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피 빨아먹는 흡혈귀들

등록 2007.10.05 14:56수정 2007.10.0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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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남양주 외국인노동자인권센터 실무자의 전화를 받았다. 방글라데시인 쌀람(30)씨가 자진출국을 앞두고 있는데 여권이 여수출입국에 있어 찾으러 갈 예정이니, 목요일에 도착하면 출입국까지 동행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약속대로 목요일 오늘, 쌀람을 만나 출입국에 가서 별 어려움 없이 여권을 찾았다. 그런데 쌀람은 수협에 가서 찾아야 할 돈이 있다고 했다. 아무런 통장이나 카드도 없이 말이다.

 

좀 의아했으나 '사정이 있나보다'는 생각에 같이 갔다. 수협 직원은 여권번호를 가지고 조회를 해보더니 쌀람 앞으로 되어 있는 통장은 이미 2004년에 해지되었다고 했다. 본인이 아닌 회사에서 해지를 한 것 같으니 본래 통장을 개설한 수협을 찾아가보란다. 별 수 없이 통장을 개설한 어항단지 부근의 수협까지 찾아갔다.

 

쌀람에 따르면, 2003년도에 바로 근처 모 멸치공장에서 약 7개월 간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다가 이탈하여 남양주로 갔단다. 멸치공장에서 일할 적에는 급여를 60만원 받았고, 그 중에서 15만원은 적립금 형태로 통장에 적립하게 되어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그 때 적립해둔 돈 90만원을 찾고자 하는 거였다.

 

수협 직원은 본인도 모르게 통장이 해지된 사유를 캐묻자 당황한 눈빛이 역력했다. 답변 대신 부지런히 해지 관련 서류를 찾느라 한참을 지체했다. 그러다가 두어 군데 전화를 하는가 싶더니, 마지막에는 쌀람씨가 일했던 회사 직원과도 소곤소곤 통화하였다. 그것도 서로 너무나 잘 아는 사이처럼 말이다. 뭔가 석연치 않게 보였다.

 

직원은 다짜고짜 "일했던 회사에서 돈을 찾아가고 통장을 해약했으니 그리로 가서 알아보라"고 한다. 기껏 이 말을 들으려고 그리 많은 시간을 지체하게 했냐는 생각에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지만 참았다. 회사가 순순히 돈을 내주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부딪쳐 보자는 결심으로 회사 사무실에 들어섰다.

 

회사측의 태도는 예상대로였다. 도망쳐 회사에 피해를 끼친 주제에 이제야 뭐 하러 나타났느냐는 식이었다. 사주 부인은 "무슨 상관 있다고 나서서 돈 달라느냐"고 내게 큰소리치며 야단이다.

 

그러더니 "송출회사를 통해 주겠다"고 나왔다. 쌀람씨가 "그 회사 망했다"고 해도 "송출회사가 어딘지 알아본다"고 한참이나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통장을 보여주면서, 몇 차례 본인이 돈을 찾아갔고 자신들이 줄 돈은 30여 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며 흰소리를 해댄다.

 

연수생들 적립 통장 자체를 회사에서 관리했으면서도 마치 연수생 본인이 찾아 쓴 것처럼 둘러대는 회사 측의 뻔뻔함에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장장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쌀람씨의 적립금을 가까스로 받아냈지만, 어디 이게 쌀람 씨만의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쌀람과 같이 왔던 동료들도 얼마 견디지 못하고 모두 도망쳐 미등록노동자가 되었다고 했다. 아까 회사 직원이 꺼내온 통장뭉치를 보더라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적립금'이라는 명목으로 쌀람처럼 착취를 당해왔을 것이 틀림없었다.

 

말이 좋아 '적립금'이지 과거 노예들의 발에 채우던 차꼬나 다름없는 장치였다. 새벽부터 16시간이 넘도록 일하고 모은 피땀 어린 돈이 아까워서라도 감히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어 둔 것이다.

 

쌀람씨 문제로 잠시 지체되는 동안,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 세 명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어를 잘 못해서 대화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임금 75만 원에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한다고 말했다. 잠깐 겨우 몇 마디 이야기 나누는 사이 한국인 직원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잡담을 그리 하느냐며 빨리 일하라는 재촉이었다. 

 

사주 부인은 당연히 줘야할 적립금조차 주지 않으려고 온갖 수작을 부리면서 되레 큰소리를 쳐댔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당했을지 아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쌀람이 혼자서 왔더라면 돈을 주기는커녕 불법체류자라고 당장 신고하겠다며 위협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주는 다름 아닌 해당 수협의 현직 조합장이었다. 본인 몰래 적립금을 마음대로 관리하면서 찾아다 쓰고 통장 해지까지 했으면서도 배짱을 부렸던 이유를 알만했다. 곰의 웅담을 빼내려면 평상시 배를 뚫고 간에 호스를 매달아 둔다고 들었다. 정말이지 이주노동자의 앙상한 몸에 빨대를 꽂아 고혈을 뽑아먹는 흡혈귀 그림이 떠오르는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이주노동자방송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0.05 14:5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이주노동자방송국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산업연수생 #수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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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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