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별5개 호텔에 볼 일 보러 가볼까"

[세계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⑬] 열한 살 꼬마 여행자가 본 유럽

등록 2007.10.15 19:50수정 2007.10.1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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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 굴리기 프랑스 국도변에서(앞에서부터 아내, 조카 대한, 누이) ⓒ 양학용


아내와 난 독일에서 중고차 한 대를 구입했다. 내리고 싶은 곳에 내리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기 위해서였다. 물론 경비 절감은 기본. 그렇게 '애마'를 끌고 유럽을 돌아다닌 지 2개월째 되던 어느 날, 두 명의 동행이 생겼다. 내 누이와 열한살짜리 조카 대한이 여름방학 한 달 동안 '애마' 뒷좌석을 예약한 것이다. 

"삼촌! 머리가 왜 그래? 폭탄 맞았어?"


스위스 취리히공항에서 만난 대한의 첫 마디다. 짜식, 놀랍기로 하면 본인은 더 하구만. 어찌나 살이 쪘는지 몰라본대도 할 말이 없겠는걸. 그래, 요 녀석 어디 고생 좀 해봐라. 너희 아빠가 이 삼촌에게 특명을 주었거든. 살 빼서 보내라고 말이야!

첫날, 네 명으로 늘어난 우리 '팀'은 취리히의 예쁜 골목길을 걸었다. 돌길을 따라 늘어선 상점에는 스위스 시계와 초콜릿과 등산용 칼이 상큼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골목 끝에는 새하얀 교회가 보였다. 막 여행을 시작하는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탄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부터 대한은 투덜대기 시작했다.

"삼촌! 다리 아파! 배도 고프고!"
"대한, 여행은 걸어야 제 맛이거든! 대신 차비로 맛있는 거 사먹자. 그럼 됐지?"

또 대한은 틈만 나면 걱정이었다.

"삼촌! 오늘 잠은 어디서 자?"


아무리 주로 캠핑장에다 짐을 풀었다지만 길거리에서 잠들게 한 적은 없었는데도 녀석은 이상하게 꼭 잠자리를 걱정했다. 그런데, 하루는 정말 그의 걱정대로 되어버렸다.

알프스의 인터라켄에 도착했을 때다. 희끄무레한 어둠이 내리고 비까지 간간이 뿌리고 있어 캠핑장을 찾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때마침 유럽인들이 휴가철이어서 예약 없이 찾아온 우리에게 적당한 숙소가 남아 있을 리도 없었다. 

녀석 어디 고생 좀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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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트래킹 ...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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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모와 조카 사이 오스트리아 시골길에서 ⓒ 양학용


별 수 없이 한적한 도로변에 차를 주차하고 새우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밤새 굽은 허리를 펴고 있자니 언제 일어났는지 아내가 대한에게 다리 건너편에 보이는 최고급호텔을 가리키며 배낭족의 '일급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대한, 지금부터 볼 일(!)을 해결하는 방법을 일러주지! 일단 맥도널드와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최고야. 없으면, 백화점을 찾아야지! 보통 높은 층에 화장실이 있어. 이것도 실패하면, 별 다섯 개짜리 호텔로 직행한다! 이 때 별2~3개의 어중간한 호텔은 곤란해. 들어가면 '어서 오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방이 필요하신가요?'하면서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야. 별 다섯 개짜리는 90도로 인사를 할 뿐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거든!"

그날 우리 가족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별 다섯 개 호텔로 아침 볼일을 보러 갔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 쾌변을 도와주었고 세면대에는 새 비누와 수건이 차곡차곡 준비되어 있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양치까지 마무리하고 나오자 대한은 완전히 신이 났다.

"삼촌! 고급호텔은 우리 친구야! 그치?"

우리 애마는 서유럽을 종횡무진 달렸다. 알프스 트래킹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넘어가 베로나 피자를 먹으며 로마원형극장에서 오페라를 보았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선 수영을 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 초콜릿에 취했다가, 독일 바덴바덴에서는 온천을 했으며,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방을 지나면서 와인을 마셨다.

그 사이 시간이 흘렀고 대한에게도 어느새 여행자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걷기를 즐겨했고 사진 찍기에도 열성을 보였다. 온 종일 걷고 난 후에 마시는 한 잔의 음료수를 고마워할 줄도 알았다. 특히 그는 캠핑을 좋아했는데 8월의 잔디 위에서 아내와 누이가 식사를 준비하면 그는 나와 함께 신이 나서 텐트를 치곤 했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모험 가득한 놀이'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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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과 씨름하는 날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지친 식구들(루브르 박물관) ⓒ 양학용


열 한살 아이의 눈에 비친 유럽

유럽의 여름이 깊어가면서 대한의 방학도 끝나가고 있었다. 따라서 여행도 종반을 향해가던 어느 날, 우리들은 프랑스 노르망디 바닷가의 캠핑장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대한과 함께 샤워를 하는데 불현듯 녀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맛있는 것도 못 사주고, 잠자리도 불편하고, 걷는 일을 밥 먹듯이 하면서, 고생만 시키는 건 아닌지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이 아이는 여행에서 뭘 느끼고 있는 걸까?'

혹, 고생한 기억만 남는 건 아닐까. 비누거품을 칠해주며 대한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대한아, 여행 재미있어? 힘들지 않아?"
"응! 삼촌! 난 여행 체질 인가봐!"

풋, 여행한지 3주가 넘었는데도 조금도 힘들어하는 구석이 없다.

"그래? 그런데… 지금까지 여행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것 있니?"
"응!! 로마노 아저씨!"

로마노는 아내와 내가 중국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인데, 델레몽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했던 것이다. 익살스런 성격의 로마노는 대한과 금방 친해졌다. 그는 밤새 일하고 구수한 빵 냄새를 가득 안고 새벽녘에 돌아왔는데, 아침 식탁에는 그가 구워낸 따스한 빵이 놓여 있었다. 내게도 그는 그의 빵처럼 구수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난 슬며시 유도 질문에 들어간다.

"그럼, 로마노가 사는 거 보며 뭐 느끼는 것 없었어?"
"음… 음… 그러니까, 그 아저씨 베이커잖아. 그런데 휴가가 한 달이라 여행도 마음대로 하고 빵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아. 음… 그래,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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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런 친구 로마노 스위스 델레몽의 그의 집에서 ⓒ 양학용


나는 반색을 하면서 계속해서 물어본다.

"그렇지! 그리고 또… 그래, 파리에서는 뭐 느낀 것 없어?"
"유럽에는 차가 무조건 서잖아. 사람이 차보다 우선이야. 또… 음… 삼촌 나 더 얘기해야 돼?"
"아니, 됐다! 얼른 샤워하고 나가자. 감기 들겠다."


코끝이 찡했다. 이 아이가 무척 대견해 보였다. 그리고 나의 시각으로만 조급해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때 나는 열한 살 꼬마의 눈에 비친 유럽을 배우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이웃 텐트의 벨기에 흑인 아저씨가 바로 앞 바다에서 잡았다며 홍합요리를 조금 가지고 왔다. '뮬'이라고 하는 벨기에 전통요리라고 일러주었다. 오랜만에 해산물을 본 대한은 입이 째지도록 벌어져서 인사한다. "Thank you!"

일주일 후, 우리들은 마지막 나라 네덜란드 국경을 넘었다. 아내가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오늘은 대한이의 마지막 국경 이벤트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한은 처음부터 여권에 여러 나라 출입국도장을 받고 싶어 했다. 방학이 끝나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언제나 국경에는 달랑 'Welcome Netherlands' 'Welcome France' 입간판 하나 서 있을 뿐, 도장을 찍어줄 사람도 출입국 관리사무소도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그가 자고 있는 사이에 국경을 지나쳐 버렸다. 무척 아쉬워하더니 다음부터는 국경을 지날 때마다 이벤트를 하겠다고 나섰다. 국경을 지나는 순간에 아껴둔 초콜릿 우유 마시기, 선루프로 올라서서 소리 지르기 등등을 하더니, 이날은 네덜란드 국경입간판 바로 아래에서 한국의 개다리 춤을 추는 '세기의 이벤트'를 선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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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국경에서 개다리 춤을 추기 위해 뜸을 들이는 대한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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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의 바람보다 빨리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대한(네덜란드 헤이그 가는 길) ⓒ 양학용


열한 살짜리 꼬마 여행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적어도 이번 여행이 이 아이의 가슴을 더 넓게 열어놓으리란 믿음이 생겨났다. 사실 대한민국은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는 섬과 같은 나라가 아니던가. 그 곳에서 10년을 살아왔던 한 아이가 전라도에서 경상도 가듯 국경 없는 세상을 맘껏 돌아다닌 것이다.

며칠 후 누이와 대한은 암스테르담 하늘 위로 날아갔다. 33일 만이었다. 아내와 나는 이국땅에서 고국을 향해 이륙하는 비행기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런대도 다른 한 쪽 가슴에서 꼼틀꼼틀 일어나는 이 뿌듯함은 뭘까.

(여행에서 돌아온 대한이가 몸도 마음도 많이 커졌다는 주변의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한동안 여행 후유증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 다음해 겨울방학, 그는 다시 배낭을 메고 당시 우리 부부가 여행하고 있던 아프리카로 날아왔다. 이제 올해로 중학생이 된 그는 인도를 여행하고 싶어 한다.)  

덧붙이는 글 | 「프라이데이 콤마」9월호에 이 기사의 일부분이 실려 있습니다.

양학용 & 김향미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덧붙이는 글 「프라이데이 콤마」9월호에 이 기사의 일부분이 실려 있습니다.

양학용 & 김향미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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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유럽 #중고차여행 #배낭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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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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