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와 대학서열화 폐지 생각할 때

등록 2007.09.13 17:16수정 2007.09.1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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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빈국의 효과적인 발전전략이 인적자원의 개발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한 한국경제는 오늘날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고 있다. 과거의 발전정도나 나라의 규모를 고려할 때, 한국의 성장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교육이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교육은 여전히 성장의 원동력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현 교육제도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은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꿈 많은 청소년 시절을 불확실한 장밋빛 미래를 담보로 학교와 학원에서 허비하고 있다. 이른 아침 학교에서 시작되는 주입식 교육은 늦은 밤 학원에서 끝난다. 초인적인 인내심을 요구하는 끔찍한 인권유린이며, 박제가 되어버린 머리는 평생 후유증으로 남는다.


창의적 사고를 억압하는 교육의 피해는 개인보다 사회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연전에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국교육의 문제점이 획일성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으며, 외국기업의 인사담당자들 역시 국내 일류대학 출신들의 천편일률적인 사고를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교육계 인사가 아니라 시장에서 날마다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기업인들의 말이라 더욱 신경이 쓰인다.


교육문제의 근본원인은 대학입시에 있다. 입시가 중심이다 보니 교육의 내용보다 우열 가르기가 중요해지고, 우열 가르기가 중요하다보니 변별력 확보가 중요해진다. 변별력을 위해서는 창의적 사고를 평가하는 교육보다 획일적이고 계량화된 교육이 불가피해진다. 세계 100위권 밖에서 맴도는 대학은 ‘우수한 학생’에만 관심이 있고, 사교육은 '우수한 학생' 만든답시고 난이도를 지속적으로 높임으로써 공교육을 구축한다.  


입시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대학의 서열화를 폐지하고 대학입학을 자유롭게 하자. 경쟁력 강화를 운운하며 서열화와 입시 폐지라니 궤변처럼 들릴 수 있겠다. 그러나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 교육 제도는 몇 가지 이유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먼저 대입 경쟁이 시의적절하지 못하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는 폭넓은 독서와 사색, 다양한 경험 등을 통해 훗날을 위한 일종의 기초체력을 연마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한국의 청소년은 입시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개인은 명문대학 졸업장을 손에 쥘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둘째, 출신대학은 단순한 학력이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로 기능한다. 세칭 일류대 졸업장은 새로운 집단이나 조직에 진입할 때 정당하지 않은 이득을 보장한다. 생면부지의 일류대 출신들은 동문이라는 이유로 끈끈한 유대를 맺는데, 이는 경쟁력 강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한국의 대학은 입학만 하면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어느 대학을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럭저럭 하다보면 4년 후 대학 졸업은 보장되며, 그래서 전공은 제쳐두고 소수의 인기직업에 필요한 공부에 열중이다. 그로 인해 기술과 콘텐츠를 책임져야할 이공계와 인문계가 외면당하고 있다.


중등교육의 왜곡을 막고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무의미한 대입 경쟁을 없애야 한다. 유럽처럼 대학서열을 없애고, 입학은 쉽게 하되 졸업을 엄격하게 하자. 출신대학이 아니라 대학의 졸업을 인정하자. 유럽의 청소년들은 공부에 치여살지 않지만, 유럽은 여전히 기술 및 문화 강국이다. 대학서열의 폐지가 불가능하면, 미국처럼 명문대를 하나가 아닌 다수로 만들 수도 있다. 학생 간의, 대학 간의 치열한 경쟁만이 국가 발전과 직결된다.

 

실현 가능성을 생각하면, 잠꼬대같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달리 마땅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문제 해결에 따르는 현실적 어려움만을 생각해서는 안될 만큼 사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 갖고 있는 유일한 자원은 사람이다. 

덧붙이는 글 | 윤용선 기자는 한국외국어대 강사입니다.

2007.09.13 17:1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윤용선 기자는 한국외국어대 강사입니다.
#대입 #대학서열화 #중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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