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1636년이 아니라 1637년"

'음력 날짜 양력 전환 오류' 구범진 서울대 교수 주장

등록 2007.09.19 11:31수정 2007.09.1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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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이 1636년에 발생했다고 기술하고 있는 현행 고등학교 <국사>. ⓒ 김종성


청나라가 군신관계를 요구하면서 조선을 침략한 전쟁을 병자호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전쟁은 1636년에 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펴낸 고등학교 <국사>도 그렇게 기술하고 있고, 국내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병자호란은 1636년이 아닌 1637년에 발생한 사건이다. 따라서 병자호란을 1636년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교과서나 도서, 논문, 신문기사, TV 방송, 포털 사이트 백과사전 등은 모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오류는 왜 생긴 것일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서울대 동양사학과 구범진 교수가 지난 2005년 6월 역사교육연구회 발행 <역사교육> 제94집에 기고한 ‘역법문제와 한국사 서술’이라는 논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병자호란은 '병자년 12월'에 시작된 사건이다. 그런데 교과서·논문·도서·신문·방송이나 포털 사이트 등에서는 이 사건의 발생시점을 '1636년 12월'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병자년 12월이나 1636년 12월이나 둘 다 같은 것이 아니냐?"고 질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왜냐하면, 병자년 12월은 음력이고 1636년 12월은 양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병자년 12월이 1636년 12월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을 확인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위 논문에 인용되어 있다. 베이징에 있는 저명한 출판사인 중화서국이 1981년에 발행한 <근세중서사일대조표>(近世中西史日對照表)라는 자료가 바로 그것이다. 대만의 상무인서관이란 곳에서도 1936년에 같은 자료를 출판한 적이 있다.

음력에 해당하는 양력을 알려주는 이 자료는 동양사 연구가 활발한 국내의 몇몇 대학 도서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날짜 위주로 적힌 자료이므로, 중국어나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큰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병자호란이 발발한 '병자년 12월 10일'은 양력 '1637년 1월 5일'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병자호란은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1636년이 아닌 1637년에 발발한 사건인 것이다. 현행 고등학교 <국사>는 1637년에 발생한 사건을 놓고 1636년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잘못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오류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오류는 병자년을 1636년에 일률적으로 대응시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병자년을 서기로 환산하면 1636년 2월 7일부터 1637년 1월 25일까지가 된다. 이와 같이 병자년에는 1636년뿐만 아니라 1637년도 걸리는데, 병자년 하면 무조건 1636년만 대입시키다 보니 이런 오류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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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이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발생했다고 기술하고 있는 모 포털사이트의 백과사전. ⓒ 김종성



이 내용을 보다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금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금년은 정해년이다. 그런데 정해년은 음력이다. 이것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2007년 2월 18일부터 2008년 2월 6일까지가 된다.

그리고 정해년 12월은 2008년 1월 8일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이 정해년 12월에 발생했다고 한다면, 이 사건은 서기로 2007년 12월이 아닌 2008년 1월에 발생한 사건이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해년 12월은 2007년 12월"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된다. 이 사람의 의식 속에서는 '정해년은 2007년이므로, 정해년 12월은 2007년 12월'이라는 모순된 계산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사람은 두 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정해년이 2007년에도 걸리고 2008년에도 걸리는데 정해년 하면 무조건 2007년만 연상한 것이 첫 번째 오류다. '정해년 12월'을 양력으로 바꿀 때에는 '정해년'뿐만 아니라 '12월'도 양력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오류다.

병자호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병자년에 1636년뿐만 아니라 1637년도 걸릴 수 있는데 병자년 하면 으레 1636년만 연상한 것이 첫 번째 오류이고, 병자년 12월을 양력으로 환산할 때에는 병자년뿐만 아니라 12월까지도 양력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오류다.

위 논문에서 제시된 사례 가운데에 한 가지를 더 소개하면 갑신정변을 들 수 있다. 구범진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어떤 고등학교 교과서들에서는 이 사건이 1884년 12월 4일에 발생했다고 하는 반면, 또 다른 고등학교 교과서들에서는 1884년 10월 17일에 발생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갑신정변의 정확한 발생 연월일은 '갑신년 10월 17일'이다. 이것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884년 12월 4일'이 된다. 그러므로 1884년 12월 4일은 맞지만, 1884년 10월 17일은 틀린 표현이 된다. '갑신년 10월 17일'을 양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갑신년'만 1884년으로 바꾸고 뒤의 '10월 17일'은 바꾸지 않은 데에서 발생한 오류다. 

위의 논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갑신정변은 1884년 10월 17일에 발생했다"고 기술된 교과서를 발행한 출판사들이 "우리는 '갑신정변은 음력 1884년 10월 17일에 발생했다'는 뜻으로 쓴 것"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음력' 1884년 10월 17일? 어찌 보면 그럴싸하다. 그러나 음력에 1884년이라는 연도는 있을 수 없다. 1884년이란 것은 서기를 따른 것이다. 갑자년부터 시작해서 60년을 주기로 하는 음력에서 1884년이라는 연도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해당 출판사들이 위와 같은 항변을 한다 해도 그것 역시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위의 논문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오늘날 한국인들은 역사적 사건에 관한 연도 표기와 관련하여 수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심지어 교과서에서까지 그러한 오류가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되고 있다.

이러한 오류는, 한국의 역사기록은 대부분 음력을 기준으로 쓰인 데 반해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은 양력을 기준으로 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역사 속의 연대를 현대 생활에 맞도록 바꾸는 과정에서 이러한 혼란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음력을 양력으로 일일이 환산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가 발생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개인도 아닌 사회가 역사인식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시각 표시에서부터 정확성을 기하지 못한다면,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유사한 오류의 발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사회 시스템이 시각과 시간을 기초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정확한 시각표시는 올바른 사회 시스템을 형성하는 하나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 논문에서 지적된 연도 표기상의 오류를 시정할 책임은 일차적으로는 국사편찬위원회와 역사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역사 연대를 올바르게 표기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역사를 재조명하는 일 못지않게 기본적이고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병자호란 #갑신정변 #연대표기 #구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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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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