 바다에 떠있는 유람선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러나 배 위에서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의 장면을 TV로 봤다는 한 시민이 라디오 토크백쇼에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시와 하워드의 '투맨쇼'를 바라보는 시드니 시민들의 표정이 냉랭한 것은 교통 혼잡의 불편함 때문만이 아니다. 두 사람이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함께 이라크전쟁을 주도했고, 지구의 환경문제를 오랫동안 외면했기 때문이다. 우선 그것부터 사과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윤여문 기자는 '시드니 APEC 리포트' 다음 편에 '시드니에는 성조기가 없다'라는 제목으로 호주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부시 대통령을 보도할 예정이다. 이어서 '지구GDP 56%의 APEC 정상회담에 왜 빈곤문제 토의는 없나?', '시드니APEC의 메인게임... 미국과 중국의 세력경쟁' 등을 독자에게 전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윤여문 기자는 '시드니 APEC 리포트' 다음 편에 '시드니에는 성조기가 없다'라는 제목으로 호주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부시 대통령을 보도할 예정이다. 이어서 '지구GDP 56%의 APEC 정상회담에 왜 빈곤문제 토의는 없나?', '시드니APEC의 메인게임... 미국과 중국의 세력경쟁' 등을 독자에게 전할 예정이다.
#APEC #부시 #시드니 #탄소배출량 #이라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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