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통령은 좀더 부드러웠으면...
나의 말, 봉쇄된 환경 속 절박한 수단"

[오연호 리포트 : 인물연구 노무현⑤] 대통령 말투의 뿌리

등록 2007.10.15 18:19수정 2009.05.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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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관저에서 식사하며 인터뷰중인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지난 9월 2일 첫 번째 인터뷰를 한 날, 청와대 관저에서 오전 10시에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심 2시간 정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인물연구'를 위한 것이니까 그 이후에도 짬짬이 몇 차례에 걸쳐 대통령과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비서진에 전해놓은 상태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날 따라 마음이 편해 보였다. 밖에서는 '변양균-정윤재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노 대통령도 별 수 없이 레임덕을 당하는구나' 하는 분석들이 오고갈 때였는데도 말이다. 마음이 편해서인지 이날 인터뷰에서 나는 언뜻언뜻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의 노무현'을 보았다. 활달하고 도전적인, 그러나 과오를 시원하게 인정하는.

일요일 오후가 되면 대통령은 아마도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한주의 국정을 챙기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오후 시간까지 인물연구에 할애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부담이었는데, 대통령이 먼저 말했다.

"점심 먹고, 더 이야기 합시다."

"해명과 오해 풀 길은 전부 봉쇄돼 있다"

점심식사 장소는 청와대 관저 안에 있는 한 널따란 방이었다. 동석한 <오마이뉴스> 취재팀과 청와대 비서진이 함께 했다.

- 오늘따라 편해보이십니다. 오랫동안 말씀하시면서도 피곤해 보이지도 않고.
대통령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프간 인질 문제가 해결이 됐잖아요." 그러고보니 바로 전날 한국인 인질들이 43일만에 풀려났다.


- 아프간 인질 사태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우리들도 같은 국민이어서인지 마치 내 가족이 억류된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는데요, 대통령 입장에서는 더 그럴 것 같습니다.
"그게 진짜 자기 일 아닌 게 없어요. 그런 게 하나도 없어, 대통령에게는. 제일 골치 아픈 게, 비가 너무 와도 내 일이고, 안 와도 내 일이고…. 그래서 일기 예보를 매일 보고 또 보고 그래요, 봐 봤자 별 수 없으면서."

그래서 아마도 '대통령 체질'이 필요할 것이다. 크고 작은 무수한 국정 관련 이슈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기자를 정의하는 여러 표현들이 있지만, 나는 한때 '기자는 스트레스를 맛있게 먹고 사실을 배설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기자는, 물론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지만, 지금 자기가 관심 있어 하는 곳에 집중할 수 있는데 대통령은 계속 국정 전반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궁금했다.

- 이런 일요일 같은 날, 정치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고, 국정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편하게 그냥 만나려면 주로 어떤 분들과 만납니까?
"없어요. 그런 일이 없습니다."

- 주말에도 '그냥 편안한 만남' 기회가 거의 없는 거군요.
"예. 어쩌다가 한 번씩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 오는데 그래도 여기 앉아서 뭐 기분이 나겠어요? 자유롭고 편안한 기분이 나겠습니까?(웃음)"

이해가 갔다. 무릇 동창과의 만남이란, 얼굴이 맞닿을 정도의 탁자를 두고 소주 한 잔 하면서, 노래방에 가서 질펀하게 어깨동무하고 노래도 불러보고 그래야 맛이 나지 않겠는가.

이날 점심도 너무 큰 방에서, 너무 큰 원탁을 놓고, 너무 깍듯한 서비스를 받다보니까, 아니 그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이다 보니까, 포도주를 한잔씩 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자리였다.

- 외로울 때는 어떤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십니까? 조중동은 물론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까지도 대통령을 비판할 때, 그러다 보면 바깥상황을 알려주는 참모들도 풀이 죽어서 보고하고 그럴 텐데, 그땐 특히 외로울텐데.
"(특별히 뭘 하는 게) 전혀 없습니다. 고달프면 그냥 자고, 시간 있으면 산책하고, 나머지는 책이나 보고서를 보고. 뭐가 있다면 혼자서 몇시간씩 한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겁니다. 누워서, 걸으면서 생각하고, 밥 먹으면서 생각하고. 그 생각을 비서를 통해서하든 내가 직접 하든 글로 정리하고…. 그러니까 스트레스 풀고 뭐 하고 할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끼는 거지요. 그러니까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또 풀리고 동시에 그렇게 돌아가는 거지요."

일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를 푼다. 그것은 자기 일을 사랑하는 자의 노동방식이다. 갑자기 어린시절 어머니의 농사 일하는 방식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의 내 눈엔 밭에서 한번 허리를 구부리면 서너시간씩 김을 메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집중력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머니 쉬었다가 하세요" 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일하면서 쉬는 거지" 였었다. "대통령 하기 힘들다"고 한 적이 있는 노 대통령은 '스트레스 해소법'에서 보면 대통령 체질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체질적으로 대통령 할 준비가 덜 돼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대통령 돼 가지고) 단상에 올라가 앉아 있으면 불편해서 아주…."

- 아, 지금도 그러십니까?
"요새는 좀 나아졌는데, 처음에는 특히 아주 불편해가지고…. (단상) 밑에 앉아 있으면 아주 편안하고. 체질적으로 준비 안 된 대통령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말씨하고. 그 말씨하고 체질하고가 준비가 안 돼 가지고 대통령 하기에 아주 애로 사항이 많았습니다."

"운동권 때부터 내가 자극적인 말을 좋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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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9년 12월 창원에서 열린 '마창노련 창립 2주년 기념, 제1회 들불대동제' 기념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 ⓒ 민주노총 경남본부

이날 인터뷰는 이런 식이었다. 굳이 대통령에게 "왜 말씨를 그렇게 써 가지고…"라고 묻지 않아도 스스로 인정하면서 자리를 깔아줬다. 임기말이 되니까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말씨 이야기가 나와서 본격적으로 물어봤다. 그동안 이해가 잘 안됐던 대목을.

- 그런데, 말씨 때문에 언론에 하도 많이 당하셨으니까, 아 이 말을 하면 또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텐데, 왜 자꾸 그게 반복되는 것 같습니까?
"내가 자극적인 말을 좋아하거든요. 냉소적인 얘기라든지, 역설적인 얘기라든지."
궁금증의 하나가 풀렸다. 무심결에 그런 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자극적인 말을 좋아" 한다고 했다. 왜? 그 이유가 궁금했다.

- 언제부터입니까, 고등학교부터?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군대에 있을 때는 음담패설 이런 걸 잘했어요(웃음). 그건 당시에 일종의 삶의 방편이었거든요. 음담패설이라도 (재미있게) 한 자리해야 동료들 사이에 편하니까…. 아마 (자극적인 말을 좋아하게 된 것은) 운동권 때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모르겠네요."

노 대통령은 "군대 갔다와서 변호사 되고 스스럼없이 곱사춤도 추고 다니고 그랬는데" 하면서 운동권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운동권 진입은 1987년 6월항쟁 참여 전후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운동권 되고부터 말투가 그렇게 된 거 같아요. 반어법과 역설법을 쓰고, 감정적으로 팍 폭발적으로 자극적인 것을 쓰고…. (그리고 그런 효과는 민주화 현장에서) 대중의 언어를 써야 그게 전달이 되거든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시대에, 대중과 함께 투쟁을 해야했던 시대에 대중에게 효과적인 전달을 하기 위해 그런 자극적인 말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사 그렇게 개인사적으로 체화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된 이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아니 국민적으로 '노 대통령은 말씨 때문에 다 까먹는다'는 지적이 있었는데도, 왜 그것은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었을까?

"내가 '깽판', '거들먹거리고' 이런 표현을 쓴 것을 TV로 봤는데, 내가 봐도 좀…, 그런데 그런 말을 한 것을 (TV에서 보기 전에는) 기억도 못하고 있었어요."
부지불식간에 그런, 부적절하게 보이는 말투가 섞여 쓰여진다는 거였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말 때문에 인기 얻었는데 왜 다른 때는?

그런데 의문이 다 풀리지 않았다. 인내의 적용 방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 2일 4시간에 걸친 참평포럼 연설에서 '자극적인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같은 연설에서 "남북관계에서 굉장히 인내를 많이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이 그렇다. 그 결과가 이번의 2007남북정상회담 성사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합의내용 성과도 있었지만, 말 때문에 큰 점수를 얻었다. 히트작을 만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하룻밤 더 쉬어가라, 대통령이 그것도 마음대로 결정 못합니까"라고 하자 "큰 것은 내가 결정하지만, 작은 것은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전팀, 경호팀과 상의해야 한다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김 위원장의 제안에 대한 노 대통령의 답 한마디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믿음을 줬다. 평상시에도 저렇게 시스템적으로 국정을 해왔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마도 그게 정상회담 직후의 지지도 50% 초과의 한 원인일 게다.

그런데 왜 남북관계의 일처리에서 보여준 그 신중함과 인내심이 왜 국내정치나 언론관계 등에서는 안되는 것일까? 왜 좀 더 참지 못하고, 좀 더 다양한 것을 고려하지 못하고 화끈한 말을 쏟아내, 본론이 주목받지 못하고 곁가지가 부각되게 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버릇'이 아니라 일종의 '홍보전략'일 수 있다고 의심한 적이 있었다. 아니면 어떤 상황이나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경우이거나. 그래서 이렇게 물어봤다.

- (그동안 대통령이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손해를 본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내가 침묵하고 있으면 도저히 스트레스 받아서 안되겠다, 차라리 화끈하게 이야기하자, 뭐 그런 것이 폭발하는 건가요, 아니면 홍보전략의 일환인가요? 국민들이 주목하게 만들고 싶은 의제에 대해 내가 직접 나서서 하는 게 제일 낫다, 뭐 그런 생각 때문에 그런 건가요?
"물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긴 있지요."

이렇게 말을 꺼낸 대통령은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 말이라는 것이 정치의 수단입니다.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어떻게 정치가 되겠어요. 오늘날 민주주의는 군대와 경찰을 가지고 통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말을 통해서 하는 것인데, 말을 한다는 것은 핵심적 내용도 전달해야 하지만 해명도 해야 되고 오해도 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그런데 (해명과 오해를 풀) 그런 길은 (현재와 같은 언론상황에서는) 전부 봉쇄돼 있어요. 완전히 봉쇄돼 있습니다. 그렇게 봉쇄돼 있으니까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들한테도 내 얘기가 다 전달이 안 되고…. 그래서 절박한 수단이 필요하고, 그게 이제 참평포럼 강연의 계기지요. 그래서 말을 안할 수는 없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같이 공감하고 박수치고 좋아했는데, 나중에 현장에 없던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전혀 다른 것이고…. 그래서 그 점에서는 굉장히 고통을 받죠."

그러니까 악순환이라는 거였다. 언론이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본질을 안다루니까, 해명을 재대로 보도하지 않으니까, 직접 국민을 상대로 나서서 '강렬하고 적극적으로' 말하게 되고, 그것이 또 다른 시비 혹은 말실수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거였다.

노 대통령은 "우리 사회 분위기가 내 말을 (본질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을 어용이라고 말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죠. 그렇죠? 그래서 누구도 내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이렇게 인터뷰가 계속됐다. 식사를 마치니 오후 1시 30분. 노 대통령은 "이 위에 경치가 좋은 데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대통령 전용 전망대니까, 그 쪽으로 가서 더 이야기를 합시다"라고 말했다. 인물연구차 취재하는 입장에서야 당연히 환영해야 하지만 좀 걱정됐다.

- 오늘 너무 많이 말씀을 하시면 피곤하지 않으시겠어요?
한 비서관이 간접적으로 '오늘은 그만' 사인을 이렇게 보냈다. "데크에서는 경치나 잠깐 보고….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만해도 글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랬더니 대통령은 "괜찮습니다, 녹음기는 가져오고"라면서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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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데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조선일보>의 대통령 비판 칼럼, 볼 시간 없어 못 봐"

청와대 관저 근처에 있는 야산에 마련된 데크에 오르자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특히 경북궁에서 서울시청에 이르는 세종로 대로가 선명했다.

- 여기서 보니까 언론사 가운데는 <조선일보>가 가장 잘 보이네요.
"그렇지요. <조선일보>가 제일 잘 보이죠."

- 그런데 <조선일보> 사람들이 쓰는 사설, 칼럼 이런 거 혹시 보십니까? 대통령에 대해 막 심하게 이렇게 하는….
점심식사 때 대통령의 말투 이야기를 하고 온 후여서 그렇게 물어봤다. 대통령은 "말씨에서 준비가 안돼 있었다"고 했는데, 그런 대통령을 비판하는 일부 보수언론의 글들은 또다른 막말을 동원할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봤다.

"안 봅니다. 시간이 없어서도 못봅니다. 아마 (<조선일보>와 나 사이에) 갈등이 없어도 시간이 없어 못볼 겁니다. 주요한 보도 분석과 의미있는 쟁점 보도를 비서관이 요약해주는데 그런 것은 어느 언론 것이나 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준비안된 말씨"에 대해서 언론은 열심히 보도를 하고 문제제기를 했는데, 언론의 대통령에 대한 '준비된 막말'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무시를 해왔다는 말이다. 정말 그랬을까? 그런데 설사 대통령은 무시했다 하더라도, 청와대 비서진은 때론 <청와대브리핑>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그랬으니 대통령도 어찌 신경을 안 썼을 수 있을까?

노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특정 매체를 찾아보는 것은 <연합뉴스> 정도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직접 <연합>에 들어가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뉴스를 보는데…. 나한테 좋은 뉴스가 하도 귀하니까 어떨 때 인터넷신문에 좋은 뉴스가 나오면 우리 비서관이 전문을 뽑아다 주기도 하고. 정신건강에 좋으라고 그런가 봐요. 그런 경우 말고는 비서관이 분석정리한 것으로 하죠."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못했는데, 나더러 어찌하라고요"

언론은 기본적으로 비판적이다. 모든 권력에 대해. 그것이 언론의 속성이다. 그래서 권력을 쥐려는 자는 그것을 전제로 일을 벌여야 한다. 때문에 언론 관련 대응은 치밀함을 요구한다.

- 참평포럼 연설 전문을 읽어보면 '치밀한 전략'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 언론에 대한 대응에서는 좀 더 치밀하지 못했나요? 치밀함이 있었다면 언론이 흠잡을 만한 말은 안하게 되고….
"말과 태도에서 품위가 배어나는 그런 관리를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도 뼈아프게 생각합니다. 내가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고, 깊이 생각도 안했던 것입니다.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링컨이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러면 되는 줄 알았는데 국민들이 바라보기에는 뭔가 대통령에게서 '근사하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게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그런데 말이예요"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론과 그렇게 잘 지내던 김영삼 대통령이 막판에 언론에 융단폭격 당하는 걸 내가 봤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처음부터 언론이 못살게 굴었고요. 솔직히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정치인'하면 그 두 분 아닙니까? 언론을 다루는데도 그 두 분이 달인 아닙니까? 그런데 그 두 분은 결국 막판에 언론에 정치적으로 타살 당했습니다. 그분들도 못 당했는데 나더러 어찌하라고요? 그렇게 비교해야 현실적이지 않습니까?"

달인들도 못했는데 나더러 어찌하라고! 현실적 비교를 하라는 주문에 나는 한참을 답을 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그 분들이 정치적으로 언론에 융단폭격 당한 것은, 방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만큼이라도 방어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야 나갈 때 걸어 나갈 거 아닙니까. 나는 내 발로 걸어 나갈 겁니다."

"부드러움 부족이 내 약점…, 다음 대통령은 좀 부드러웠으면"

언론의 공격과 그에 대한 방어. "내 발로 걸어나가겠다." 대통령은 이 말을 할 때 목소리를 높였다.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만 내려갑시다."

그런데 그렇게 바로 직전까지 강한 말을 하던 대통령은 데크를 내려가기 직전 부드러움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항상 상대방을 코너로 모는 승부사의 자세는,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불신을 살 수 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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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제공


"내가 하도 직선으로만 하니까, 상대방은 계속 나에게 당하는 것만 같고, 또 무슨 해꼬지 하려하나 불신감을 갖게 되고, 그런데 그런 게 좋은 것이 아니죠. 항상 자기를 코너로 몰아버리는 적수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자기들이 공격하면 한번 얻어맞기도 하고, 좀 살려달라고 찾아오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나는 자기들한테 한번도 살려달라는 소리를 안했거든."

의외였다. 승부사 대통령은 자신의 강함을 "내 약점"이라고 말했고, 그 "부족한 점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부드러운 지도자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다음 대통령은 좀 부드러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 점이 부족한 것이 내 약점이라고 항상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정치 풍토나 분위기 같은 것을 봤을 때 좀 부드러운 지도자가 대화를 잘 해서…."

(* '인물연구 노무현' 연재기사는 계속됩니다.)
#노무현 #오연호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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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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