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VIP라 군인이 호송하겠다고?"

[룩소르에서 다마스커스까지 62] 시나이반도 북부 횡단 길

등록 2007.10.19 14:00수정 2007.10.1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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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반도 북부 횡단길의 기묘한 바위산 ⓒ 이승철


“얼빵 친구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

이스라엘의 에일라트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자 이번에는 이집트의 타바 검문소다. 이곳에서는 다시 입국수속을 밟아야 했다. 그런데 그때 일주일 전에 이집트에서 요르단으로 건너갈 때 헤어진 이집트 현지인 가이드 ‘얼빵‘이 이집트 교민 가이드 이 선생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커다란 덩치에 구레나룻이 인상적이며, 건들건들 걷는 모습이 천진스런 이 친구가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나타나자 모두들 반갑다고 손을 흔든다. '얼빵'은 예의 순진한 얼굴에 꾸벅 인사를 하고 곧 여행사 가이드로부터 우리들의 여권을 받아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람 좋은 이집트인 ‘얼빵’을 다시 만나다

잠시 후에 나타난 그에게서 여권을 받아든 일행들은 다시 짐 검사부터 시작하여 서류심사까지 조금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모두들 그런 절차에는 익숙해져서 별 불평 없이 심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지막 코스에서 여권심사를 받을 때였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얼빵을 호출했다. 근처에 있던 얼빵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직원은 손으로 서류를 가리키고 얼빵에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 기록을 잘 못한 모양이었다.

"얼빵이 또 뭘 잘 못 기록한 모양입니다, 저 친구 하는 일은 항상 저렇다니까."


여행사 가이드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얼빵에게 핀잔을 준다. 출입국관리 직원과 얼빵은 서류를 일일이 고쳐가며 우리들을 한 사람씩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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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햇살을 받은 바위산의 명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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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 사이로 뚫린 도로 ⓒ 이승철


그렇게 다시 이집트에 입국한 우리들은 버스를 타고 카이로를 향했다. 그러고 보니 버스도 운전기사도, 얼빵과 마찬가지로 전에 카이로에서 시나이 반도를 함께 달렸던 바로 그 버스였고, 그 사람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이었지만 다시 만나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비록 외국인이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었지만 그래도 정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을 반갑게 다시 만난  때문인지 분위기가 더욱 좋아졌다.

버스는 힘차게 달렸다. 얼마 달리지 않아 앙상한 바위산들이 즐비한 산악지역으로 접어들었다. 우리들이 이집트에서 요르단을 건너갈 때는 시나이반도 남단을 횡단했는데, 이번에는 북단을 횡단하여 곧바로 수에즈지역을 지나 카이로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태양이 약간 기울어진 오후 시간이었다. 도로는 산악지역의 바위산들 사이를 뚫고 열려 있었다. 도로는 왕복 2차선으로 좁았지만 다행이 통행차량이 드물고 아스팔트 포장이 잘되어 있어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고 있는 도로 옆에 어떤 곳은 텐트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었는데, 그 뒷산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어쩌면 이방인들이 등산을 하는 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구나 앙상한 바위산들의 모습이 어떤 곳은 바위를 층층이 쌓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이 있는가 하면, 햇빛을 받은 하얀 바위산과 그늘진 바위산의 음영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것도 신비한 모습이었다.

그런 바위산을 벗어나자 낮은 언덕위로 군 시설 같은 것들이 나타난다. 그곳을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비행장이 나타났다. 이곳은 이스라엘 국경이 멀지 않은 곳이어서 군사용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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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같은 모습의 바위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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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반도 북부 길에서 바라보이는 시설물과 비행장 ⓒ 이승철


그런 지역을 벗어나 조금 더 달리자 이번에는 끝없이 펼쳐진 광야에 곧장 뚫린 도로가 시원하게 다가온다. 보이는 것이라곤 도로를 따라 세워져 있는 고압선과 전선주뿐이었고 광활한 사막은 죽음처럼 정적에 싸여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VIP라며 호송하겠다고 억지 부리는 검문소

그런 길을 한참 더 달리자 저 앞에 검문소가 나타났다. 이곳까지 오는 중에도 몇 개의 검문소를 통과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간단히 그냥 지나칠 줄 알았다. 그런데 검문소에서 나온 군인들이 버스 안에 들어와 여권을 확인하고 돌아간 후에도 버스가 출발하지 않는다.

현지인 가이드인 얼빵과 이집트 교민 가이드가 검문소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20여분이 지나서야 교민 가이드가 나타났다.

“어르신들이 VIP 손님들이라 자기네들이 호송하겠다고 합니다. 사막길을 가는 동안 위험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사양을 해도 막무가내라서 지금 얼빵이 그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럼 우리들이 귀빈들이란 말이야, 그럼 이집트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모두 귀빈이겠네, 웃기는 사람들이잖아, 그것도 우리들이 싫다는데 왜 붙잡아 놓고 보내주지 않는 거지?”

“혹시 저 사람들 딴 생각 나서 그러는 것 아냐?”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렇게 해가 지려고 하는데 빨리 보내주지 않고….”

교민 가이드 이 선생은 상당히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고 있는 길이 절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교민 가이드 이 선생의 말이었다.

그 사이 태양은 더욱 많이 기울어져 지평선 위 두 뼘쯤의 높이에 떠있다. 우리들이 버스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크고 작은 개들이 몇 마리 나타났다. 녀석들은 버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우리들의 눈치를 살핀다. 사납거나 사람을 해칠 위험은 없어보였지만 그래도 일행들은 녀석들의 접근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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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뚫려있는 사막의 광야길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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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지평선너머로 지는 태양 ⓒ 이승철


안절부절 걱정하던 교민 가이드 이 선생이 다시 검문소로 들어갔다. 시간은 자꾸 늦어지고 있는데 보내주지를 않으니, 이집트 군인들의 억지대접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귀한 손님이라고 우기는 우리들이 골탕을 먹고 있는 셈이었다.

“자! 출발 합시다. 저 친구들 때문에 공연히 진땀 뺐네,”

버스가 출발한 것은 그 뒤로도 20여분이나 지난 후였다.

“카이로까지 가려면 시간이 너무 늦어지겠는데요, 여기서 얼추 한 시간은 소비했지요?”

마음씨 좋은 얼빵은 여전히 싱글거리고 있었지만 이 선생은 늦어진 시간 때문에 초조한 모습이 역력했다.

얼빵과 교민 가이드가 그들을 설득하는데 무려 30~40여분 정도는 걸렸던 것 같았다.

“그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그냥 가는 것도 괜찮지 않았겠느냐”고 묻자
“그런데 그 후가 문제지요. 많은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거액의 수고비를 요구하면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검문소를 벗어나 잠깐 달리자 사막의 지평선 위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지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태양과 노을

“우와! 저 붉은 태양 좀 봐요, 사막의 지평선 위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네.”

모두들 창밖을 내다본다. 그동안에도 사막을 여행하는 중에 해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지만 지평선 위로 지는 해를 보는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돌산이나 바다 위로 지는 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해가 지는 방향은 우리들이 서쪽으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 앞쪽이었다. 사막이어서인지 유난히 붉은 태양은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있는 고압전주 뒤 지평선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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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하늘에 피어오른 노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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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견공들 ⓒ 이승철


지는 태양빛이 화염을 토하듯 대지와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드디어 지평선 위에서 태양이 사라지자 곧 붉은 노을이 곱게 피어났다. 사막의 지평선 위로 지는 태양과 붉은 노을은 정말 장관이었다. 일행들은 숨을 죽이고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저 오른 쪽을 보세요, 어느새 달이 떴어요.“

앞쪽 지평선의 노을이 다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누군가 오른편을 보라는 말을 듣고 모두들 오른편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 떠올랐을까? 정말 아직 붉은 노을이 채 가시지 않은 지평선 위 두 뼘쯤의 높이에 새하얀 둥근 달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달이 떠오른 사막의 밤풍경은 고요한 신비로움이 감돌고 있었다.

우리들이 밤길을 달리고 있는 시나이반도 북부지역은, 약 1500m 높이의 엘티 산지에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이어서, 전반적으로 사구(砂丘)로 뒤덮인 사막지대가 전개되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평원에 가끔씩 그리 높지 않은 낮은 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시나이의 어원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디아어로 달을 의미하는 신(sin)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 반도의 북부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고대로부터 전략적인 중요성 때문에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근세에는 시나이반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터키와 이집트의 다툼이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집트 령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에는 이따금 이스라엘에 의하여 점령당했다.

그러다가 1967년의 중동전쟁 후에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으로 시작된 평화무드를 타고 결국 1982년 4월 이후 시나이반도의 전 지역이 다시 이집트의 소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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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피어있는 하늘에 떠오른 둥근 달 ⓒ 이승철


우리 일행은 하늘에 별들이 총총하고 신비감이 감도는 사막의 밤길을 줄기차게 달렸다. 수에즈 지역에서 잠깐 쉬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밤길을 달렸지만 이집트 검문소에서 염려했던 테러나 무장단체의 위협은 없었다. 카이로 시내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경이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부터 한달간 다녀온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월부터 한달간 다녀온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나이반도 #이승철 #검문소 #얼빵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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