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어하면 남도 싫어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지 못했다"(40)

등록 2007.09.27 14:18수정 2007.09.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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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이다. 인간관계가 얽히고설키다 보면 자연스레 말도 많고 탈도 많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런 속에 자신도 발전하고, 점차 나이도 먹어가게 돼 있다.


함께 어울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하지 못한 일들도 생겨난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질서를 규정한 도덕과 규칙, 법규 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서로 지켜야 할 규범을 나름대로 정한 사회적 약속인 셈이다. 서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불편하게 되고, 나아가 그 사회가 깨지기 때문이다.

남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지만, 정작 곰곰 생각하면 내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더 많다. 다시 말해 내 뜻과 욕심에 젖어 남이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일들이 더 많은 것이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남이 그렇게 해주길 기대하는 것처럼 우습고도, 어리석은 일은 없다. 남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싫은 일이면 당연히 남도 그것을 싫어한다. 사람의 마음은 다 같다. 자기는 하기 싫은데 남은 그 일을 하기 좋아할 리가 없다. 이 같은 마음을 이해하고, 이 같은 마음에 따라 행동한다면 인간관계의 모든 것은 저절로 해결된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신약성서 누가복음 6장 31절의 구절이다. 내가 받기 원하는 대로 남에게 베풀면 아무런 문제될 게 없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것은 남도 원한다는 것이다. 남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행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예(禮)이다. 예는 곧 예의(禮儀)이고 예절(禮節)이다.

“예의법은 법이라 불려지는 것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것이지만, 가장 잘 실시되고 있다.” F.라 로슈코프가 ‘도덕적 반성’이란 책에서 이같이 말했다. 예의야말로 인간 삶의 가장 근본이 되는 법이라는 지적이다.

J.라 브뤼에르도 ‘사람은 가지가지’란 글에서 마찬가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람들은 하찮은 일로 여겨 예법을 천대하지만, 선인과 악인의 구별이 예의를 알고 모르고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흔하다.”

예의는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 삶의 가장 근본이 되는 행동양식이다. 그 요체는 남에 대한 배려이고, 내 이익보다는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주는 자비심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예의이다.” J.W.괴테는 ‘잠언(箴言)과 성찰(省察)’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또 “정성이 깃든 예의는 정다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예에 관한 내용의 다양함과 깊이를 꼽으라면 역시 논어(論語)일 것이다. 사서오경(四書五經)중의 하나인 논어는 공자公子가 남긴 기록으로 7권 20편으로 엮어져 있다.

내용은 사람다운 삶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채워져 있다. 공자는 예법을 확립하여 개인의 육체적 삶과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최우선 했다, 이를 통해 인(仁)을 터득하게 되고 여기서 정신적 삶과 사회의 평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가치 면에서의 정신적인 삶과 현실적인 면에서의 육체적 삶의 조화야말로 그가 추구하던 중용(中庸)의 도(道)였다.

다시 말해 예절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의 육체적 삶이 확보되고. 인을 실천함으로써 정신적 삶이 확립되면 이 두 삶의 내용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중용적 삶이라는 것이다.

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다운 삶이란 곧 예의를 지키는 가운데 생활하고, 남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예의이고 예법이다. 인간의 사회적 삶을 위한 기본요건이다. 예를 익히고 실천하는 것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면서 인을 터득하는 수단이 된다.

우리 역시 옛날부터 예를 중시하는 민족이었고, 그러한 교육을 받아왔다. 서당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과목이 바로 사자소학(四字小學)이었다.

여러 가지 경전(經典) 내용을 묶어 생활 한자로 편집한 한자학습 입문서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자 기초학습서였다. 이는 도덕교육과 인성교육의 보고(寶庫)였다.

누군가는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바로 이 사자소학에서 출발한다”고까지 극찬했다. 이 사자소학에서 예(禮)에 관해 엄격한 잣대를 갖다대고 있다.

비례물시(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비례물청(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비례물언(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비례물동(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라)

예의에 어긋나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보다 강한 기준이 어디 있을까. 예를 그만큼 중시하고 숭상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어른들은 예의가 무너졌다며 한숨짓고 있다. 땅이 꺼져라 하며 “이 놈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며 근심스런 표정을 지우질 않는다.

그렇게 지적하는 예의범절의 기준이 바로 이 사자소학이 제시하는 삶의 방법에서 어긋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옛 사람과 오늘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다른 만큼 모든 분야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예의에 관한 한 그리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의와 예절은 그 어느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인간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필요한 생활과 행동양식인 것이다.

행필정직(行必正直, 행동은 반드시 바르고 곧게 하고) 언즉신실(言則信實, 말은 미덥고 성실하게 하며) 용모단정(容貌端正, 용모는 단정하게 하고) 의관정제(衣冠整齊, 의관은 바르고 가지런하게 하라)

이런 지적과 내용이 시대와 장소를 달리한다고 바뀔 리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것은 동양의 고리타분한 지난날의 사상일 뿐”이라고 타박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의식은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참다운 예의는 어디나 마찬가지다.” O.골드스미스의 말이다.

예의에 관한 격언과 속담이 중국이 가장 많을 것 같지만 실은 영국과 유태인의 말 중에 더 많이 들어있음도 눈여겨 볼만하다.

'예의는 사람을 만든다.' '친한 친구일수록 예의를 지킨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 '예의를 지키는 데는 돈이 안 든다.' (이상 영국)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죽고 말듯이, 사람도 예절이 없으면 죽는다.’ ‘좋은 예절이란 무엇일까? 남의 나쁜 예절을 용서하는 일이다.’ ‘예절를 터득하고 있는 자는, 예절을 모르는 자를 가리려 하지 않는다.’(이상 유태인)

물론 예의는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너무 형식적이거나, 분수를 모르는 대접도 예의에 어긋난다. 과공비례(過恭非禮), 즉 너무 지나치면 예가 아니라고 했다.

예의와 예절은 형식보다도 그 정신이 중요하다. 형식만 지키고 본질을 모르면 그것은 의미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이 싫어하는 일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손가락질은 뒤에서 하게 마련이다.

덧붙이는 글 | 아들과 딸, 그리고 옛 직장의 후배들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덧붙이는 글 아들과 딸, 그리고 옛 직장의 후배들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예의 #예절 #인 #질서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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