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부시 대화가 어색했던 까닭은...

등록 2007.09.08 15:49수정 2007.09.0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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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호주를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7일 오후 시드니 시내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남북정상회담과 북핵, 6자회담 문제등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 사이의 어색해보이는 대화 장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어찌 보면 두 대통령이 언쟁을 벌이는 것 같기도 했던 이 장면은 한국 TV 방송사들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필자도 이 장면을 보고 좀 아슬아슬하게 느꼈다. 두 정상의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외국 언론들은 거의 예외 없이 Spar at Summit(정상의 결투), Bush-Roh Row(부시와 노무현의 언쟁), Hit Snag(암초에 걸렸다) 등의 제목을 붙여 기사를 보도했다.  

이렇게 문제가 되자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나중에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 시작 발언에서 북한이 (핵불능화를) 이행하면 미국은 평화협정에 조인하겠다고 이미 분명히 밝혔다, 통역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느 쪽 통역에 문제 있었다고 생각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과 부시가 도대체 어떤 말을 주고받았기에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을까? 필자가 한국 TV 화면과 미국 < CNN > TV 화면을 보고 다음과 같이 녹취록을 만들어 보았다.
  
노무현: "각하께서 조금 전에 말씀하실 때 한반도 평화체제 내지 종전선언에 대해서 말씀을 빠뜨리신 것 같습니다."
미국 측 통역: "I think I did not hear President Bush mention a declaration to end the Korean War just now. Did you say so, Mr. Bush?" (각하께서 방금 말씀하실 때 한국전 종전 선언에 관해 언급하신 것은 제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부시: " I said it's up to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Il. Kim Jong Il has got to get rid of his (nuclear) weapons and weapons program in a verifiable fashion for the United States to agree to sign a peace treaty. (북한 지도자 김정일한테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와 핵개발 계획들을 폐기해야만 미국은 평화조약에 서명할수 있습니다.)

부시의 이 말을 한국 측 통역이 어떻게 번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무현: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미국 측 통역은 노 대통령 말을 직역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의역을 한다.

미국 측 통역: (앞의 몇 마디는 잘 들리지 않음) "You could be a little bit clearer in your message, Mr. President." (각하의 메시지를 좀 더 분명히 말씀해 주실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역 때문에 웃음거리 된 카터와 호주 전 외상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좀 퉁명스럽게 말하고, 한국 측 통역이 끝나자마자 어색한 분위기를 끝내기 위해서인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Thank you, sir!"라고 말하면서 노 대통령에게 작별의 악수를 청한다.

부시:  "I can't make it any more clear, Mr. President. We look forward to the day when we can end the Korean War. That will happen when Kim verifiably gets rid of his weapons programs and his weapons." (더 이상 분명하게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그의 (핵)무기를 없애야만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통역(번역)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즉석에서 하는 통역은 더 어렵다.

1977년 지미 카터(Jimmy Carter) 미국 대통령이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를 방문해
연설할 때도 통역의 실수로 카터 대통령이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카터는 자기가 폴란드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말했으나, 통역은 카터가 폴란드 여인들에게 욕정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오역을 했기 때문이다.

호주의  전 외상 리처드 울콧(Richard Woolcott)은  자신의 외교관 생활을 돌아보는 회고록 < Undiplomatic Activities >(비외교적 행동들)에서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인도네시아 팔렘방 주재 영사로 전보되어 가서 그곳 주민들에게 첫 인사를 할 때 영어로
"Ladies and gentlemen, on behalf of my wife and myself, I want to say how delighted we are to be in Palembang"(신사 숙녀 여러분, 제 아내와 저를 대표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팔렘방에 오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어에 능통하지 못했던 통역이 이 말을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팔렘방에 와서 내 아내의 배 위에 올라 타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오역을 했다고 한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도 있다. 번역을 잘못하면 큰일 난다.

덧붙이는 글 | 조화유 기자는 재미작가이며 영어교재 저술가입니다.


덧붙이는 글 조화유 기자는 재미작가이며 영어교재 저술가입니다.
#통역 #부시 #노무현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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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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