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친구들과 함께한 백제여행

[밀짚모자의 답사여행 이야기] 부여·공주, 잃어버린 왕국 백제를 찾아서...

등록 2007.10.28 12:52수정 2007.10.2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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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백제여행을 갈 때는 상상력을 가지고 가라던 충고가 생각난다. 아침 일찍부터 고속도로는 차량의 홍수로 빽빽하고 가득하다.


9월 초순임에도 다가올 추석 전에 조상님의 묘 자리를 살피러 고향을 찾는 벌초 가는 차량들의 행렬이 퇴각이 없는 제한된 직선의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다. 공공의 대중적 편리를 계산하여 배려한 '버스 전용차로'도 오늘만큼은 별로 신통치 않은 무용지물처럼 제 구실을 넋 놓아 버린 모양이다.


지루하고 피곤하게 달려 '부여'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탄현 나들목으로 우리를 실은 버스는 간신히 고개를 들이밀어 진입했다.


예상보다 2∼3시간 늦게 구드래 나룻터에 도착해서 아이들에게 오줌도 누게 하고, 잠시동안 몸을 움직이게 하여 백마강 유람선에 오르게 했다. 어제까지도 꽤 많은 비가 내려서인지 유람선을 타고 거슬러 오르는 백마강의 물빛은 그야말로 흙탕물 빛으로 걸쭉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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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유람선 위의 아이들 구드레 나룻터에서 고란사 선착장까지 운행하는 유람선에 올라 ⓒ 이성한

▲ 백마강 유람선 위의 아이들 구드레 나룻터에서 고란사 선착장까지 운행하는 유람선에 올라 ⓒ 이성한

우연히도 우리가 승선한 유람선은 우리만의 전용선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10분간의 짧은 유람선 승선임에도 처졌던 어깨와 늘어진 표정이 파릇하게 회복되는 듯 난간을 붙잡고 삼삼오오 강을 바라보고, 들을 바라보고, 산을 바라보며 와∼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깔깔거리기도 한다.

 

백마강을 거슬러 오르는 유람선에서 바라보니 오른쪽에 부소산이 보이는데, 수면 위 약 10m 위에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쓰셨다는 '낙화암'이란 한자 글씨가 뻘건 페인트로 오목하게 칠해져 약간은 망측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 위로는 절벽의 맨 위쪽쯤에 삼천 궁녀를 기리게 하려 지었다는 '백화정'의 지붕도 뾰족 보이고, 절벽의 아래 턱밑에는 고란약수로 유명한 '고란사'가 슬쩍 옆얼굴을 내밀고 있다.


고란사 선착장에 내려 '백마강의 전설'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죽어서 용이 되어 강물에 살며 나라를 지키겠다던 '무왕'의 이야기,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살아서 백마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용이 된 무왕을 백마고기 미끼로 건져 올려 죽이고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함락시켰다는 웃지 못할 엉성한 전설을 한 아이(최수인)가 똑 부러지게 설명한다.


어쨌든 그리하여 금강의 지류인 이곳 강의 이름이 '백마강'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설명하니, "아하! 그렇구나!"하고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린 것들도 젊어지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건가

 

선착장을 지나서 나무그늘 속 경사진 계단을 오르니 '고란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고려시대에 지어졌다는 설과, 삼천 궁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후백제 시대에 지어졌다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고려시대에 지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확인되지 않으니 두 가지 설을 염두에 두고 살펴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고란사 법당 옆에 있는 종각 안에는 범종이 매달려 있는데, 용뉴에는 한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뒷부분에 곧추선 음통(음관)과 연결되어 있으니, 종의 양식으로 봐선 고려시대 양식이 맞으나, 나중에 제작되어 종각에 걸리게 된 것이니 오래전 시대의 진품은 아닌 것이다.


범종의 용뉴에 걸린 쇠고리와 종각의 천장 가운데로 매다는 연결부위에 전깃줄 몇 가닥으로 억지스레 붙잡아 매단 임시방편의 흉물스런 흔적은 아직도 우리 문화재를 대하는 지금 사람들의 안이한 자세와 무책임을 보여주고 있으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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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이제 그만 좀 마시렴 한 잔을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는 고란사의 고란약수를 들이키는 녀석들 ⓒ 이성한

▲ 얘들아! 이제 그만 좀 마시렴 한 잔을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는 고란사의 고란약수를 들이키는 녀석들 ⓒ 이성한

법당 뒷 곁의 절벽 아래 약수터에 가서 아이들과 고란약수를 한 잔씩 시원하게 마셨다. 한 잔을 마실 때마다 3년씩 젊어진다는 고란약수의 전설을 이야기하니 몇몇 녀석은 낄낄대며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켠다. 어린 것들도 젊어지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건가???


"아무개야! 너, 어린이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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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정 누각 위의 아이들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기 위해 ㅈ;어졌다는 '백화정'에 올라 ⓒ 이성한

▲ 백화정 누각 위의 아이들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기 위해 ㅈ;어졌다는 '백화정'에 올라 ⓒ 이성한

절벽에 난 시원한 계단 길을 올라 '백화정'에 도착했다. 아이들을 백화정 누마루로 올려 1분간 아무 말 없이 주위 사방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단 1분 동안의 오직 말 없는 관조, 관망, 침묵, 상상….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흘러간 시대의 역사를 생각해 보고, 눈앞에 펼쳐진 강과 산과 들과 나무와 풀과 하늘을 가슴속에 충만한 느낌으로 담아보자는 계획된 의도로 순간의 퍼포먼스를 연출하였다. 아이들의 표정이 멀뚱하기도 하고, 웃음을 억지로 참기도 하고, 또 한편 하는 수 없이(?) 진지하기도 하다.

 

거침없는 백제의 강바람, 산바람을 쐬며...


약간의 오르막을 걸어 금세 당도한 곳은 '사자루'다. 부소산 해발 106m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그 옛날 왕과 왕족들이 달을 감상하며 유희를 즐기던 '송월대'가 있던 자리로서 부소산 최고의 명당 전망대인 셈이다. 누각의 다리가 늘씬하고 날래 보이는 것이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세련된 모습이다.


아이들은 사자루에 올라 거침없는 백제의 강바람, 산바람을 쐬며 가파른 경사를 오르느라 젖어있는 이마의 땀과 겨드랑이의 끕끕함을 허공에 말리고 있다. 부소산을 휘돌아 흘러내리는 숲 속 길은 시원하고 상쾌하여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내려가는 하산의 즐거움과 산소 같은 삼림욕의 신선함을 우리에게 덤으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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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의 정상에 있는 '사자루' 부소산 최고의 전망대 '사자루'에 아이들을 올렸다. ⓒ 이성한

▲ 부소산의 정상에 있는 '사자루' 부소산 최고의 전망대 '사자루'에 아이들을 올렸다. ⓒ 이성한

우리는 백제의 세 번째 수도였던 '사비(부여)' 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반월루'에 잠시 올라 오래전 역사의 흔적이 숨 쉬는 백제왕국의 도시를 조망하였다. 아∼ 옛날이여!


백제인들이 흙바닥에 구멍을 뚫어 아궁이를 만들고 구들과 침상도 만들어 생활했던 '수혈주거지'를 살펴보고서, 군인들의 창고지였던 '군창지터'에 들러 돌다리처럼 가지런히 놓인 주춧돌의 흔적을 퐁당퐁당 눈짐작으로 하나, 둘 세어가며 그 규모와 형태를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군창지터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영일루'다.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라선 지 동쪽을 정면으로 향해 정좌하고 있는 모습인데, 기둥의 주두 공포에 용의 형상을 조각하여 놓으니 멋들어진 자태가 제법이다.


우리는 걸음을 재촉하여 백제의 세 분 충신(계백, 성충, 흥수)을 모셔놓은 '삼충사' 사당으로 향했다. 외삼문을 지나 내삼문을 거쳐 들어서니 세 분 충신의 영정이 의연하고 위엄있는 자세로 묵언의 반가움을 표시하고 계신다.


'의자왕' 시절 죽음을 무릅쓰고 간절한 고언을 올렸던 충신 성충과 흥수, 그리고 신라 김유신의 5만 대군을 맞아 5천의 결사대로 황산벌에서 결사항전 하다 장렬하게 죽음으로 산화했던 장수 계백, 오늘따라 이분들의 넋이 몹시도 맑은 파란 하늘 아래 따뜻한 햇볕을 받아 선명하게 또렷하게 환영으로 내게 다가온다.


한편, 시멘트 콘크리트 골조에 겉으로만 페인트로 꽃 단장하여 지어진 사당 건물은 이곳을 방문하는 뭇 사람들에게 마치 목조로 지어진 전통 한옥건물인양 얼렁뚱땅 차림새를 속이고 있으니 거∼ 참 민망하기 짝이 없다(유지보수 비용 문제로 콘크리트로 지어 관리하고 있다고 문화유산 해설사가 쑥스럽게 얘기한 것을 지난 답사 때 들었다).


걸음을 옮겨 부소산성의 정문인 '사자문'을 나서니 저∼만치 앞에 '부소산 갈비'라는 밥집의 간판이 반갑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마도 배떼기가 고프긴 고팠던 모양이다. (ㅋㅋㅋ) 뚝배기 불고기와 냉면, 그리고 비빔밥 세 가지로 주문하여 아이들과 먹는 푸짐한 밥상은 음식도 정갈하여 맛있거니와 깔끔하고 맛깔스런 반찬과 아주머니들의 소박한 친절까지 곁들여지니 분명 별 다섯 개를 주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린 배를 넉넉히 채우고서 부소산성에서 불과 자동차로 5분 이내 거리인 '정림사지'에 도착했다. 정문 입구로 걸어가는 담장 너머로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멀찌감치 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것이 뭔가 강렬한 삘(feel)이 느껴지는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백제의 탑을 보기위해 조바심어린 발걸음으로 탑 앞에 당도하니, 오늘 하루 중에서 가장 청명하고 맑은 하늘빛이 온통 주위를 정돈하여 극도로 차분하게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대∼ 앞에만 서∼어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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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5층 석탑 신비함, 순수함, 침착함, 아~ 완벽한 아름다움 ⓒ 이성한

▲ 정림사지 5층 석탑 신비함, 순수함, 침착함, 아~ 완벽한 아름다움 ⓒ 이성한

8m 33cm의 작지 않은 체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을 가까이서 바라보노라니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함, 순수함. 아름다움, 아니 완벽함이 전율로 다가온다. 목조탑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옥개석(지붕돌) 귀퉁이의 살짝 날렵히 올려진 모습하며, 조잡한 기교를 허접히 부리지 않은 비범하고 절묘한 비례, 침착하고 믿음직스런 안정감, 그리고 주변을 제압하고 있는 과묵한 카리스마…. 아∼ 오늘 지금의 이 느낌이 영원히 가슴속에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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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 '포룡정' 앞에서 '서동설화' 전해오는 궁남지 연못을 배경으로 ⓒ 이성한

▲ 궁남지 '포룡정' 앞에서 '서동설화' 전해오는 궁남지 연못을 배경으로 ⓒ 이성한

시간의 일정에 쫓겨 아쉬움을 남긴 채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 목적지인 '궁남지'로 향했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자꾸만 시선의 꼬리가 담장 너머 정림사지 탑으로 이어지니 그를 향한 마음의 흔들림이 이다지도 강렬했단 말인가? '진정시키자. 진정시키자' 이렇게 속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숨을 고르는 사이 어느새 눈앞에 '서동공원'이란 네모난 표시가 들어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라는 '궁남지'에 넓디넓은 수련과 연꽃잎이 물 위를 덮고 있고, 물 위에 깔려있다. 마치 광활한 수생식물원이 연상되기도 하는 이곳의 여유로운 초록의 풍경이 흥분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진정제처럼 잔잔히 마음을 쓰다듬는다.


아이들과 함께 서동 설화를 이야기로 주고받았다. 법왕을 모시던 시녀가 연못의 용신과 정을 통하여 '서동'이란 아이를 얻게 되었고,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이라는 설화인데, 아이들은 그다지 흥미로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쳇!……… 쳇 쳇 쳇!

 

이곳은 서동과 선화공주가 만나 데이트하던 전설 속 사랑의 장소가 아닌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궁남지 주변을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감상하는 풍경이 평화롭다. 연못의 가운데 섬처럼 만들어진 곳에 '포룡정'이 아담하게 신선의 휴식처처럼 놓여있으니 또한 일품이다. 완만한 아치 형태로 나무다리가 포룡정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 이곳은 그 옛날 서동과 선화공주가 만나 데이트하던 전설 속 사랑의 장소가 아닌가!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오늘의 종반 답사지인 공주로 향했다. 오전에 고속도로에서 버려진 2∼3시간의 소모가 아무리 서둘러 일정을 맞추려 해도 버겁고 힘겹다. 공주시내에 진입하여 '송산리 고분'으로 향하는 길에 순간적으로 몇 초 동안 깜빡 졸음이 왔는데, 그 잠깐의 순간에 버스기사 아저씨는 외곽의 우회로가 아닌 복잡한 공주시내 중심로로 접어들어 '가는 것도 아니고, 서 있는 것도 아닌 양' 버스를 몰고 계시니, 억지로 참고있던 조바심이 꿈틀거린다.


어찌어찌하여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에 간신히 도착했다. 맨 위쪽 1호분부터 4호분까지가 횡렬로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고, 그 다음 왼쪽 아래로 5, 6호분이 그리고 그 바로 옆에 7호분(무령왕릉)이 파릇하고 순한 연두와 초록의 중간색으로 잔디를 덮고 휴면을 취하고 계신다.


억지스럽지 않은 반원형의 둥그런 봉분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 젖무덤처럼 자애스럽다. 아이들과 함께 가장 최근 발굴된 7호분 무령왕릉 안내판 앞에 모여 앉았다.


일제강점기 때 이미 1호분부터 6호분까지는 모조리 도굴되고 약탈되어 제대로 남아있는 유물 한 점이 없음을 통탄스럽게 이야기하고, 인부들에 의해 우연히 뒤늦게(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되었음을 다행스럽게 이야기했다.


무덤 안에서 발굴된 관장식, 환두대도, 지석과 석수, 오수전, 나무베게와 발받침 등 수 백점의 귀중한 유물과, 아름다운 무늬벽돌로 절묘하게 장식된 아치형의 탁월한 축조기술의 감탄에 대해, "잃어버린 왕국 백제"에 대해 내 목젖의 온 힘을 쏟아 열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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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모형관 안에서의 시신체험 아이들이 무령왕릉 모형관 안에서 마치 그 옛날 왕이되어 죽은 것처럼 누워서 시신체험을 한다. ⓒ 이성한

▲ 무령왕릉 모형관 안에서의 시신체험 아이들이 무령왕릉 모형관 안에서 마치 그 옛날 왕이되어 죽은 것처럼 누워서 시신체험을 한다. ⓒ 이성한

모형관 안으로 들어가 5호분, 6호분, 7호분(무령왕릉)의 실제 내부구조와 예술적 장식의 섬세함을 이야기로 나누며 땅속에서 천 년을 넘게 '죽었지만 살아있던' 왕들의 안식과 '죽음의 미학'에 대해 감히 사색하였다. 무령왕릉 모형관 안에서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무덤 내부를 살피기도 하고, 그 옛날 왕이나 왕비가 된 것처럼, 관이 놓이는 단 위에 누워 사뭇 진지하게 시신체험(?)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여행... 함께한 모두와의 값진 관계맺음과 나눔


이렇게 아이들은 백제왕의 무덤을 체험하고, 백제문화의 세련됨과 신비함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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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리 고분 무덤 언덕편 잔디밭 서열과 순위가 정해지지 않는 원,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하나의 일체로서의 동그란 원 우리는 그 속에서 우정을 나누었다. ⓒ 이성한

▲ 송산리 고분 무덤 언덕편 잔디밭 서열과 순위가 정해지지 않는 원,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하나의 일체로서의 동그란 원 우리는 그 속에서 우정을 나누었다. ⓒ 이성한

시간이 늦어져서 '국립 공주박물관'에 들르기로 한 계획을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대신, 아이들과 함께 송산리 고분 무덤 자락 아래 잔디밭에서 오늘의 백제여행을 다소곳이 정리해보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 동그란 원으로 둘러앉아 각자 나름의 소감과 느낌을 글쓰기 하는 모습은 참으로 싱그럽고 한 마디로 아름다웠다.


서열과 순위가 정해지지 않는 동그란 '원'
시작도 끝도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의 일체로서의 동그란 '원'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나누고 우정을 나누었다.
잃어버린 왕국 백제의 역사를 만나러 온 이번 답사여행에서 우리는 계량할 수 없는 많은 배움과 소득을 가슴에 차곡차곡 담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하다.


역사에 대한 배움과 깨달음.
우리 강산,강토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함께한 모두와의 값진 관계맺음과 나눔.


그리고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응모글' 입니다. 지난 9월에 다녀온 '답사여행기'입니다.
#답사여행 #백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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