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화면을 볼 수 있을까?

[DVD평] <피터 래빗과 벤자민 바니 이야기>

등록 2007.10.12 15:21수정 2007.10.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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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즐겨본 어린이 만화 영화가 생각난다. '짱가'였다. 노랫말 중에 기억나는 것은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짱가'였다. 정말 짱가는 우리들의 짱가였고, 나의 짱가였다. 악당을 물리치는 짱가를 보면서 얼마나 환호했는지 모른다. 악당에게 당하기만 하다가 노래만 나오면 이겼다. 또 '은하철도 999' '아톰'도 생각난다. 다 우리나라 만화영화인줄 알았는데 일본 만화영화임을 알고 약간 실망하기는 했지만 인터넷과 비디오, DVD가 없던 그때는 우리들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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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래빗과 벤자민 바니 이야기> 다이앤 잭슨/니암 쿠색 | 태원엔터테인먼트 ⓒ 태원엔터테이먼트

<피터 래빗과 벤자민 바니 이야기> 다이앤 잭슨/니암 쿠색 | 태원엔터테인먼트 ⓒ 태원엔터테이먼트

 

요즘 아이들은 어떤 만화영화를 좋아할까? 너무 많아 무엇을 봐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폭력성을 넘어 선정적인 장면까지 담은 만화영화는 어른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무조건 텔레비전과 DVD를 보지 못하게 할 수 없다. 좋은 DVD를 선정하는 안목이 어른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전쟁과 자극적인 화면이 요즘 아이들이 접하는 만화와 영화다. 7세 미만 보라고 한 만화영화와 영화도 온통 싸움 뿐이다. 어린이들이 보는 영화가 죽임이 난무하는 영화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그런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점점 빠져들고, 의식은 고착화된다. 고민했다, 어느 날 한 DVD를 만났다. <피터 래빗과 벤자민 바니 이야기>다.

 

말썽꾸러기 피터 래빗이 맥그리거 씨네 정원에 들어갔다가 혼이 나는 과정을 그런 애니메이션이다. 1893년 비아트릭스가 몸이 아픈 노엘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림 편지로 쓴 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때 만든 캐릭터가 '피터 래빗'이다.

 

인기 있고 사람에게 호응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피터 래빗과 벤자민 바니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많은 돈이 들지 않고, 선정성과 폭력성이 개입되지 않더라도 인기가 있고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비아트리식은 1943년 육신 장막을 거두면서 재산을 국고로 기증한다. 그가 마지막 육신 장막을 땅에 묻으면서 행한 거룩한 삶이 오늘까지 아이들이 DVD를 통하여 아름과 선한 화면을 만나볼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만 다른 이를 죽이거나 싸우지 않는다. 함께 살아갈 세상이다. 자기 것을 챙기지만 남도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그렇게 삭막하거나 어둡지 않다. 그들의 눈은 밝고, 따뜻하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그림은 바로 이것이다. 우연하게 들어간 맥그리거 씨 정원. 비아트릭스는 어쩌면 우리 삶이 우연이며, 우연이 만든 삶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은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며, 서로 사랑하는 일임을 알려주고자 했을 것이다.

 

맥그리거씨는 친근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피터 아빠를 파이에 넣은 사람이다. 착한 플롭시, 맙시, 코튼테일은 산딸기를 따러간다. 이런 장면에서는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깨닫게 된다. 맥그러거씨를 두려워하는 모든 이들. 맥그리거씨는 현대 자본과 권력자들이 아닐까?

 

피터와 아빠, 플롭시, 맙시, 코튼테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이 아닐까? 아이들 DVD를 너무 계급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지만,  피터와 엄마, 아빠 눈에 비친 맥그리거씨는 분명 넘어 설 수 없는 강한 자다. 맥그리거씨는 자신 정원에 들어온 피터를 잡기 위하여 혈안이지만 참새들은 피터가 무사히 도망치기를 소원한다.

 

약자, 소외된 자들이 함께 강한 자를 이기는 장면이 아이들 눈에 비치게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탐탁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살아갈 공간과 시간은 맥그리거씨와 함께 해야 한다. 그들이 만날 공간과 시간이 이럴진대, 그들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피터가 만났던 삶의 공간들은 아이들이 만날 수 밖에 없다.

 

<피터 래빗과 벤자민 바니 이야기>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림을 통하여 아이들이 만날 삶의 공간과 시간들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한다. 이기는 삶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할 삶임을 깨닫게 된다면 <피터 래빗과 벤자민 바니 이야기>를 남긴 비아트릭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DVD]피터 래빗과 벤자민 바니 이야기 Vol.1 다이앤 잭슨/니암 쿠색 | 태원엔터테인먼트 | 2004년 04월
 

2007.10.12 15:21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DVD]피터 래빗과 벤자민 바니 이야기 Vol.1 다이앤 잭슨/니암 쿠색 | 태원엔터테인먼트 | 2004년 04월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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