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사람도 '별명'을 붙일까?

[우리 말에 마음쓰기 117]'딱지 붙이기'와 '별명'

등록 2007.10.20 12:11수정 2007.10.2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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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이 갈라진 채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문화 교류란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북녘사람이 보는 국어사전을 남녘에서 살펴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고, 북녘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살펴보며 연구를 할 수 있는 터전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남과 북은 더더욱 멀어지지 않을까요. 북녘사람들 말은 어떨까를, 중국 조선족이 쓴 책이나마 겨우 얻어 읽으면서 한 가지 헤아려 봅니다.


.. 바로 이때 마을사람들은 그녀에게 '녀중호걸'이란 딱지를 붙여주었다 ..  <슬기로운 겨레녀성들ㆍ기업인편>(료녕민족출판사,1997)

 

 동무들끼리 '다른이름(別名)'을 붙이며 짓궂게 놀기도 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짓궂은 다른이름을 지어서 붙이기도 했고, 가까운 사이기 때문에 한결 나은 다른 이름을 지어서 붙이려고도 했습니다. 다른 이름은 하나가 아니라 열, 스물이 되기도 했고, 한 가지 다른 이름에서 수없이 가지를 치며 뻗어나가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름을 받지 못하는 동무는 퍽 푸대접을 받는다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따돌림을 받거나 동무들 사이에 끼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귐성이 없는 동무도 그렇고, 얌전하거나 조용한 동무들도 다른 이름이 드물거나 없곤 했습니다.

 

 ┌ 딱지를 붙여 주었다
 ├ 다른이름 / 딴이름
 │
 └ 별명(別名)

 

 저는 '다른 이름'이라고 썼지만, 거의 모두 '별명'이라는 말을 씁니다. 생각해 보면, "딴이름 뭐 없을까?" 하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어릴 때 '별명'이라는 말이 한자말임을 느껴서 이 말을 풀어내어 '딴이름'으로 쓰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입에서 저절로 터져나왔던 말입니다.

 

 누구한테나 이름 하나 있잖아요. 어릴 적부터 우리 어버이가 붙이고 살가이 불러 온 이름이 있어요. 이렇게 저마다 고유한 이름 하나가 있는데, 이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도 그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니 '다른 이름'이요 '딴이름'입니다. '별명'이라는 말을 훨씬 널리 쓰지만, 가만히 보면 '다른 이름-딴이름'이 먼저 우리 입에 익었으나 이 두 가지 말은 한 낱말로 굳어지지 못해 낱말책에 실리지 못했고, 이런 말을 가리키는 한자말 '별명'만 국어사전에 올림말로 자리를 잡았겠구나 싶습니다.

 

 지금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들이기에, 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고 살아가는지 알기 참 어렵습니다. 어쩌다가 방송으로 볼 수 있는 북녘사람들 모습이 그곳 참모습이나 온모습은 아닐 테지요. 아주 작은 조각일 테고, 그 작은 조각도 겉꾸밈이 가득하여 속내를 모두 보여주지 않을 테지요. 그리하여, 북녘 사람들은 우리들한테 있는 이름 말고 다르게도 쓰는 이름을 무어라 말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북녘에서도 '별명'이라는 말을 쓸까요? '딴이름-다른 이름' 같은 말을 살포시 쓰기도 할까요?

 

 ┌ 딱지를 붙이다
 └ 딱지가 붙다

 

 요즈음은 거의 들을 일이 없는데, "딱지를 붙이다"나 "딱지가 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도 '다르게 가리키는 이름'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다만, "딱지가 붙다"라 할 때 말느낌은, 우리 남녘에서는 썩 안 좋은 쪽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료녕성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들은 스스럼없이 쓰는 말이로군요.

 

 좋습니다. 우리들이 주고받는 우리 말을 이처럼 스스럼없이 쓰니 좋습니다. 돌아보면, 똥이나 오줌, 자지나 보지, 계집이나 동무 같은 말을 퍽 꺼리거나 지저분한 말인 듯 여기는 우리들 남녘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딱지'라는 말 또한 썩 내켜 하며 쓸 만한 말로 안 삼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딱지'란 말은 즐거이 쓰기 어려운 말일는지.

 

 토박이말을 업신여기고 나라밖 말은 높이 섬기는 우리 사회입니다. 남녘 사회입니다. 토박이말을 업신여기는 밑바탕을 보면, 이런 말뿐 아니라 문화도 예술도 사회도 경제도 교육도 사상도 다른 무엇도 업신여기거나 깔봅니다. 하찮게 다룹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못났다거 여기거나 얕잡아보니, 우리가 쓰는 말도 얕잡힐밖에 없어요. 우리 스스로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당차다고 할 때는, 우리가 쓰는 말은 한결 북돋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고마워하거나 알뜰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초중고등학교에서 우리 말을 우리 말답게 가르치지 못합니다. 학자나 지식인이나 기자들도 우리 말을 우리 말답게 안 씁니다. 나라밖 말을 함부로 섞어 쓰는 일이 훌륭하고 대단하고 멋진 듯 여깁니다.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마찬가지라, 물건에 붙이는 이름도 죄 나라밖 말로 되어 있잖아요.

 

 말 문제는 말로만 풀 수 없음을 나날이 새삼 느낍니다. 우리들이 입는 옷, 먹는 밥, 사는 집, 하는 일, 즐기는 놀이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말이 어디에서 쓰이나요. 책에서 쓰이나요? 아닙니다. 우리들이 입는 옷에 쓰이고 먹는 밥에 쓰이고 사는 집에 쓰이고 하는 일과 즐기는 놀이에 쓰입니다. 우리들이 입는 옷을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지요. 우리들이 먹는 밥을 어떤 말로 가리키지요. 우리들이 사는 집 구석구석을 무엇이라 말하는가요. 그 흔한 아파트에 붙는 이름은 어떠하지요. 우리들 밥벌이가 되는 일을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우리가 깃들은 일터 부서이름은 어떻게 되고 직책은 어떻게 됩니까. 어떤 놀이를 즐기고 어떤 취미를 즐기나요.

 

 삶이 곧 말이고, 말에는 삶이 배이기 마련입니다. 우리 말이 어지러운 세상이라면 삶이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우리 말이 어수선하다면 삶이 어수선한 세상입니다. 자기 자리를 못 잡는 세상, 기둥도 뿌리도 없는 세상, 그저 남을 해코지하고 괴롭히면서 저 혼자 배부르고 떵떵거리려는 세상이기 때문에 말도 남 앞에서 우쭐거리려 하며 나라밖 말을 함부로 뒤섞어 쓰면서 잘난 척을 합니다. 세상이 고른 권리를 두루 누리며 자유롭고 아름다운 세상이라면, 어느 누가 한국말에 한자말이나 미국말을 섞어서 쓸까요. 우리 세상이 참된 자유와 평등과 통일과 행복이 넘친다면, 어느 누가 어려운 말로 자기 생각을 펼치겠습니까. 말을 보며 사람들 삶을 느끼고, 말을 보며 우리 사회가 어느 만큼 나아지는지, 어떤 자리에 어떤 눈높이로 있는가를 돌아봅니다.

2007.10.20 12:11 ⓒ 2007 OhmyNews
#우리말 #우리 말 #북녘말 #별명 #우리 말에 마음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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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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